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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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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컨설팅
lhyunsik

소재찬 목사 "설교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설교가 산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마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바로 파악하고 지녀야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으로, 교사는 가르침의 은사로, 음악가는 연주로 실력이 드러나고 인정받게 된다. 그렇다면 인격이 갖추어진 목회자에게 가장 비중 있고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설교다. 성도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설교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물이 범람한 홍수 속에서 마실 생수를 구하지 못해 애타하는 자들과 같은 영적 갈급함을 느끼며 사는 것은 성도의 고민이자 곧 목회자들의 고민으로 직결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성장 요인 중 설교가 첫번 째고 다음이 영성과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프로그램이죠.” "소위 성장한 대형 교회 담임 목사치고 설교 못 한다는 목회자는 없다는 지적이다. 성경과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하는 목사가 전달 과정에서 실패하면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못하는 설교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설교는 후천적 요소가 99%입니다. 탁월한 설교가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노력의 결과이다. 모든 목회자가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부여하신 능력을 확신하고 부단하게 연습하며 준비하면 목회자 스스로 설교의 놀라운 변화와 감동을 발견하며 경험한다 ▲ 설교 컨설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 유대교는 제사고 천주교는 미사이듯이 교회는 설교가 중심이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설교를 체계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식으로는 많이 배웠지만 실제적인 교육을 받지를 못한 것이다. 따라서 설교 컨설팅은 설교작성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해석하고, 관점을 새롭게 조명하고,설교전달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체계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 다른 설교세미나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일반적인 설교학 강의나 세미나는 자신의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개개인을 적용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설교 컨설팅은 하나의 구조로 모든 목회자들의 설교를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징을 살리고 특출한 재능을 더 개발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 너무나 설교를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 설교를 목회자들은 '성경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에만 집중하면 나머지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잘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TV에서 성공한 외과의사를 본적이 있다. 외과의사에겐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손 기술이 필요하다고 깨달은 그는 집에서 이불을 꿰매는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내용과 더불어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설교도 전달의 리허설을 해야한다. ▲ 설교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가. - 성경본문 해석,전달의 기술,영향력의 결과 등 12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것에 따라서 목회자의 설교수준이 1점부터 10점까지 나타난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2점대에 머물러 있고 설교를 잘한다고 하는 목회자들은 5점대에 있다. ▲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로 한 사람말 꼽는다면. - 목회자마다 설교의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이다'라고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설교의 영향력'에서 한사람을 말한다면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이다. 천국과 지옥과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대비 구조를 가진 설교로 그는 교인들에게 변화를 강하게 강조한다. 영향력이 강한 설교이다. ▲ 설교 컨설팅을 받은 실례를 말한다면. - 설교를 들으면 그 목회자의 목회철학과 삶을 알 수가 있다. 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친구 목사의 설교를 컨설팅 했을 때 설교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부사' 등의 사용이 거의 없었다. 이런 것을 지적하고 '설교구조'를 반복해서 연습하게 한다면 누구나 설교수준을 지금에서 2점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설교도 자전거나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한번 그 자신의 구조를 배우면 평생을 가는 것이다. 1. 설교는 교회 성장의 첫번째 요소 지구상에 수많은 교회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모든 교회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지만 모든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지 않다. 어떤 교회는 일년에 몇 십 퍼센테이지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있는 반면 어떤 교회는 몇 퍼센테이지 정도로 침체하고 있다. "어떤 교회는 왜 성장하고, 어떤 교회는 왜 침체하는가?" 라는 질문은 모든 목회자들의 관심이다. 교회들을 연구하면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침체되는 교회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인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성장하는 교회는 보편적으로 중요한 세가지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대 교회 성장의 세번째 요소는 목회 프로그램이다. 현대는 '목회 프로그램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교회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 목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회를 성장시킨 목회자들이 각종 세미나를 하고 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 일대일 양육 프로그램, 새신자 프로그램 등이다. 이런 좋은 목회 프로그램은 더 많이 보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성장의 세번째 요소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교회 성장의 두번째 요소는 리더쉽과 영성이다. 목회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성도들에게 리더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고는 '목회'라는 자체가 되지 않는다. 