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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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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자<워치만 니/생명의 말씀사>
lhyunsik

*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자<워치만 니/생명의 말씀사>를 읽으면서 좋은 부분을 발췌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토론토그레이스 침례교회는 "워치만 니"와 무관함을 알립니다. ----------------------------------------------------------- 1. [사역자] 진리에 충실한 사람 진리에 절대로 충실한다는 것은 모든 사역자의 생애에서 제일 우선적이 되어야 할 문제이다. 사역자가 인간이나, 환경이나, 혹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물들어 진리를 수정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문제이다. 진리는 절대적이다. 어떤 환경 아래서도 모든 사람들이 변함없이 충성을 해야할 진리이다. 필요하다면 우리 소유 모두를 희생할 수 있으나 진리만은 결단코 희생시킬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진리를 굽혀 버리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우리가 진리에 언제나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가 우리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파괴할 때 진리를 무시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우리들의 표준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낮추어서는 결단코 안될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이 우리들의 부족을 드러낸다 할지라도,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그 표준을 파괴하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표준이 서 있는 사실 그대로 외쳐야 한다. 이 사람이나 혹은 저 사람이 진리를 지지해준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원래부터 그대로 진리이다. 주님이 신실하실진대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의지한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진리 자체이다. 우리들의 모든 교제에 있어서, 진리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우리가 오직 진리에 순종한다면 교회와 교회상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개인적인 문제마저 해결된다. 우리 각자가 진리를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진리에 스스로 순종만 한다면 주님의 축복은 모든 무리 위에 임하실 것이다. 아! 부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에만 오직 관심을 집중하고 또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단순히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라! 진리는 너무나 위대해서 우리 인간이 조작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진리 자체의 능력 발휘를 위해 진리의 고유한 권위를 신뢰하면 된다. 우리로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에 관한 우리의 올바른 자세를 취하면 된다 2. [사역자] 금전문제에 성실한 사람 이것은 실제적인 문제에 직결되는 만큼 여기에 분명치 못하면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사역자든지 "재물"에서 완전히 탈피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분명히 밝히고 들어서야 할 것은 재물이 하나님과 대치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실상은 이익 때문에 움직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구한다는 것은 비열한 노릇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당신들은 탐욕의 과정을 아시는가? 이 위험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로 처리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점점 더 미묘한 재물의 세력 밑으로 들어가 결국은 재물의 위력에 패자가 되어 버린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에서 "발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몇몇 사람에게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이 우리 앞에 "바른 길"을 두셨은즉 우리는 "발람의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바른 길에 서기를 주의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발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발람이 "불의의 삯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혹 가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높으신 하나님의 소명의 존엄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손에 든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할지라도 우리는 주고 또 주고 계속 주려는 준비태세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재정적 생각에 꼼짝 못하고 짓눌려 있는 사람은 재물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은 아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은 단련을 통해서 된 것이다. 우리 역시 주님을 섬긱 위한 준비태세가 되어 있으려면 단련을 통하지 않고는 안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사랑과 재산을 다 쏟아 놓는다면 이런 낭비를 진정 겁낼 필요는 없을진저! 우리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코자 한다면 세속적인 직업에 정직하게 일하자. 그런데 우리가 진정 주님을 섬기고자 할진대 우리들의 관심은 복음의 진전이어야지, 우리 자신의 진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굳게 다짐해 놓자.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사용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6:10). 오! 이 사람은 자기의 하나님을 알았다! 자기가 당한 필요가 얼마나 극심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재미나는 일은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부하게 만드는 처지에 있었다는 점이다. 바울은 "그들의 소유물"은 거절했으나 아직도 "그들 자신들"은 원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인격과 우리의 모든 소유를 이 사역에 온통 쏟아놓지 못한다면 복음 전파자로서의 고귀한 소명에 자격이 없다. 탐심은 철저하게 다뤄야 할 문제거리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은 모든 재정적인 문제에 관한 명확한 지점에 이르게 하자. 3. [사역자] 고난 받을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고난에 대한 올바른 마음 자세는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의 구비요건 중 기본적인 부분이다. 