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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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의 역사 500년(33)-이승만 하야, 제2공화국 출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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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동상 철거 장면

 

 

 

 1.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 - 장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의 설득 끝에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결심하였으며, 4월 23일 시위진압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의 사망소식을 전달 받고 병원을 찾아가 부상 당한 학생들을 위문한 뒤, 방송에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4월 24일, 유혈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유당 총재직 사임을 선언하였다. 4월 26일 오후 1시,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연설문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담화문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 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내가 아래서 말하는 바대로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하고자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1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2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겠다.
#3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 나도록 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단기 4293년 4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2. 허정 대통령권한대행 출범 - 이리하여 4월 26일 오후 2시,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 즉시 하야, 정부통령 선거 재개, 내각책임제 개헌 등을 만장일치로 결의 하였다. 다음날 오후 3시에 국회에 제출된 이 대통령의 사임서가 즉시 수리 되었다. 헌법규정에 따라 수석 국무위원인 허정이 대통령권한을 대행하게 되어 후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다. 
실로 당선자인 부통령 장면이 대통령 대행이 되어야 할 것이나 그는 하루 전에 사표를 냈기에 국무위원 우선 순위에 의거 외무장관인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된 것이다. 오후 4시, 이승만은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걸어갔다. 


3. 이기붕 일가의 변사 - 4월 26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허정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관련자 처벌을 약속하였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이기붕을 처벌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허정은 이를 거부하였다. 
허정은 경무대 비서관 박찬일의 제의에 따라 만송 이기붕을 해외로 잠정적인 망명을 보내려 하였다. 이유인즉 만송이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공산국가에서처럼 실권(失權)=사형(死刑)이라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민주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체면에도 크게 관계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한데 양주로 피신을 하였던 이기붕은 4월 27일에 몰래 경무대로 들어왔다. 그 당시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 육군 소위는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이 되어 있었는데, 4월 28일 새벽 0시에 아버지 이기붕, 어머니 박 마리아, 동생 이강욱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하였다. 실로 이 일가의 자결은 4.19의 종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이승만의 하와이 망명 - 이승만은 이기붕 가족을 조문한 다음날인 4월 29일, 비밀리에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이 대통령의 비밀출국에 관한 일체의 절차는 허정의 명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는 그곳에서 조용히 살다가 1965년 7월 19일,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지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를 대한민국의 초대 건국 대통령으로 예우하여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케 하였다. 회고하건대 4.19혁명은 이기붕의 부인 박 마리아가 너무 설치며 국정에 깊이 관여하는 일로 시작하여, 이기붕의 정권야욕, 그리고 그러한 무리들에 의하여 둘러 쌓여진 이승만 대통령의 눈가림에 의하여 벌어진 사건이었다. 


오늘날 이승만을 독재자로 몰아 부치는 이도 많이 있다. 실로 그는 13년간 집권을 하기는 하였지만 악의 있는 집권자는 아니었다. 그가 3.15부정선거를 알아차린 것이 경무대로 시위대들이 쳐들어 갔을 때였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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