리더쉽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이다. 이러한 목회자의 리더쉽은 성도들을 양육하고 지도할 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영성(영적 능력)은 목회자가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숨길 수 없는 영적 영향력이다. "영성 없는 목회는 주님 없이 혼자하는 목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목회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리더쉽과 영성이다. 교회 성장의 첫번째 요소는 설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자와 성도에게 전파하는 것은 모든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직무이다. 현대 교회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롭고 올바르게 전파할 때에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변화되며 영정 성장을 한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전파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과 권위는 없다. 목회자가 말씀을 전할 때에 교회 안팎으로 권위와 리더쉽이 형성하게 된다. 현대 교회들의 성장은 설교로 인하여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교 잘 하는 목회자는 큰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고 설교가 약하면 교회 성장이 더딘 것이 현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좋던 나쁘던 현대 교회 목회 구조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설교 잘하는 모든 목회자가 대형교회를 담당하지 않지만, 그러나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대부분 설교와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것은 현대 목회에서 설교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설교와 교회성장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첫째는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에게는 리더쉽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번째는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는 어떤 목회 프로그램을 교회에 접목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목회자의 설교로 나타나는 리더쉽은 어떤 목회 프로그램도 교회 사역에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이 교회 성장과 리더쉽의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교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풀어 해석하고 삶 속에서 지켜 행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에 불신자들은 가장 강력한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변한다. 불신자들이 전도를 통하여 교회에 왔을 때에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많이 느끼고 은혜 받는 경우가 예배 중에 설교이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얼마나 중요시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제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이 흥왕하며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 노력하면 설교도 향상된다는 믿음 필요 얼마 전에 뒤늦게 목회를 시작한 중년의 목사 한 분을 만나서 설교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목회자들의 설교가 향상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목회자들의 설교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목회자들의 설교 수준을 평가하는 것도 안되고, 설교가 향상 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사실 설교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목회자가 의외로 많다. 어떤 면에서 설교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설교가 바뀔 수 있다면 왜 바뀔 수 있는지 살펴보자. 지구상에는 크게 설교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진영이다. 이들은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설교의 핵심을 '선포'에 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주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포를 듣는 자는 하나님의 예정함을 받는자들만이 구원을 받고 성화되어 간다"는 주장이다. 이 말씀을 듣지 않는 무리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함을 받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귀가 어두워진 자들이라고 말한다. 주로 이들은 근본주의 계통이다.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일부는 설교의 전달과 결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론에 따른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설교자가 설교를 못하든 잘하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따른 것으로 설교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에 대해 현대판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이러한 관점의 목회자들 가운데 명설교자가 별로 없고 교회 성장률도 낮은 형편이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주권보다 사랑을 더 강조'하는 진영이다. 이들은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중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설교란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도록 해야 한다"라고 한다. 듣지 않는 자들에게 쫓아가서 주의 말씀을 잘 알아 듣도록 세심한 배려로 깨닫고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견해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청중의 문제점 뿐만 아니라 설교자의 자질과 설교 내용 그리고 설교 방법의 문제점이 있다"라고 한다. 주로 이들은 복음주의 계통이다. 이들은 교회 성장률도 높은편이고 명 설교가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설교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설교 연습도 부단히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설교자 자신의 자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연구하면서 근본주의자와 복음주의자의 설교에 대한 차이점보다 개인적 차이점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근본주의자들 중에서 설교를 연습하고 향상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설교가 바뀌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의 목회자들이 있다. 설교 세미나와 컨설팅을 할 때에 가장 어려운 점은 설교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번째가 설교에 대해서 연습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도 않거나 연습하지 않는 자세이다. 이것은 설교를 아주 잘 가르치는 방법과 코치가 있어도 향상될 수 없다. 