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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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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의 특징(5)
lhyunsik

신약교회의 특징(5): 구약의 성령의 사역, 신약의 성령의 사역 신약교회의 특징(5): 2004. 10.31(일) 제목: 구약의 성령의 사역, 신약의 성령의 사역(신약과 구약 차이 중) 오늘은 성령의 사역에 관한 공부입니다. 우리는 이내 성령께서는 세상에서 특정한 기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소 변화가 생겼습니다. 구약에서는 성령님꼐서 “오셨다가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잠시 후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성도들 안에 영원히 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교회에서 사시고,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엡 4:30, 요 14:14)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는데도 아직 성령님께서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행 1:8절에 보면,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라고 말씀하시는데 아직 성령님께서 임하시기 전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는데 성령님께서는 아직 임하지 않으신 것이지요. 행 2:33절을 마저 읽어 보시면, “……아버지께로부터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으셨으므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이심을 받으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성령님이 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비로소 성령님께서 이 땅에 부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가 바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때입니다(행 2:1-4).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 중요한 이유는 이 땅에 성령께서 비로소 임하신 때 이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만으로도 아니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영광을 얻으시고 높임을 받으셔야 비로소 이 땅에 성령님께서 부어지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님께서는 주로 유대인들과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여기 사도행전 11장의 베드로의 간증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을 부어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 같이 하시더라.”(행 11:15) 베드로가 말을 시작할 때 그들 위에 즉 이방인들 위에 성령님께서 임하셨다는 말씀이지요. 언제처럼? 처음 오순절 때 우리 위에, 즉 유대인들 위에 임하신 것 같이 임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 떄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되,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 (행 11:16) 오늘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은 구약의 성령님과 신약의 성령님께서 특별히 임하신 것의 차이입니다. 구약에서의 성령의 역할은 주로 사역, 어떤 일을 해 내는 것, 그 일을 위해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과 관련해서 성령님의 역할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성령님은 한 분의 인격으로 완전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대신한 또 다른 분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요 14:26). 그분은 성령님이시며 “위로자”라는 이름으로 한 인격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인식할 때, 어떤 일들을 하기 위해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서 의지하는 것은 여전히 구약적인 방법으로 성령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을 구한다든지 어떤 이적들과 또 다른 무언가를 어떤 이적들과 또 다른 무언가를 해내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구하는 모든 종류의 일들은 다 인격자이신 성령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수행해내기 위해 잠시 임하신 성령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령님은 사람들 안에 계셨지만 영원히 내주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단 한번도 어떤 개인을 거점 삼아서 그 사람과 평생을 머물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령님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특정한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출애굽기 31장에서 브살르엘과 아흘리암과 같은 경우에 하나님의 성막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 성막을 하나님께서 다지안 하신대로 건축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브살르엘과 아흘리암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성막건축의 일을 해낸 것입니다. 삼손의 경우도 말씀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힘으로 구출해 내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임하셨던 것입니다. 미디안의 침략자들로부터 승리하기 위해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특정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성령님께서는 임하셨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구약시대에 성령님께서 사람들에게 잠시 머물고 거했던 일들이라면 오순절 이후에 주님께서 특별히 약속하신 성령님은 한 분의 인격자로서 다만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거하시고, 교제하시고, 이끄시고 모든 일을 다 감당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님께서 한 인격으로 오신 것과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끄시는 한 위로자로서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한 일, 주님의 힘든 일, 어려운 일들을 해내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와 함께 영원히 거하기 위해 오신 신약시대의 특별한 목적과 의도를 완전히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님이 내 안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시대입니다.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 안에 성령님께서 오신 것은 그 사람의 행위와 관련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착하게 살려고 결심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내가 거듭났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오신 이 성령님은 나의 어떤 태도 때문에 떠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성령님께서 떠나셔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 사람 위에 임하셨을 때 그 사람이 거부하면 떠나셨습니다. 삼손의 경우도 나실인으로서 머리에 손대지 말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나 그가 한 여인에게 유혹되어 머리가 깎였을 때 그의 머리가 깍은 것이 문제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자임을 포기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삼손에게서 떠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령님의 임하심의 특징은 어떤 특정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한 개인에게 임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부합되지 못하면 떠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약시대에는 어떤 일을 해내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쳐를 삼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고 함께 영원히 거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알지 못하면, 오늘 누가 성령을 아무리 말한다 할지라도 왜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 마음 안에 거하시는가를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령님께서는 내가 죄악을 범하는 동안에도 큰 고통을 당하시며 내 안에 거하십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분께서 나의 죄악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인격이심을 우리가 조금만 알아도 우리의 모든 생활 가운데 성령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동은 다 성령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긴밀한 연관 가운데 절때로 떠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특징 중 한 가지를 말씀 드리자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전부를 말씀드린다면 성령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을 따라 걷든지 성령을 따라 걷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수히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딱 두 가지만 구분하십니다. 