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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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달란트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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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기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사람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 25:14-30)”

 

 

“달란트 비유”는 그 앞에 나오는 “도둑 비유”,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열 처녀 비유”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앞의 세 비유는 예수께서 오시는 때는 알 수 없지만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그를 맞이할 차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말해준다. 


이에 반해 “달란트 비유”는 주께서 아무리 더디 오시더라도 깨어있음은 물론 받은 은사와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며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중 가장 긴 것이기도 하다.


오늘 날에는 능력이나 재능 또는 특별한 영적인 은사를 가리켜 달란트(talent)라 하지만 신약에 나타나는 “달란트”는 화폐가치를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그가 신임하는 종 세 명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을 맡긴다.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주인은 그들에게 그 돈을 자본금으로 삼아 이윤을 남기면 돌아와서 그들이 올린 성과에 따라 상급과 특혜를 주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이들이 주인이 떠나자마자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그들이 받은 두 배로 늘린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온 주인에게 그들이 거둔 사업성과를 자랑스럽게 보고한 것을 보아도 이 점이 분명해진다. 


당시에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가 받은 것이 다른 두 사람보다 적은 것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주인이 그의 능력을 동료들보다 못하게 여긴데 대해 자존심도 상하고 모욕감까지 느꼈을 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인을 가만히 앉아서 남들에게 일을 시켜서 벌어드리기만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기에 한 달란트로 장사를 해보아도 다른 두 사람과 같은 좋은 성과를 거두기 힘든 상황에서 모험을 하기 보다는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편이 안전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그들이 받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두 배로 늘린 것을 보고하자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며 그들을 칭찬하고 상급을 내린다. 


하지만 받은 돈을 땅에 묻었다 그대로 가지고 온 종을 향하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르며 “네가 나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이 심고 뿌린 것을 거둬드리는 사람으로 알았다면 내가 준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이자라도 받을 수 있게 했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라 책망하며 그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지 사람에게 준다. 그 당시 로마법은 최대 12%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게 허용하였기에 그가 안전한 은행에 한 달란트를 예금했으면 상당한 액수의 이자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주인의 신임을 완전히 잃었고, 가졌던 것까지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사명과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은사를 주셨다. 따라서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거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어둠 속으로 내던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스라엘 초대 임금이 되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자 그에게 주어졌던 왕권이 다윗에게로 옮겨진 사실은 하나님은 그의 뜻을 외면하는 이들을 응징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분이심을 말해준다. 


예수님도 “포도원 일꾼 비유”에서 세를 받으려 보낸 아들을 살해하고 그에게 돌아갈 유산을 가로채려 한 농부들을 주인이 가차 없이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에게 맡길 것이라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을 배신하면 그의 자녀 된 복된 신분을 박탈당한다는 사실을 밝혀주신 것이다.


그들의 성실성과 능력을 믿고 주인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긴 두 사람은 즉시 그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각기 받은 것을 두 배로 늘린다. 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받은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그들을 칭찬한 후 두 가지 상을 준다. 하나는 더 크고 중요한 많은 일들을 맡기겠다고 한 것이다. 


요셉이 히브리 노예의 신분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출발점은 그가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 집 청지기의 일을 충실하고 완벽하게 감당함으로 주인의 신임을 얻는 것이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기에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던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그들의 소유 전부를 버리고 충성을 바치며 주님을 따른 결과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열두 보좌에 앉게 되는 사실로부터도(마 17:27-28) 맡은 일에 충실한 자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큰 임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충성스러운 두 종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상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롬 8: 17-18) 


하나님의 일을 가볍게 여기거나 등한시 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하지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의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이 받을 상은 놀랄 만큼 크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을 주신다. 집을 떠나는 주인이 세 종에게 각각 다른 액수의 돈을 맡긴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가 되게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예언자 또는 전도자, 어떤 사람은 목사, 또 어떤 사람은 교사가 되게 하시며”(엡 4:11), 사람에 따라 “지혜나 지식, 믿음, 신유, 능력, 예언, 영의 분별, 방언, 통역의 은사”(고전12:8-10)를 주신 것을 보면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얼마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나 재능이 무엇이며, 얼마나 크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그가 주신 것 이상의 은사와 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나 능력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을 활용하는 우리들의 노력은 같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받았던지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그래야만 주어진 삶이 끝나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예수님의 환영을 받으며 천국 문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는 원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세상 모든 족속에게 알리기를“(눅 24:47)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유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증거 해야 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히 2:3)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활용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데 앞장서는 우리들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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