설교가 향상되기 원한다면 먼저 설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되어야 할 설교의 패러다임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에게 설교를 잘 하는 능력과 은사를 이미 부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만이 명 설교자로 성장 할 수가 있다. 설교의 패러다임이 변하면 훌륭한 설교자가 될 수 있는 주춧돌이 놓인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말이 어눌하고 혀가 짧은 핸디캡을 갖고 있었지만 뒷산에 올라가서 부단한 연습으로 '황금입'이라는 목회자로 변했다. 그의 설교는 로마 황제의 군대보다 더 강했고 그의 설교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고 회개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들에게 언제나 설교의 능력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미 부름 받은 그의 종들에게 설교의 상당한 능력을 주셨다. 기독교 미래연구소의 설교 컨설팅이란 하나님이 주신 설교의 은사를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것뿐이다. 이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교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설교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교를 연습하지 않는 사람과 연습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의 명 설교자들은 설교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부단히 연습하는 자이다. 3. 적당한 설교 시간 '30-40'분 응답 가장 많아 설교에 대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주일 낮 예배 때에 설교 시간이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한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로부터도 자주 받는 질문이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설교 시간은 예배 시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즉 예배 시간에 따라 설교 시간이 길기도 했고 짧기도 했다. 1태 태양일(太陽日)을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누는 자전시는 그 기원이 고대에 있지만, 대략 1600년경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최초의 공중시계(公衆時計)는 1335년 밀라노에서 제작, 설치되었다. 잉글랜드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는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으며, 13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에서 종을 친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 속에서 예배 시간을 알려 주고자 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한번 예루살렘에 모이면 몇 주 또는 몇 일씩 성전에서 계속되는 제사예배를 참석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포되는 율법과 해석을 들었다. 초대교회 역시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가정과 굴과 들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온종일 또는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 드리곤 했다. 초대 교회는 예배 중간에 점심 식사를 위해서 쉬었다가 다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시대와 근세에 들어오면서 유대교와 초대교회 때보다 예배와 설교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지금처럼 짧지는 않았다. 현대 도시지역의 개신교 교회들의 주일 낮 예배 시간은 대략적으로 1시간 20분에서 1시간40분이 가장 많다. 이 가운데 설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5%-45% 정도이며 나머지는 찬양, 기도, 헌금, 광고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일 낮 예배의 설교 시간은 교회 마다 틀리고 어떤 경우는 교단이나 노회에서 권면하는 설교 시간이 있기도 하지만 대략적으로 20분에서 50분 사이에 설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30-40분 정도 설교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한국 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목회자가 김진홍 목사이다. 그가 17년 전에 어느 교회 부흥회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간증설교를 4일간 매일 2시간씩 설교를 했는데 설교가 끝나고 나오며 많은 성도들이 너무 아쉬워 했다. 말씀이 너무 좋아서 내일 저녁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는 푸념이었다. 그런데 어느 교회의 신자는 설교 시간에 제대로 눈뜨고 지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우리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저를 제우거든요. 아무리 장사라도 졸지않을 수가 없어요"하면서 핑계를 목사님에게 돌리는 바람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가장 잘 나타낸다. 즉 설교가 은혜롭고 감동적이면 2시간도 20분처럼 느끼게 되고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지면 20분도 2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중간계층의 평신도들에게 "주일 낮 예배때에 설교 시간이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을 한 적이 있다. 이 때에 20분(minute)이 11%, 30분이 53%, 40분이 25%, 50분이 6%, 60분 이상이 6%가 나왔다. 신앙이 한참 뜨겁게 성장한 성도들에게 설문을 한 것이다. 이들 중 78%가 주일 낮 예배의 설교 시간은 30-40분이 적당하다고 했다. 현재 예배 시간은 신학적 정의에 의해서 내려진 것이 아니고 현대 삶의 패턴에서 교회가 임의로 조절한 것이다. 설교 시간도 성경적 근거나 신학적 정의에 의해서 내려진 것이 아니고 현대 삶의 패턴에서 교회가 임의로 조절한 것이다. 설교 시간도 성경적 근거나 신학적 근거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설교를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예배의 요소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일 해야 한다. 이 통일성은 설교 주제를 중심으로 주제와 맞는 찬양, 기도, 설교 그리고 교제로 이어져야 하며 그렇다면 짧은 설교 시간이라도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교 시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성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깨닫고 변화되도록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절대 시간을 연구하고 정해야 한다. 30분을 설교해도 하나님의 심정을 전할 수가 있지만, 2시간을 설교해도 그렇지 못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 시간보다 하나님을 깨닫고 체험하는 설교의 내용이다. 주일낮 예배의 설교 내용들을 은혜롭게 정리한다면, 30, 40분의 시간이라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5.분명한 목적 설정이 전달력 높인다. 설교란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쓰여진 성경을 쉽고 정확하게 해석해서 현대의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이 정확하게 해석하고 전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은 분명하지만 성경 전체를 체계화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다. 성경은 해석이 필요한 책이기 때문에 교리와 교회사를 배우고 성경신학의 기초를 배운 목회자들이 성경의 내용을 평신도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성경을 잘 전달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수술을 잘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어려운 작업이다. 