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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그리고 원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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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그리고 원균(3)

 

 “난중일기”가 무엇인가? 이순신 개인의 일기다. 누구든 자기 일기를 쓰는데 자기를 높이 평가하여 쓴다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 상식이다. 자기를 폄훼하여 쓴다면 그것은 천치나 하는 짓이다. 때문에 이순신도 자기에 대해 과대 포장을 해서 썼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시에 이순신은 전라도 좌수영 통제사로 있으면서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용과 같은 맹장이었다. 싸울 때마다 승리를 하여 22번이라는 승리를 했다고 자신의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지만, 정사(正史)와는 상대적으로 과장된 것이 많다.


 원균 역시 육지에서는 최전방 용맹무쌍한 정예부대였고 백전노장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총부대 사령관이었다. 그는 늘 최전방에서 호시탐탐 오랑캐들과 싸워, 싸우는 대로 적을 섬멸하여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맹장이었다. 


 그렇다면 왜 원균이 간신의 낙인이 찍혔을까 복잡한 조정의 사정이 있지만, 첫째는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고, 둘째는 조정공신들의 탁상공론에 휘말렸다는 것이 젊은 사학자들이 새롭게 밝혀낸 역사적 논리다.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조선 천지는 왜놈들이 주둔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투에 지치고 사기가 꺾여 오합지졸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다 바다에선 이순신이 수로를 막고 있어 본국에서 오는 물자가 끊겨, 저들 스스로 자멸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려면 일본 수군을 섬멸해야 한다며, 원균을 경상 우수사로 보냈다. 바로 그것이 원균으로 하여금 역사의 간신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원균이 육지에서는 맹호 같은 장수였지만, 바다에서는 차돌맹이다. 용맹만 하다 해서 수영은 한발짝도 못 나가는 장수를 바다에 보낸 것은 섶을 짊어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란 꼴이라서, 일찌감치 승산은 결정되어 있던 것이다. 만약  반대로 이순신을 육지로 보냈다면 그 역시 원균과 똑같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원균과 이순신은 젊어서부터 각 궁장을 누비며 활쏘기를 즐기며 누가 우위라 할 것 없이 문무를 겸한 막상막하의 맹장들이었다. 그러다 두 장수가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것은 한산대첩에서 승리를 하고서부터다.
 

한산대첩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원균이 이순신에게 조정에 장계를 올리자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아직도 적들이 바다 요소에 진치고 있는 상태인데 이런 조그마한 것 하나 승리했다고 장계를 올리면 이길 때마다 올리기가 번거로우니까 적들을 모두 섬멸하고 올려도 늦지 않으니 “그때 가서 올립시다.” 하자, 원 장군도 그 말에 흔쾌히 따랐다. 


 그런 약속을 했음에도 며칠 후 이순신은 아들(이선)과 같이, 자기 좌수영에서만 승리를 한 것처럼 꾸며 장계를 올렸던 것이다. 이순신의 장계를 대강 간추렸다. 


 “신이 아들과 여러 장수들과 함께 목을 벤 왜적의 머리 90급을 왼쪽 귀를 잘라서 소금에 절여 올려 보냅니다. 그런데 신이 당초에 여러 장수와 군사들에게 약속할 때 ‘공훈을 바라는 생각으로 경쟁을 하다가는 도리어 해를 입어 사상하는 수가 많으니, 이미 적을 죽였다면 비록 머리를 베지 않아도 힘껏 싸운 자로서 제1의 공로자로 논하겠다.’고 두세 번 거듭 명령하였기 때문에 목을 벤 수는 많지 않으나, 공로를 세운 여러 장수들이 소선을 타고 뒤에서 관망하던 거의 30여 척이나 되는 적의 배를 쳐부수자 구름처럼 모여들어 목을 벤 것과, 본도 우수사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목을 벤 것을 합치면 거의 250급이나 되고, 그간 바다 한가운데서 익사하거나 혹은 베어낸 머리를 물에 빠트려 잃어버린 것도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본관의 여러 군사들이 분연히 몸을 사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껏 싸워 여러번 승리를 하였습니다만 조정이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이 막혀있는데다 공훈 등급을 만약 조정의 명령을 기다린 뒤에 결정한다면 너무 늦어 소신 임의대로 그들의 공로를 짐작하여 1, 2, 3등급으로 별지에 기록하여 올립니다.” 


 보다시피 이순신의 장계에는 원균과 함께 싸워 승리했다는 말은 한 곳도 없고 자기 아들과 부하들 공만 자랑해 올렸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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