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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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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물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산 정약용 유적지가 있다. 한강 부근에 위치한 곳으로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묘, 실학박물관, 문화체험 마을 등이 조성되어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정약용이 직접 설계한 거중기를 포함하여 그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약용기념관이 있고, 그의 묘역 아래로는 생가인 ‘여유당’이 있다. 홍수로 유실된 것을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지방자치제 덕분으로 아주 잘 단장되어 있는 것 같다. 지방마다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니.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목민심서라는 책을 쓴 다산 정약용에 대하여 건성으로 외워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산 공부를 조금 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다면 함께 나들이 삼아 들려봄이 좋을 듯한 곳이다.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에서 진주목사의 벼슬을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기로 소문이 나, 4세에 이미 천자문을 익혔고, 7세에 한시를 지었으며, 10세 이전에 이미 자작시를 모아 <삼미집>을 편찬했다고 하니 가히 천재적이다.

 

 

 


 22세에 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교우관계를 넓혔으며 재학 당시 이미 정조에게 인정을 받았고, 28세에 마지막 과거시험인 대과에서 2등으로 합격하여 벼슬길로 나갔단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파벌을 만들고, 어떤 빌미만 있으면 상대를 권좌에서 밀어내려 하니, 정순왕후가 권력을 잡았을 때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라는 명목으로 인해 지방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귀향지에서 그는 관리의 부정, 조정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지방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를 여러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무려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책을 지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로 후세에 추앙을 받게 되었으니, 글쎄… 그의 영특함이 그에게 약이 되었을까? 독이 되었을까? 

 

 

 


 다산의 업적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수원 화성을 건축한 것을 꼽는다. 공사기간을 10년으로 잡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거중기를 발명하여 2년8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단다. 그 거중기의 모형이 길가에 세워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렇듯 정치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문학발전에도 힘썼으며 과학, 의학 등 많은 분야에 업적을 남긴 정약용을 요즈음에 와서는 ‘동양의 다빈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이 낳은 천재이지만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다산 정약용! 그 유배 때문에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긴 정약용!


 참으로 우리는 이런 일들을 많이 되풀이 하는 역사를 가진 민족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욕심이 있는 사람 사는 세상에, 그리고 정권이란 이름의 정치가 있는 곳에는 다 대동소이한 일들이 아닐까? 


 자신과 비슷한 수준일 때에는 교류를 하고, 조금 못하면 무시하고, 조금 더 잘나면 시기하고 질투해서 모함하고, 아주 월등할 때에는 아부하던지 존경하는 인간들의 속성이 있는 한….


 지은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 잘 진열이 되고 깨끗한 정약용 실학박물관을 돌아보는 마음이 착잡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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