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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52)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나는 5위안을 더 내는 것이 아까워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뭔가 더 아쉬운 마음에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커플이 막 앉아서 사주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못박힌 듯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점쟁이는 젊은 커플들을 봐주다가 갑자기 나에게 화제를 돌리더니 젊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을 거라며 혀를 쯧쯧 찼다. “얼굴을 보니 정말 와!! 엄청난 고생과 역경을 견뎌왔네요. 아무나 쉽게 겪을 수 있는 고생이 아닌데, 야~참! 그동안 어떻게 견뎌 왔소? 이 여인이 겪은 고생을 보면 정말 말할 수 없이 힘든 일들을 당했구먼. 그런데 점차 나아질 거예요. 중년부터는 내가 언제 그랬나 싶게 풍족하게 잘 살 거예요. 절대 걱정 말아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앉아 있는 나를 보며 그가 해주는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걷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설움과 울분이 그만 터져 버렸고 꺽꺽 소리를 참아가며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가 울기 시작하자 그 아저씨는 당황하여 내 손을 꼭 잡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손을 보면 젊어서 비록 엄청난 고생을 하지만 중년부터 노년에는 부자가 될 것이오. 여태껏 한 고생은 곧 끝나갈 것이니 너무 서러워 말아요. 직업은 오늘 중으로 꼭 찾게 될 것이니 날이 다 가기 전에 빨리 움직여서 더 찾아보시오.”

나는 그의 말이 어쩌면 그렇게 따뜻하게 가슴에 다가왔는지 모른다. 앞으로 꼭 잘된다고 하니 갑자기 힘이 부쩍 솟아올랐다. 나를 모델 삼아 사주를 봐준 덕분에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왔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얼른 자리를 차고 일어나 마을이 끝나는 막바지 쪽으로 향했다.

그쪽에도 공장들이 몇 개 있었는데 제일 마지막 공장에는 어떤 공장인지 팻말도 없었고 한적하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여길 한번 들려보고 안되면 오늘은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정문으로 들어갔다. 60대 중반의 경비원 아저씨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사람 구한다고 해서 왔어요.”

“누가? 여긴 사람 구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실망에 멋쩍어진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요? 아!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럼 여긴 뭘 만드는 공장인가요?”

“여긴 가발 공장이야. 숙련공들만 받아. 그리고 지금은 사람을 구하지 않아”

“가발이요? 난 가발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혹시 나를 월급 적게 줘도 괜찮으니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아니, 사람이 필요가 없다니까? 이 아줌마가 끈질기네. 어서 딴 데 가보소.”

“꼭 부탁 드릴게요. 지배인한테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그래도 안 된다면 바로 물러갈게요.”

물론 나는 가발을 본 적도, 손댄 적도 없다. 다만 들은 적은 있다. 시골에서 가내 업으로 아줌마들이 가발을 만드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극도의 간절함은 나의 입에서 거짓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게 했고 물러설 수 없는 끈질김으로 경비원을 설득했다.

“아휴, 귀찮게 구네. 이런 아기 엄마가 집에서 아이나 돌보지 무슨 일을 한다고. 내가 한번 물어볼게 잠깐 기다려.” 한 3분 만에 그가 돌아오더니 뜻밖에 정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일단 할 줄 아는지 테스트 해보고 결정하겠대. 잘하면 여기 취직할 수 있겠어.”

그는 나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기쁨도 잠시! 갑자기 큰 걱정이 앞섰다. 아니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 건가? 난 가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뭐라고 한담? 어차피 잃어야 본전이니 부딪쳐보자. 아니면 내일 딴 데 가면 되잖아! 떨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침착하게 잡으며 나는 가발 만드는 작업장으로 안내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작업장에 들어가니 16~19살의 앳된 소녀들이 앉아서 가발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주임이라는 여자 애가 나에게 테스트용을 하나 주면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세상에! 나는 너무 당황했지만 침착했다.