실로 시련과 징벌은 성도들이 성숙에 이르는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금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흔히 언급되어 오던 고난의 면을 보자는 것인데, 이것은 주님께 봉사코자 불 붙는 정열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임의로 선택한 고난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능히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께 유용한 인물이 되고자 한다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의 길을 자의로 선택하는 것은 근본적인 필요사항이다. 고난 받을 마음의 각오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즐겁게 선택했다는 뜻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평안할 때 고난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역경이 엄습할 때 주님을 계속 섬길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을 결심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 닥쳐 와도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 오! 우리 모두가 자기애를 훌훌 털어 버리고, 주님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우리를 포기하고 주님을 섬기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축구해 오실 떄 순순히 응해주게 되어야 할진저! 주님을 위해 우리를 철저하게 포기하면, 주님의 축복이 어쩌면 그렇게도 값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4. [사역자] 자기 몸을 쳐 단련할 줄 아는 사람 상을 타고자 경쟁하는 사람들은 엄격한 자기 통제를 가해야 한다. 게임에 들어가기 전 훈련기간 동안에는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며, 또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한다. 보통 때 같으면 다 할 수 있는 것도 절대로 훈련기간 중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이 실제로 경기에 임할 때 엄중한 규칙이 따르는데 그렇지 않으면 실격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만일 당신들의 몸을 통제해 오지 않았거든 하나님의 사역에는 절름발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좋으며, 더 넓은 분야에서 권위 행사를 하기 전에 먼저 몸을 다스리기부터 배워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사역자의 일상 생활에서 그 몸이 자기 주인을 모르고 지내왔다면 주인이 때로는 주님 사역을 위해 특별한 요구를 강요할 때도 있겠는데 이 때는 어떻게 몸이 말을 들어주겠는가? 하나 물어 보자. 당신은 당신 몸의 주인인가? 아니면 당신 몸의 종인가? 몸이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던가? 아니면 당신이 오히려 몸의 요구에 굴복하는가? 수면욕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데도,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는 대신 우리의 신체적 욕망에만 복종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실패한 것이다. 주님의 사역에 봉사하다가 보면 번번히 휴식 시간을 단출시킬 작정도 서 있어야 한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육신이 행하기에 무능하다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로서니 무슨 유익이 있는가?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도다." 주님의 몸은 주님께 순종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음식에 의존해서 시장기만 들면 힘을 못써서 일을 못해낸다. 음식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며 감히 육체적인 요구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주님은 자기 신체의 필요를 일단 무시하고 사마리아 여인의 영적 필요를 총족시키는 방법에 관해서 끈기있게 설명하셨다. 병들고 허약할 때는 보통 때 보다 더 과중한 요구를 몸이 원한다. 이런 환경 아래서 많은 그리스도의 일꾼은 일을 안하려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바울이 몸이 좀 좋지 않을 때마다 이 때는 휴식할 때라고 말해왔다면 자기에게 위탁한 일을 어떻게 성사했을 것인가? 병이 났을 때와 건강할 때 언제든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살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일의 필요성마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병나고 심히 고통스러운 때에도 주님의 명령이라면 몸의 모든 요구를 거절하고 주님께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 유용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우리 몸을 완전히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령적이다.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육신의 욕구에 "아니오"라고 말하기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다스릴 줄 알아야 거리낌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이 몸이 우리에게 순종하도록 명령을 내려야 한다. 5. [사역자] 주관적(독단적)이 아닌 사람 주관적인 사람은 너무도 자기 생각에만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거의 남에게 배울 필요가 도무지 없다고 한다. 그들은 너무나 자기들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엇을 넣어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딱할 만큼 진보의 속도가 느리다. 배움에 외면하는 태도는 주관주의의 가장 비극적인 한 장면이다. 도대체 사람이 배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발전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가 교훈을 그토록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반항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이젠 주저없이 선뜻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쉽사리 이 교훈을 배우고 또 그 다음 교훈을 배우기에 바쁠 것이다.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아 들일 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영적으로 발전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대하여 솔직하게 개방하는 일이다. 인도를 받을 줄 모르는 것은 주관주의적인 상태의 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주관주의는 하나님에게 문을 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수중에서 단련받은 적이 없는 그런 사람에게 사람들을 다스리는 일을 위임하시지 않는다. 우리들의 보호 아래 맡겨진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해서도 안될 일이며, 또 따라 올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 능력에 미치지 못하게 그들을 이끌어서도 안될 일이다. 하나님은 그가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주께 나아가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에 지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확신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실수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자신만만 할 수록 우리는 탈선하기 쉽다. 