다양한 검사로 환자의 질병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도 이것을 수술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학적 차원의 기술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을 살리는 성경말씀이 있어도 설교의 전달은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마치 최첨단 의학 장비로 환자의 질병을 정확히 알아도 수술에서 실패하면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설교에서도 아무리 좋은 내용의 성경을 갖고 있어도 전달이 실패하면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설교의 전달력은 설교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설교를 연구해보면 전달력이 좋은 목회자들에게 3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첫번째로 분명히 메시지를 갖고 설교해야 한다. 전달이 좋은 설교는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고 설교의 내용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하나의 주제를 향한다. 그러나 설교를 어려워하는 목회자들을 연구해 보면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다. 설교의 주제와 목적에 상관없는 부분을 단지 예화가 좋기 때문에 삽입하는 것은 설교를 산만하게 하는 주 원인이 된다. 설교는 강력한 에너지로 분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의 주제를 설교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은 설교의 접촉점이나 성경 해석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설교문을 작성한다. 보통 이 두가지 부분을 중심으로 설교를 작성하면 설교문 전체의 흐름과 균형을 못 맞추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의 목적이다. 목회자가 선택한 설교의 주제에 대해서 목적의식을 갖고 설교문을 작성하고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회자들이 서론 부분의 접촉점이나 본론 부분의 성경해석에 집착하여 전체적 흐름을 소홀히 한단면 설교의 전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설교문을 하나의 주제로 통일성 있게 해야 한다. 둘째로 설교의 이미지가 잘 그려지도록 한다. 설교를 들을 때에 청중의 머리속에는 설교자의 말이 입력되어 이미지로 변한다. 즉 설교자의 말을 통하여 청중은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그린다. 이 그림이 잘 그려지도록 설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청중이 설교를 듣고 머리 속에서 그림을 잘 그려진다면 그 설교의 전달력은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설교는 청중에게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는 설교가 된다. 그러나 만약 설교자의 전달을 통하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지루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설교자는 자신의 말이 이미지로 변하도록 설교 연습을 해야 한다. 설교의 이미지가 나오는 설교를 하게 된다면 놀라운 설교자가 될 것이다. 셋째로 확신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설교자가 반신반의로 설교한다면 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겠는가? 설교자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복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하고 담대하게 전파해야 한다. 설교에 있어서 확신은 모든 전달의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 설교 전달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설교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것은 허곡에 설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교를 통해 부흥한 교회에 가 보면 설교자의 목소리가 작든 크든 확신찬 설교를 듣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청중에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설교자가 확신 있게 설교한 것 만큼 청중은 설득되고 변화된다. 하나님은 확신 있는 설교를 사용하여 세상을 변화시킨다. 6.감동을 넘어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 짧다.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 중에 일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명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다가 보면 이런 독백을 하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준비를 했기에 저렇게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 설교를 듣고 있으면 성경을 보는 예리한 눈과 고급스러운 예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줄거리 등은 많은 설교 준비 시간이 아니면 불가능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은 설교 준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대체적으로 자신들이 말하는 설교 준비 시간보다 짧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설교에 대한 프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서 성경을 보는 눈과 예화 그리고 감동적인 줄거리를 만들어서 하나의 강력한 설교가 된다. 둘째로, 언제나 설교를 잘 한다.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은 설교 준비하는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해도 보통 때와 별차이 없이 설교를 잘한다. 예배 시간에 성경을 힐끗 보아도 설교 할 때가 되면 논리적으고 감동적으로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동료 목회자들도 "저 목회자는 설교를 위해서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설교의 기복이 없고 심지어 설교 준비가 없어도 설교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독특한 설교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스타일이 설교의 프레임이다. 셋째로,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변화된다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설교의 초점을 이해와 감동에 맞춘다. 설교에서 은혜 받았다는 성도들의 말을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명 설교가들의 설교는 은혜를 넘어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은혜와 감동은 한 순간이다. 이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되지만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뿌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뿌리에서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열매는 가지에서 맺고 농부는 열매를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이 아니고 성도들이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교의 프레임이 있으면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를 넘어서 변화시키는 설교가 될 수 있다.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쁨이 크지만, 반면에 설교를 전하는 부담 역시 크다. 