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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56)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사실 자수사업은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것인데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나에게 며느리는 자기와 함께 자수를 배워서 일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밤새워가며 일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아이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그들과 고용 관계보다는 그냥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한 회사에 취직할거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맺어진 그들과의 인연은 그곳에 발을 붙이고 터전을 잡아가는데 커다란 도움과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형제가 없는 남편과 혈혈단신인 나는 그들을 친정 집처럼 여겼다.

우리는 주말마다 삼촌 집에 놀러 갔고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삼촌과 그의 가족들은 먼 시골에서 온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한 번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좋은 인성을 가진 그 지방 토박이인 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정말 우리에겐 커다란 행운이었다.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그리고 삼촌은 동네 당서기로 이런저런 문제해결은 정말 식은 죽 먹기였다. 연휴가 끝나고 남편과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나는 그들을 데리고 삼촌 집에 놀러 갔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늙어 보이는 남편을 보며 그들은 크게 놀란 듯 했지만 순진하고 착한 남편을 그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명절 때마다 꼭 선물을 들고 가면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받은 선물들을 우리에게 더 주었다. 명절마다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선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것이다.

어느 날 삼촌이 나에게 말했다. “지금 아파트단지가 다 완공되어 입주를 하고 있는데 아파트 하나 사놓는 거 어때?”

“아파트라니? 감히 우리가 아파트를 산다니요?”

이건 진짜 세상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1년 반을 겨우 모은 돈이 1만5천 위안밖에 없었다.

“너희들이라고 아파트 사지 말란 법이 있나?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거면 집을 하나 사는 게 좋지. 월세를 주고 살면 돈 모으기도 힘들고 아파트 한 채 사서 아들도 키우고 여기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고 이젠 이 동네에 뿌리를 내려야지. 안 그래?”

나는 정말 그의 말에 동감을 하며 진짜 우리도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아파트는 서민들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부의 상징이었다.

외국기업들이 몇 년 전부터 들어오면서 건설 붐도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대출 개념이 없어 아파트를 사려면 전액 현금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 한 채 산다는 것은 정말 우리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지방 토박이들도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그 동네에도 아파트 건설이 이제 막 시작이 되어 완공된 아파트는 한두 채 밖에 안 되었다.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정말 인생 성공했다고 여길 만큼 대단한 재산이었다.

“나는 사고 싶은데 우린 모아 놓은 돈이 2만 위안도 안 되는 데 어떻게 사요? 못 사겠네요. 말씀은 정말 고마운데 우린 아직 아파트 살 능력이 안 돼요.”

“돈 부족하면 나중에 계속 벌면서 갚으면 돼. 내가 도와줄 테니 살 건지 안 살 건지 결심만 해. 얼마든지 방법은 있으니까”

아파트를 사자고 남편한테 말했더니 그는 나를 또 미쳤다고 했다.

“너는 뭐든지 생각하면 바로 저지르고 보는데 이건 진짜 아니야.”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당시 막 붐이 일기 시작한 그 동네 아파트는 6만~7만 위안 정도 했는데 우리가 가진 돈은 어림도 없었고 남편은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갚느냐며 펄쩍 뛰었다.

한마디로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바라보지도 말라는 고정관념에 꽉 사로잡힌 그를 설득시키기 어려웠고 우리는 며칠 동안 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했다. 나는 과감하게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좋은 기회라고, 삼촌이 도와줄 거라고, 그러니 사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두려워하며 결사 반대했다.

“그러다 돈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되냐? 갑자기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아파트 뺏기고 돈도 뺏기는 거냐?”

나는 그를 설득하기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남편을 데리고 삼촌한테로 갔다.

“우리 아파트 살 건데 어떻게 하는 건지 좀 도와주세요.”

사실 건설업자들과 동네 당서기인 삼촌과는 밀접한 관계였는데 삼촌도 한 채 사고 그의 아들도 한 채 샀으며 또 가격이 좋은 기회를 우리한테도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산 것보다 1만 위안 싸게 우리한테 준다고 했다.

