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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36)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산전막 주인은 막 치를 떨면서 혼자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무렵 나는 어느 인삼농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여섯 명의 일꾼들과 부닥쳤다. 깜짝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어떡하지? 뒤돌아갈까? 아니면 모른 척 그냥 지나갈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일꾼들 중의 중년여자 한 명이 나를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경계심을 품고 조심조심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다들 한족이었는데 말이 안통해 몸짓 손짓을 해가며 내가 언제 어떻게 강을 건넜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내가 겪은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젖먹이 아기를 업고 건너오다가 강물 속에서 잃었다고 하자 아줌마들은 모두 눈물을 훔치며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싸온 도시락을 마음껏 먹으라고 건네주고 무서워 말고 배불리 먹고 얼른 여기를 뜨라고 했다. 말이 하나도 안 통했지만 손짓 몸짓으로 그들의 따뜻한 마음은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비록 중국인들이지만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준 도시락을 맛있게 다 먹어버렸다.

 그들은 나더러 여기는 공안에게 잡힐 수가 있기 때문에 될수록 멀리 가라고 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거듭하고 나서 총총 다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울창한 수림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100년 이상씩 자란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마저도 다 울리는 깊어지는 산속이 더럭 무서워졌다.

 조금만 있으면 날이 곧 어두워질 것이다. 과연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이제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오늘밤을 어떻게 어디서 자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소를 몰고 올라오는 한족과 맞닥뜨렸다. 외통길이라 피할 틈도 없어 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그를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내 남루한 옷차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북한사람임을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어 사실 설명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젯밤 북한에서 강을 건너왔는데 혹시 당신네 집에 일손이 바쁘면 나를 일을 시켜 달라고…그리고 일한 값을 돈으로 주면 안 되겠냐고 호미로 김을 매는 동작을 해 보이면서 말이다. 그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만약 다른 사람이 공안에 고발하면 자기도 벌금을 내야 하고 나는 잡혀가기 때문에 그건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 내려가서 먹을 것을 가져다줄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소를 끌고 산을 내려갔다. 나는 그가 혹시라도 경찰을 끌고 올라올까봐 잘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숨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1시간 정도 후에 그가 다시 올라왔는데 한족들 주식인 빵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점점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 아저씨는 얼른 나무 뒤에 숨으라고 마구 내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자기는 소를 방목하는 척을 했다. 그 떠들썩한 무리는 아저씨 곁을 지나가며 그에게 말을 걸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멀리 가버렸다.

 가슴이 콩닥거려 나무 뒤에 숨어서 모든 것을 지켜본 나는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나왔다. 그 아저씨는 나를 따라오라며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곳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가 가지들을 하나씩 치워버리자 조그마한 산전막과 인삼밭이 나타났다. 그는 여기가 인삼밭인데 날이 어두우면 주인들이 집에 내려갈 것이니 기다렸다가 거길 들어가서 밤을 지새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면 얼른 일어나서 여기를 뜨라고 한다. 인삼밭 주인들이 공안에 고발해 나를 잡아갈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나는 난생처음 다른 나라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도 그들의 손짓 몸짓으로 그 뜻을 척척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그 아저씨는 친절하게 다 알려주고 나서 집에 내려갔다.

 나는 그에게 몸을 숙여 고맙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했다. 인삼밭은 겉으로 보기엔 마치 울창한 숲으로 보이는데 도적 맞힐까봐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가려 놓아 전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인삼 주인들이 집에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날이 어두워서 인삼밭에 있는 산전막 안에 들어갔다.

 산전막이라고 하지만 사실 문도 달려있지 않고 마른 볏짚이 바닥 한쪽에 쌓여 있는 것이 전부이다. 나는 소몰이꾼이 준 빵을 물도 없이 먹고는 잠을 청했는데 밤새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장백현의 여름밤은 산속이라 그런지 쌀쌀하고 추웠다.

 나는 마른 볏짚을 덮을 수 있는 만큼 뒤집어 덮었다. 갑자기 돼지우리 속에 있는 돼지가 떠올랐다. 이 산속에서 이런 볏짚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 마른 볏짚은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뜻했으며 가끔 빗소리에 깨기도 했지 만 아침까지 잘잤다. 진짜 얼마 만에 자는 꿀잠인지 모르겠다.

 산속에서는 맹수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도 간간이 들렸고 북한 사람들 말소리 같이 거칠고 억센 목소리와 함께 여자를 때리고 패는지 자지러진 여자 비명도 들렸다. 아마 탈북자 일행이 다른 산전막에 머무르면서 밤을 새는 모양인데 산속에서 깊은 밤중에 그 소리들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져서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들렸고 나는 몹시 무서웠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몸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볏짚이 온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벌써 따사로운 햇볕이 대지를 서서히 덥히고 있었고 아침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와 양떼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해가 떠올랐으니 나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

3. 아! 제발…

 나는 얼른 볏짚 무지를 바로 해놓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길을 걷던 나는 점심쯤에 처음으로 또 하나의 산전막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숨어서 그 사람들을 한참동안 관찰했다. 과연 내가 나타나면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들인지 먼저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왠지 느낌이 그들 앞에 나타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한참 기다리다가 그들이 밭으로 일하러 가는 것을 확인하고 살며시 산전막 안에 들어갔다. 나는 사실 눈에 확 띄는 거지같은 북한 옷을 벗어버리고 중국인 차림을 할 수 있는 옷과 신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야 위험에서 좀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발에 맞지도 않은 큰 군용 신발은 도강하기 전에 군인이 던져줘서 신은 것이라 철버덕 철버덕 길을 걸을 때마다 발이 앞으로 쏠리면서 이틀째 연속 산속을 헤매며 걷다 보니 정말 발이 불편하고 아파왔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띄면 당장 공안에 데려 갈까봐 무서워서 차마 그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여태 마주쳤던 수더분하고 나이든 중년들과는 달리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이라 왠지 동정심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땅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 중에 몸에 맞는 옷 한 벌을 집어 들고 발에 맞을 만한 신발도 하나 찾아내고 얼른 나가려 는데 좀 전에 나갔던 여자 한 명이 다시 돌아왔다. 마침 내가 옷을 집어 든 것을 목격한 그녀는 내 팔을 꽉 잡더니 자기 일행을 소리쳐서 불렀다.

 잠시 후에 나머지 3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내가 자기들 옷을 훔쳐간다면서 나를 막 바닥에 쓰러뜨리고 중국말로 화가 나서 마구 욕을 하기 시작했다. 북한 남자들 같으면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이 발길질하고 패고 때리고 할 텐데 다행히 이들은 나를 때리거나 폭행하지는 않았다.

 한 여자는 공안에 전화를 해서 잡아가야겠다는 손짓을 하면서 옆에 남자에게 내려가서 공안에게 알릴 테니 나를 지키고 있으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직감으로 대뜸 알아차렸다. 갑자기 남자 둘과 여자 둘은 나를 가운데 놓고 한동안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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