모든 목회자들은 설교 준비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이 시간을 줄여서 더 많은 목회 사역들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강력한 설교를 하고 싶어하고 모든 성도에게 은혜를 끼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주님의 충성 된 일꾼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설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은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목회자의 고민이다. 이 고민은 해결 될 수 있다. 명 설교가들은 설교의 일정한 틀이 있다. 이것이 설교의 프레임이다. 자신에게 맞는 독특한 설교에 프레임이 없으면 설교를 잘 할 수가 없다. 명 설교자들의 설교문을 보면 매번 일정한 형태가 있는 것을 발견하다. 설교를 위해 성경 해석과 예화들을 일정한 프레임에 넣어서 설교를 한다. 설교를 위한 어떤 정보도 일정한 프레임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심지어 이름없는 설교문을 보고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매번 독특한 설교의 프레임이 있다. 그래서 모든 명설교자에게 프레임이 존재한다고 할 수가 있다. 명 설교가들의 설교가 좋은 것은 프레임이 좋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프레임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설명하기에 너무나 적절하다. 그들이 만든 프레임은 강력하고 호소력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설교의 프레임은 너무나 중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은 설교의 프레임을 등한시한다. 그러나 설교의 프레임만큼이나 설교를 빠르게 향상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금 자신의 독특한 설교 프레임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명 설교가가 되기 위해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7. 4. 청중을 이해하면 변화시킬 수 있다. 목회자들의 설교를 연구하다 보면 설교를 잘 하는 목회자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이들은 성경 해석적 측면도 좋고 전달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적지 않는 수의 목회자의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 스스로 매우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설교가 좋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설교가 훌륭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제 설교를 듣고 교회 성장이 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라고 하소연한다. 그 분들의 설교를 분석해 보면 성경 해석적 측면이나 전달은 좋지만 한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성장하는 교회의 설교 잘 하는 목회자들을 분석하면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설교를 위한 성경 해석이나 전달의 기술보다 청중을 더 잘 이해 한다는 것이다. 청중을 잘 이해 한다는 것이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청중을 이해하는 것이 설교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 조사해보면 그것은 성경 해석의 능력이나 설교 전달의 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설교에 있어서 성경 해석이 중요하고 기본적이지만 성경 해석을 잘 한다고 해서 설교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성경해석을 잘 하는 것이 절대적이라면 주경 신학자들이 설교를 매우 잘 해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성경 신학자들 중에 뛰어난 설교자가 별로 없다. 설교에 있어서 성경해석학은 전부가 아니라 기본이다. 목회자들이 일반적으로 신학교에서 전문적인 수업을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성경해석학적인 지식의 기본은 이미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졸업 후에도 개인적으로 꾸준히 성경해석학에 대한 능력을 키운다면 설교에 있어서 성경해석학적 문제로 설교가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설교자가 청중을 이해하는 능력은 설교에 있어서 다른 요소보다 비중을 낮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교회 성장에 원동력이 된다. 설교자는 청중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청중 이해'란 구체적으로 '설교를 위한 청중 분석 능력'이다. 청중 분석의 능력이란 청중이 처한 환경(영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과 청중의 신앙 정도, 청중의 필요(영적, 물질적, 정신적) 등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설교를 할 때에 청중을 영적으로 깊이 있게 변화시킬 수 있다. 청중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동력은 청중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청중을 정확히 아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청중에 따라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법을 바꿀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위대한 설교자의 반열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위대한 설교는 3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그것은 청중을 이해하는 설교, 청중의 필요를 채우는 설교, 청중을 변화시키는 설교이다. 청중분석에 따라 주일 낮 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철야예배가 각각 틀려야 한다. 이 차이는 청중의 필요에 따라 설교의 내용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 받아야 할 자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구원 받는 자에게 성화를 하도록 은혜를 구하고 용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주로 주일 낮 예배는 복음설교를 우선으로 하고, 금요 철야 기도는 성화를 위한 설교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중에 따라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법이 다양해야 한다. 주일날 예배의 설교 초점을 성화에 둔다면 새로운 교인들이 설교로 인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는 어렵다. 예수님은 물이 필요한 여자에게 물을 갖고 전도하셨고, 유대교 지도자였던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남의 주제를 갖고 대화를 나누셨다. 예수님은 청중에게 알맞은 설교를 완벽하게 하셨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고, 그들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설교자는 청중의 내면과 영적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설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변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서 하나님과 청중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청중에 대한 이해는 명 설교가들이 되고자 한다면 꼭 터득해야 한다. 청중에 맞는 설교는 사막 한가운데서 생수와도 같다. 이런 목회자의 설교는 전달이 투박하고 매끄럽지 않아도 현재 청중에게 꼭 필요한 생수와도 같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큰 교회 성장을 경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