아파트 지을 때 사무실용으로 쓰던 아파트여서 5만 위안에 준다고 한다. 나는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건설 사무실로 1년을 썼으면 어때? 1만 위안을 적게 주고 살 수 있다면 무조건 사야 한다.

내키지 않아 하는 남편을 이끌고 나는 은행에 가서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하여 당장 삼촌과 건설업자를 만나러 그 아파트로 찾아갔다. 콧구멍 만한 셋방에서만 살다가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보고 나니 정말 돈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다. 삼촌은 건설업자에게 우리가 살 거라고 말해 두었다.

“이 젊은 부부가 시골에서 온 지 얼마 안 된다네. 그래서 현재 모은 게 1만 5천 위안 밖에 안 된대. 그걸 먼저 받게. 나머지 3만 5천 위안은 아마 2~3년 안에 꼭 갚을 거야. 정말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만약 이 사람들이 못 갚으면 내가 갚아 줄게 절대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이 사람들 보증 설게.”

남편과 나는 얼어붙었다. 세상에! 과연 누가 우리를 이렇게 믿어준단 말인가? 그리고 종이 한 장도 없이 서명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안겨준 삼촌에게 나와 남편은 정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아니 나는 뜨거운 것이 가슴 속에 치밀어 갑자기 울컥했다.

지지리 못살고 가난해서 시골에서조차 도적 누명만 쓰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 광대한 도시에서 이제 겨우 안 지 몇 달도 되지 않는 삼촌이 우리를 믿고 보증까지 선다니, 과연 나라면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하느님이 나한테 삼촌이라는 귀인을 보내주셨나 보다.

이 세상 누가 나를 이렇게 믿어 준단 말인가? 정말 그는 그저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하늘에서 우리에게 보내준 천사였다. 그렇게 뜬금없이 아파트를 사게 된 우리는 정말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매일 일해도 힘들지 않았으며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이제야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우리에게 이런 큰 믿음과 기회와 든든한 힘을 보태 주는 천사 같은 삼촌을 우리가 만났다니? 그동안 당했던 온갖 설움이 싹 가셔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손으로 3명이 잘 수 있는 큰 침대를 뚝딱 만들어냈고 넓은 아파트에 침대 하나만 달랑 놓은 채로 우리는 서둘러 이사했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니 돈이 저축이 되었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으며 30평 정도 되는 넓은 공간은 아들이 뛰어 놀기에도 충분했다. 그곳에서 살아온 5년이라는 시간은 또 다른 고향집처럼 친근하고 익숙한 행복한 기억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 아파트를 산 지 2년도 안 되어 우리는 나머지 3만5천 위안을 다 갚았는데 삼촌과 그의 식구들 모두 정말 깜짝 놀랬다.

이렇게 빨리 갚을 줄을 몰랐다고 한다. 아들은 그곳에서 또래 친구들 많이 사귀었는데 월세를 살 때는 동네 애들이 그와 잘 놀아주지 않았지만 아파트 단지에 이사 오니 많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빚을 다 갚은 지 2년도 채 안 되어 삼촌이 또다시 아파트 한 채 더 사 놓으면 어떠냐고 물어왔다. 같은 단지 내에 어느 당 간부가 사려고 따로 한 채 남겨둔 것인데 그걸 사라는 것이다.

가격은 2년 전보다 1만 5천 위안 더 높은 7만 5천 위안이다. 사실 채무를 다 갚고 나니 버는 돈마다 저축을 했고 남편도 일본 가구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월급도 꽤 높았으며 나는 그때 이미 남편의 2배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

남편은 명절이나 일요일, 또는 아픈 날도 일을 나갔고 그는 1년 내내 만근을 하여 상을 다 받아올 정도였으며 돈 한푼 쓰기도 아까워해 사실상 벌기만 하고 쓰지를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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