주관주의의 한가지 위험성은 우리들이 자기 신뢰를 믿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일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주관적인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채 지나면서 언제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변호한다. 그런데 자기가 제안한 것을 남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심히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기를 고쳐 나가기를 쉬지 않고 해 온 사람은 남의 지도자가 되기를 조심하며 또 다른 사람의 생애를 농간부리는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주님의 사역에 타협을 모르고 오직 성심성의껏 충성을 다 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도록 하기 위하여, 또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만드사 하나님의 가족들에게 억압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길을 자유롭게 이끌어 나가도록 주선해 주는 우리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하심 아래서 겸손의 미덕을 배우자. 6. [사역자] 말 조심하는 사람 말 조심을 하지 못한 탓으로 사역자의 가치가 말이 아닐 정도로 땅에 떨어지는 수가 허다하다. 주님 봉사에 유능한 도구가 되기는 고사하고, 말에 주의하지 않음으로 계속 사역자의 능력이 상실되어 영향력 있는 사역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여러가지 일을 경솔하게 함부로 말해 버린다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어떻게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우리 입술에 놓아 두셨기에, 오직 주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이 입술을 잘 지켜야할 엄숙한 임무가 부과되어 있다. "예"라고 해야할 경우엔 "예"라고 말하고, "아니라"고 할 경우엔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단순함을 배워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고민이다. 주님의 조들로서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끊임 없는 관계를 맺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듣는 기회가 너무나 많다. 따라서 스스로 조심하여 언제는 말씀 전도자가 되었다가 또 언제는 잡담을 늘어 놓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는 이런 함정을 피하려면 우리를 입조심을 물론 듣는 귀조심도 아울러 문제시 해야 한다. 우리들은 마땅히 알아 두어야 할 그 이상의 것을 지나치게 알아보려는 호기심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야기되는 문제는 사람들의 비밀을 계속 보장해 주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영적 문제를 우리와 피차 나눈다면 그것은 우리가 존중해서 꼭 지켜주어야 할 위임된 사건이다. 일하는데 필요하지 않는 한 결단코 이 비밀들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혀를 통제하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비밀을 폭로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냥 지날 수 있는가? 그들이 우리들에게 문제를 안고 찾아 온 것은 우리의 사람됨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역을 보고 온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준 모든 비밀들을 잘 지킬 줄을 배워야 한다. 자기 혀를 자갈 먹일 줄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일에 신임을 얻지 못한다. 부주의한 말씨 때문에 능력을 상실하여 막상 강단에서 말씀을 외칠 땐 맥 빠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생활 속에서 말에 조심해야 한다. 말에 조심하는 버릇을 기르지 않으면 성경 읽는데도 부주의한 사람이 될 것이다. 7. [사역자] 근면한 사람 영적 봉사활동에 적격이 되는데는 얼마의 영적 체험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그보다는 어떤 특수한 종류의 인격이 구비되어야 한다. 사역자의 인격과 사업의 성격과는 일치해야 한다. 주님은 자기가 필요한 사역자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역자가 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파괴할 것은 파괴하고 강화시킬 것은 강화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사역자로서의 특유한 특성을 형성케 하신다. 이 중에 한 자질이 근면이다. 사역자가 먼저 사역의 욕구가 넘쳐 흘러야 한다. 게으른 사람치고서 유능한 사역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없다. 유능한 사역자라고 하면 시간이나 정력을 낭비하지 안으려고 항상 경계하며 그지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사역자는 어떻게 하면 좀 놀아날 수 있는가 하는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께 봉사할 수 잇을가 하여 기회포착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수고롭다고 느껴지지 않고, 남을 위하여 시간과 정력과 물질을 아낌없이 기쁘게 바칠 수 있는 인격이 될 때까지 쉬지말고 훈련에 훈련을 쌓아야 한다. 바로 오늘 우리는 분발하여 일어나서, 우리 몸을 스스로 다스려 남에게 봉사하도록 하자. 우리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주를 섬기겠다는 말이 도대체 잠고대 같은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진리를 우리가 아무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고난 태만을 버리지 않는 한, 그 지식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주님 봉사에 "무익한" 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주님의 전에서 우리 자신들을 가차없이 엄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8. [사역자] 견실한 사람 견실성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역자의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될 또 다른 하나의 자질이다. 어쩌면 변덕스러운 그리스도인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들의 의향은 좋았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흔히 균형 잃은 사람이 된다. 베드로는 누구를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한 말 끝마다 거짓은 없었다. 그는 주님을 사랑했고 계속 따르려고 했었다. 그의 언행엔 마음 속에 이글이글 타고 있는 갈망을 표시한 것이다. 조금전만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있엇도 주님을 따르며, 생명을 버리기까지라도 주님을 따른다던 그가, 이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쳤다. 그에게 소용돌이 치던 감정의 파동이 이미 지나갔다. 베드로의 고충은 다만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인격 속에 근본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감정에 따라 움직였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예측할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은 순전히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열성은 때로는 아주 고상한 차원에까지 끌고가나, 또 어떤 때는 깊은 절망에 사정없이 떨어진다.