“아! 이건 내가 배운 거랑은 완전 다른데요?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런 형태가 아니라 미용실 실험용 가발인데요.” 그것이 내가 아는 가발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고 나는 갑자기 미용실용 가발이라는 용어를 떠올려 위기를 넘겼다.

“괜찮아요. 그런 것이라도 배웠으면 기초적인 경험만 있으면 이건 금방 배우니까. 원리는 비슷해요.” 미용실용 가발이라도 경험자들 찾기가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곳은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 혹은 그 이상까지 본인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발 만든 개수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딱히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첫 2달은 월급은 안 주고 3개월째부터 월급을 준다고 한다. 1월에 일한 돈은 3월에 받는 식이다. 그렇게 2달 월급은 항상 깔고 있다. 그래야 공장을 함부로 그만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만두게 되면 마지막 달 일한 돈은 잃게 된다.

당시 중국의 모든 공장들이 그랬는데 농민공들의 돈은 그렇게 많이 착취당했다. 월급을 몇 달씩 미루다가 잘라먹고 도망가는 공장들도 수두룩했다.

나는 2달 동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무데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일할 수 있고 가발을 집에 가져가서 밤에 일해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

정말 점쟁이 말대로 그날 오후에 나는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말에 큰 믿음과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를 한 번 더 보려고 길거리를 유심히 찾아봤지만 본 적이 없었다.

가발 공장을 나가면서 바로 코너를 돌면 이동식 간이 편의점이 있었는데 편의점 아저씨는 자전거 타이어 수리도 하고 오토바이 수리도 한다. 나는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하느라 바쁜 편의점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혹시 이 동네 사시나요? 이 근처에 방 한 칸 구하려면 어딜 가야 하죠? 그리고 유치원도요.”

“유치원은 바로 2분 걸어가면 있고 방은 구할 데가 많아요. 남편은 뭐하고 아줌마가 방을 구해요? 아이까지 데리고 돈 벌러 왔나 보네.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데려다 줄 테니.”

그리고 그는 나를 직접 데리고 월세 준다는 집에 데리고 갔다. 동네 입구의 바로 첫 집인데 월세 70위안이고 바로 그 집 옆에 유치원이 있어 이건 정말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유치원은 한 달에 30위안이라고 한다.

전에는 120위안을 내야 했는데 거의 1/4 가격 아닌가? 그리고 7시~5시까지 점심까지 먹여주고 유치원 선생은 동네 사람들의 평판이 정말 좋았다. 교육수준도 높고 아이들 관리도 잘 한다고 집주인 할머니도 칭찬했다.

이 이상 더 좋은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이런 곳을 더 일찍 못 찾았을 까? 내가 정말 동네를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쟁이 말대로 일자리도 구하고 월셋집도 유치원도 막혔던 일이 하루 사이에 한 번에 다 풀려버렸다. 우리가 세를 들은 집주인들은 정말 정직하고 순박한 토박이 어르신들이었는데 우리는 마치 한 가족처럼 사이가 좋았다.

내가 가끔 아이를 두고 나갈 때면 집주인 할머니는 자기 손주처럼 점심도 챙겨주고 잘 돌봐주기도 했다. 마침 할머니 손주는 아들과 같은 또래였다. 아! 이곳은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곳이다! 여기서 살아야겠다. 망망대해에 나 홀로 떠돌다가 마침내 구조선을 만난 듯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고 처음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받은 느낌이지만 나는 왠지 그 동네가 낯설지 않았고 맘에 들었으며 마치 내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맘이 편안함을 느꼈다. 이곳에서 나는 남한에 오기 전까지 5년 가까이 살았다. 내가 만약 남한에 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또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영향을 준 은인들이었고, 그들은 지금도 좋은 친구로,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그곳은 정말 나의 제2의 고향이었으며 그 때부터 하는 일들은 실타래처럼 잘 풀리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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