육신을 따라 걷는 것인가,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인가 이 두 가지이지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보면 복잡한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주님께 나아가서 보면 얼마나 단순한지 모릅니다. 정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이라면, 그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한 분 인격이신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신 것입니다. 과연 내가 성령님을 따를 것인가, 내 마음대로 할 것인가 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착한 일을 한다 해도 육신을 따라 할 수 있으며, 주님 앞에서 좋은 일을 한다해도 그 냥 내 육신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 육신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다 육신을 따른 것입니다. 술마시고 담배피고 보기에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육신을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조율해서 그분의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라면, 그 일이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모든 것이 육신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지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육신을 따라 행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를 성취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이 말씀에서도 결국 육신이냐 성령이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 13절 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니니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 8:12-13) 이 말씀도 역시 육신을 따를 것이냐 성령을 따를 것이냐 둘 중 하나를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하는 일로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고 사람들 앞에서 가장 좋게 보일 수 있지만, 다만 한가지 과연 내가 행한 일이 성령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이며, 계획된 것이며, 성령으로부터 나온 일인가 입니다. 성령을 따라 걸으셨습니까? 이나면 스스로 계획하여 당신의 길을 만들어 갔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이는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기 때문이라.”(고전 2:10) 이 말씀에서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높으신 모든 진리들입니다. “자신의 영으로 계시 하셨다”는 말씀은 진리를 알려면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통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눈이나 귀나 느낌으로 알려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영”으로만 하나님의 진리들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읽든지 설교를 듣든지 성경공부를 한다든지, 이러한 일들이 다 좋지만 그냥 공부를 해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을 통해서 깨달을 것이 있다면 정말 값진 것이지요. 이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역사 하심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하십니다. 그 사실만 주의하시면 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약시대의 특징을 모르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 신약시대를 살 수가 없습니다. 왜 지금 이 시대에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내 안에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성령님을 통해서 나와 교제하시고,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시기 위해서 내 안에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님을 무시하면, 가볍게 여기면, 누구든지 성령의 뜻에 복종치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의 지식은 많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뜻 그 자체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성령님은 가장 중요한 분이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말하는 모든 사람들,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인식을 전혀 없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 잘 따른다 하는 것은 모두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 자신의 영, 성령님으로만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그것을, 사람의 마음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깨닫을 수 없는 그것을 오직 “자신의 영으로만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을 힘입을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부터 주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를 움직여 주셨기 때문에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입술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인 주님을 섬기는 것은 모두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은사는 성령님에게서 주어진다는 말씀이지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은사는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의 분배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는 모든 문제는 성령님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은사를 모르면 주님을 섬길 수가 없지요. 은사를 모르면 주님을 섬길 수가 없지요.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못한다는 말씀은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신학교를 나오면, 성경을 어느 정도 공부하면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아는 것은 성령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계획을 세워놓고 뭔가 하려고 할 때 능력이 좀 부족하여 이 일을 도우시고 채우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고 그분의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생 그렇게 살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주 조금이라도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바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섬기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도 그렇습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의 저자가 성령님이신데, 이 분과 상관없이 성경공부를 하고, 성경을 적용하고, 사용하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면 모두가 틀린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대의 주관자 이심을 우리는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교제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 여쭈어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매사에 그분과 모든 일을 의논하고, 상의하고 조언을 받고, 그분의 위를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섬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모든 것 다 모든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본질을 아는 것은, 성령님께서 내 안에 인격으로 거하신다는 것을, 영원히 내 안에 한 인격으로 거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