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말하거나 행동이 무척 빨라 좋지만, 실상 그 충동은 하나님이 주신 충동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님의 종들의 생애에는 이와같은 근본적인 결점 때문에 주의 사업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따라서 근본적인 고충인만큼 근본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주님만을 위해 살고자 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라도 하고 싶지만, 주님이 베드로를 파괴했던 것처럼 우리들이 고집하던 자기신뢰를 파괴해놓지 않는다면, 계속 우리는 기분에 속아 살며 우리의 생은 끝없이 동요하다가 말 것이다. 계속해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신뢰한다면, 주님은 철저하게 우리를 깨뜨리사 감정적인 생활은 조금도 의존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도록 할 것이다. 주님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의 척도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욕의 척도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며, 또 주님이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 생애에도 변화를 일으켜 주신다는 사실이다. 명실공히 그리스도의 사역자다운 사역자가 되려면, 우리의 인격속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히 일어나야 한다. 9.[사역자]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역자 개개인의 생활에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 근본적인 요소이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더욱더 중요한 요소다. 인류에 대한 관심도는 모든 사역자의 기본요건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그의 사랑 속에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만큼 우리의 사랑 속에도 모든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 주의 종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심정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놓지 않고 있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주님의 활력소는 사람에 대한 정렬적인 사랑이다. 주님이 사람을 섬기게 된 것은 그가 먼저 사람을 사랑한데서 나온 결과다. 그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사람을 섬길 수 있었다. 사람을 사역자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은 고사하고 인간의 종도 될 수 없다. 우리 스스로가 날 때부터 죄인인데 어떻게 다른 죄인들을 선뜻 용서할 수 없단 말인가? 동료들의 결점이나 약점을 왜 이해해 주지 못하는가? 우리 마음이 폭넓지 못하고, 우리 시야가 좁혀있다면, 주님을 봉사하는 데에 우리는 별로 유용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 도대체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영혼을 구하는 일에 쓰일 수 있단 말인가. 사람 가운데서 사람의 아들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 사람의 종도, 하나님의 종도 어느 것도 되지 못한다. 개개의 영혼이 그토록 하나님에게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가 잃은 자를 찾아 나선다면, 부득불 의무감에 못이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억제할 수 없는 사라에 못이겨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자발적인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할 때, 봉사할 무제한의 일터가 전개되며, 또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될 것이다. 10. [사역자] 남의 말을 잘 알아 듣는 사람 그리스도의 사역자 개개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또 다른 하나의 기질은, 남의 말을 잘 알아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것이라 하겠다. 말하는 사람의 속을 다 알 때까지 들어주어야 한다. 이 말은 당신의 정신이 깨끗하고 영혼이 고요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 전에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귀는 듣기 위해 필히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사람을 돕는 문제는 병원을 찾아 오는 환자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일 보다도 더 어렵다. 주님의 봉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성도 개개인의 특수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을 개발하고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전문가가 되기까지 타인의 말을 듣는 기술을 배양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은 아주 주의 깊게 남의 말을 들어서, 들리는 말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귀에 들리지 않는 말소리도 분별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의 문제점을 가지고 상담을 청해 올 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은 말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실토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역자의 능력의 시험대가 여기 있다. 정확하게 알게 되려면 주님과의 관계가 밀접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영혼이 하고 있는 말을 분별하는 당신의 능력은 스스로의 영적 체험의 정도에 따라 나타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진정 마음으로 깊이 훈련을 쌓음으로써 이해력을 증강시킨다면 형제가 실토한 말들을 잘 분별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알아 듣지 못할진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들을 수 있을까? 만일 우리들이 우리 입만 사용하기를 배우고, 귀 사용하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의 난점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결핍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잘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는 일이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기를 배워야 한다. 당신의 정서 생활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이 기뻐해도 당신은 기쁜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며, 그들이 슬퍼해도 그 슬픔을 같이 나눌 수가 없다. 주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근본적인 필요는 십자가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이웃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는 데는 값싸고 손쉬운 길이란 있을 수 없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십자가가 우리 생애 속에서 깊이 역사함으로써 우리가 조용히 남의 말을 잘 청취할 수 있게 되는 내적 안정을 형성한다. 우리 스스로 주님과 깨끗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적으로 유리알처럼 투명한 생활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필요 사항을 명백하게 식별하고, 또 명백한 진단에 근거하여 개개의 사정이 요청하고 있는 특수 처방약을 이끌어 내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