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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35)
minjukim

 

(지난 호에 이어)

 새벽 2시, 드디어 우리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날 우리가 건넜던 곳은 물이 허벅지까지 왔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한사람이 넘어지면 양쪽에서 부추겨서 일으켜주고 서로를 부축해 주면서 그렇게 11명이 무사히 강을 건넜다. 물속에 들어 선지 불과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우리는 재빨리 강을 건넜고 얼른 길 건너편 숲속에 일단 모두 숨었다.

 큰길에 다니는 차량이 꽤 많아서 공안들의 눈에 띄면 우리 다 잡혀갈 판이다. 강을 건너고 난 후에는 바로 큰 도로가 있었는데 전조등이 끊임없이 비추었고 중국 군인들의 말소리도 다 들렸다. 무조건 그 큰 도로를 건너야만 그 어디든 갈 수가 있었는데 우리는 최대한 몸을 숨기고 전조등이 비치기 전에 재빨리 거의 엎드려 기어가기를 해서 그 대낮같이 밝은 전조등 불빛을 통과하여 도로를 무사히 건넜다.

 바로 그 도로 옆으로 몸을 날려 재빨리 움푹 패인 곳에 빠져들어 간 나는 정말 성공했구나 하는 벅찬 생각에 기뻐할 틈도 없이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어두운 쪽을 향해 달렸다.

 반소매 옷을 입은 내 팔과 얼굴에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여기저기 상처와 피가 났으나 미처 알지도 못했다. 아니 그런 것은 지금 중요치가 않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전쟁영화나 첩보 영화에서만 봐오던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학교 졸업하고 군사 야영소에서 받은 기초훈련들이 이때 참 도움이 되었다.

 탈북을 하는 사람들은 3가지 부류였다. 1부류는 정말 생존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한국 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려는 사람들, 2부류는 중국에 넘어와서 농사나 벌목장에서 돈이나 벌어서 다시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 3부류는 중국에 넘어와서 무차별 강도 및 도적질(쌀, 의복, 공업품)을 해서 북한에 돌아가 팔고 다시 반복하는 전형적인 범죄형이다. 따라서 어떤 목적으로 강을 건넜느냐에 따라 일단 강을 건넌 후에 향하는 방향은 다 달랐다.

 나는 무조건 산을 향해 달렸다. 가장 안전하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산으로 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함께 건너온 사람들 대부분은 시내나 마을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길이 없이 무턱대고 달리다 보니 나는 무릎까지 빠져드는 논밭을 건너야만 했고 벼 이삭들은 내 얼굴과 팔을 사정없이 할퀴였다.

 내가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 달리자, 다른 3명이 내 뒤를 따랐는데 그들은 내가 길을 잘 알고 달리는 줄 알고 무턱대고 따라오다가 길도 없는 논밭과 늪을 지나 산으로 가는 것을 알고는 욕설을 퍼부어 대며 다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배낭을 여러 개 가지고 와서 밤새 식량이나 뭐든지 훔쳐갈 준비를 하고 강을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30분 정도 들판을 통과하여 드디어 산기슭에 다다랐다.

2. 장백현 18도구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토록 염원하던 신세계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나는 드디어 산기슭에 도달했다. 나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고 나도 모르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이 야산이지 거의 과수원과 참외 등 과일 밭이었다. 나는 갑자기 발끝에 뭔가 걸려 넘어졌는데 손으로 만져 보니 참외였다.

 나는 그 참외를 따서 옷에 슥슥 문지르고 한입 베어 먹었는데 맛이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참외 향기가 코를 찔렀다. 채소들이 어찌나 크고 탐스러운지 주변에 오이와 가지 등 온갖 열매들이 주렁주렁 보였는데 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손가락 크기 만한 오이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북한과는 하늘땅 차이었다.

 나는 오이도 하나 따서 먹으며 점점 더 깊어지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공안도 없을 것이고 제일 안전할 것이다. 산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마음 놓고 걸어가던 나는 어떤 과수원을 지나가다가 담장 너머 들려오는 사납게 짖어 대는 개소리에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과수원 주인은 개가 짖어대자 손전지를 켜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고 나는 사냥개에게 물릴까봐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개가 한창 짖어대고 주인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개를 달래며 돌아갔다. 개와 주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꼼짝 말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

 나는 발소리를 듣고 또 개가 달려올까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서 그곳을 지나왔다. 산을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울창한 수림 속에 들어선 나는 바람 소리에 우수수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승냥이 울음소리가 뒤섞여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서늘한 공포를 느끼며 캄캄한 산속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캄캄한 산속을 밤새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먼 동이 트고 저 너머로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장백산의 울창한 수림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내가 지난밤에 건너온 압록강을 내려다보다가 그만 놀랐다. 밤새 하도 오랜 시간을 걸었으니 이젠 압록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간 줄 알았는데 바로 내가 건넜던 장소가 바로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밤새도록 같은 곳을 계속 빙빙 돌기만 했던 것이다. 마주 바라보이는 곳이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철교가 바로 앞에 바라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을 건너온 곳이 바로 그 철교 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제일 밝고 경비가 심한 곳을 우리가 건너왔던 것이다.

 압록강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게 두려워진 나는 어서 빨리 이 국경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걷는데 눈앞에서 소몰이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말이 안 통하는 한족이었는데 삐쩍 마른 북한 사람들만 보면서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뚱뚱하고 살이 찐 사람을 만나니 정말 이상했다.

 내가 온 여기가 중국이 맞나? 혹시 저 사람은 몽골 사람인가? 북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싹 마르고 앙상했는데 이 사람은 얼굴이고 몸집이고 살이 유들유들하고 뚱뚱했다. 나는 그에게 손짓 몸짓을 해가며 13도구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내가 건너온 쪽은 중국 장백현 18도구였는데 13도구는 서남쪽으로 압록강을 끼고 500km 정도 더 가야 한다.

 나는 지난밤 도강할 때 함께 했던 남자의 삼촌이 13도구 병원 원장을 한다고 한 생각이 나서 그리로 가면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을 거 라는 희망에 13도구를 가려고 맘먹었던 것이다. 소몰이꾼은 팔을 길게 벌려 보이면서 아주 멀다고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남자가 염소 떼를 몰고 방목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니, 손짓발짓으로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나 더 산속을 헤매야 할지, 인가를 만나지 못하면 얼마나 더 굶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염치를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자기는 먹을 것이 없고 앞에 10분만 더 가면 다른 산전막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밥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를 따라가니 산전막이 앞에 있었는데 이게 바로 영화나 소설책에서만 보던 만주 땅의 산전막이구나하고 생각하니 정말 내가 낯선 나라에 와 있구나 라는 실감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산전막 주인은 조선족이었는데 흰 쌀밥에 고추장을 주며 이거 밖에 없으니 먹으라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따뜻한 흰 쌀밥에 언제 먹어 본 지도 까마득한 고추장을 비벼서 맛있는 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버린 나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다. 더 먹었으면 하는 간절한 눈치로 발을 떼지 못하고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조선족 남자는 눈치를 채고 밥은 더 없으니 빵이라도 먹으라며 주었다.

 그런데 마침 그 산전막에는 손바닥만 한 TV가 있었는데 조선말로 나오는 장백현(조선족자치주) 채널에서는 어젯밤 남자가 말한대로 탈북 동료를 살해한 두 남녀가 공안에 잡혀 오늘 북조선에 송환하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었다. 두 손을 묶인 그들이 북조선 보위부에 인수인계되는 장면까지 다 보여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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