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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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야고보(예수님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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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에게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행 15:12-21)

 

 

초대교회가 모진 시련과 박해를 이겨내며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를 주축으로 한 사도들의 강력한 지도력과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충성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인 탁월한 영도력과 순교로 막을 내린 그의 헌신과 희생의 삶 또한 초대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크나 큰 기여를 하였다.


초대교회의 본거지인 예루살렘 교회의 주교로서 기독교에 대한 극심한 핍박을 이겨내며 선교전략을 수립하여 다른 사도들을 지원하고 성도들을 보살피고 독려하며 복음전파를 위해 생을 불사른 사도가 야고보였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며 “의로운 야고보”로 불리기도 했다. 요한의 형 “큰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가 “의로운 야고보”가 된 진정한 이유는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라고 권면한 사도가 그였기 때문이었다. 


야고보는 여러 면으로 세례 요한을 닮은 사도였다. “그는 따뜻한 양털 옷 대신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포도주나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머리를 깍지도 않았고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홀로 성전에 엎디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서 무릎이 낙타처럼 굽어버렸다.”라는 유세비우스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이와 같이 기도에 힘쓰며 경건하게 산 야고보였지만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야고보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 뿐더러 그를 배척하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놀라운 권능을 행하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예수님 곁에서 그 혜택을 받으려는 얄팍한 처세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야고보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야고보를 찾으셨다(고전 15:7). 혈육의 정 때문이 아니라 야고보를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다. 야고보는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 뵌 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으며, 예루살렘 교회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야고보를 예루살렘 교회의 주교로 추대한 것은 베드로와 큰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그들 세 사도들은 기득권과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의로운 야고보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맡긴 것이다. 


야고보는 바울처럼 3년간 예수님을 수행한 열두 사도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로서 당당히 사도의 권위를 행사했으며, 성도들도 그를 사도로서 받들고 순종하였다. 


그런 까닭에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에 이어 서열 3위의 존경받는 사도의 위치를 유지하며 예루살렘 교회를 총괄하는 유대계 기독교인의 총수가 되어 주를 위해 헌신한 것이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던 초대교회에서는 할례를 받고, 성결의식을 행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조석으로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을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로 여겼다. 야고보도 그 같은 의식과 율법준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할례, 세례 등의 의식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율법준수의 필연성과 중요성에 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은 주후 49년 예루살렘 교회에서 열렸던 회의에게 크게 완화된다. 그 회의의 주요안건은 복음을 받아드리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어떻게 적응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구원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역설했다. 베드로는 그가 본 환상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 한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듣고 그가 깨달은 바를 말한 것이다(행 10:9-16).


체험을 통한 베드로의 생생한 증언과 이어서 행해진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보고를 듣고 회의를 주재하던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에 바친 더러운 제물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린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증언이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겠다.”(암 9:10-11)고 하신 예언과 일치한다며 그와 같이 결론지은 것이다.


야고보는 이처럼 초대교회의 이방선교의 방향과 기준을 공식화하는 주요 역할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성령에 감동되어 야고보서를 기술하였다. 야고보서는 성도들은 어떤 환란과 시련과 핍박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지녀야 하는데, 그 믿음은 행위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약 2:14)는 말씀은, 구원은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엡 2:8-9)이라는 가르침과 상반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완전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의 친동생이면서도 야고보는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그가 그리스도란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야고보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인생을 바쳤다. 


초대교회의 구심점인 예루살렘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성도들을 돌보며, 이방선교를 총괄하고, 각처에 설립되는 교회들을 관할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며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친 사도가 야고보인 것이다. 이 어렵고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야고보는 무릎이 낙타처럼 휘도록 엎드려 기도했다. 


인생의 후반부부터 예수님만을 위해 살아드린 믿음과 용기와 기도의 사도 야고보는 주후 62년에 순교함으로 그가 출연했던 인생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율법을 준수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율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한 야고보를 유대인들은 존경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구원의 문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강했기 때문에 야고보가 순교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 총독 베스다가 죽고, 그의 후임자가 부임하기 전에 산헤드린 공회는 날로 번성하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틀에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은 야고보가 그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적임자라 판단했다. 그들은 야고보라면 그들이 30여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아닌 역사상의 한 인물이었다고 기독교인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야고보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인간에 불과했음을 주입시키려 한 것이다. 
그들이 택한 때는 유월절이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예루살렘 성전 뜰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다. 성전의 높은 난간에 올라 선 야고보를 향하여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의로우신 이여,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야고보는 엄숙하면서도 힘찬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나 예수께서는 구름을 타고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인 무리는 성전이 떠나가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야고보 말을 듣고 제 정신을 잃고 난간으로 뛰어 올라가 야고보를 붙잡아 밑으로 던졌다. 


성전 뜰에 누어 그들이 내려치는 돌을 맞으며 야고보는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라 기도한다. 십자가 위에서 그를 조롱하는 군중들을 위해 하신 예수님의 기도였다.


사람들이 달려와서 “당신들을 위해 기도 드리는 의로운 분에게 무슨 짓을 하느냐?”고 꾸짖자 상당수가 뒤로 물러섰지만 누군가가 내려치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은 야고보는 즉사하고 말았다. 


야고보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소식은 팔레스타인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8년 후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을 때 사람들은 의로운 야고보를 죽인데 대한 하나님의 진로가 임한 까닭이라 말했다. 


“큰 야고보”, “작은 야고보”, “의로운 야고보” 세 사도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충성 된 일꾼으로서 인생의 몫을 담당하다 순교했다. 그들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의로운 야고보”가 죽어가면서 그를 돌로 치는 폭도들을 용서해 달라한 기도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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