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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기

부동산캐나다 칼럼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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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혼신의 절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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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기 

 

 새벽 일찍 울음섞인 노랫소리에 잠이 깼다. 녹음테이프에서 들리는 “내 너를 도우리…”를 따라 부르며 그이는 흐느껴 울고 있다. 혼신을 다하여 “일어나 걸어라…”.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이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뒤에서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그의 뒷모습은 더할 수 없이 외로워 보인다. 스스로 매일의 생활을 처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이가 애처롭다. 설사 나는 그이의 시간과 행동반경을 조절해주는 풀타임 비서가 되었고 평생 간병인 역할을 하면서 때론 버겁고 도망치고 싶은 격랑의 순간도 있으나 그가 살아 있어 나의 든든한 울타리 되어 줌이 더 할 수 없이 고맙다.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 그는 만학의 꿈을 놓지 않고 1973년 이민 후에도 그의 학구열은 식을 줄 몰랐다. 이민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과 뿌리내림 몸살을 함께 겪으며 이를 이겨내는 데 힘을 보탤 전문적인 가정상담자 부재 현상을 절감했다. 이를 자각한 그이가 몇 년에 걸친 상담 석사과정 마지막 논문 초고를 제출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남편의 몸도 그의 꿈도 완전히 부서졌다. 그때가 1994년 1월이었다.

 

 그는 나의 기둥이었고 보호자였었는데 엉망이 되었던 뇌가 자리 잡힐 때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역할은 완전히 바뀌었다.

 반신 장애가 된 남편 주변에 신체 장애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름 캠프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안간힘들이 합쳐 이른바 1997년 성인장애인공동체가 탄생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내부에 절망의 구덩이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는 구덩이!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은 지극히 개인적 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개인적 체험은 이웃과 나누어지면서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또 다른 질서를 만들어가며 공유하게 된다. 승화시킴의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며 마침내는 희망을 끌어안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성인장애인 공동체 안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위기의 벽을 넘고 넘으며 22년간 지체 부자유한 분들과 함께 뒹굴며 삶을 나누는 시간들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동안 많은 장애인이 거쳐 갔고 함께 하고 있다. 이 속엔 중도에서 시각을 잃은 남편의 눈이 되어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도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의 손발이 되어 지극정성 병간호하는 남편도 있다. 각종 질병 또는 사고로 어린시절 소아마비 뇌성마비 등 신체적 결함을 끌어안고 삶의 질을 높이며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공통적인 소원이 있다. 무관심의 뒤안길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이다.

 

 서로 의지하고 제한된 환경과 조건,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으나 긴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잎이 나고 꽃을 피워 마침내 몇 개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이 열매들이 다시 땅에 심어져 썩지 않으면 몇백의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자각이 ‘소통과 희망’의 의식화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이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반신 장애인이 되어 삶의 질이 바닥에 떨어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나 그 절망이 희망으로 형벌이 은총으로 바뀌는 체험을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고 개인사적인 삶을 통하여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삶의 결정체를 ‘흔들렸던 터전 위에’ 담아 자전적 수필집을 펴낸 바도 있다.

 

 수년 동안 공동체 미술교실에서 배우고 닦아왔던 그림 40여 점을 한데 모아 2007년 3월 수필집 출판기념 및 정동석 미술 전시회를 했다. 이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장애 회원 유홍선, 한재범 중심으로 공동체는 아름답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더 할 수 없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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