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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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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사역 by 최 항 목사(갈보리 침례교회)
lhyunsik

고린도후서강해 3(1) by 최 항 목사(갈보리 침례교회) 본문: 고후 3:1-6 제목: 신약의 사역 <본론> 오늘은 고린도후서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 고린도후서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란 표현이 있었는데 고린도후서 3장에는 그리스도의 서신(편지)이란 말씀이 눈에 띕니다. 그리스도의 냄새라든가 그리스도의 서신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 특징을 잘 설명해 줍니다. 냄새라고 하면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표현인데,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사람이든 또는 멸망하는 사람이든 간에 분명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서신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분명한 영향을 주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린도후서 3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영적인 원리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먼저 고린도후서 3장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 시작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추천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너희로부터 추천하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는 우리의 서신이니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고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고후 3:1-2) 1.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이 읽는 그리스도의 서신이다. 우리는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왜 사도 바울이 추천하는 문제를 언급하는 지 잠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읽은 말씀대로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람들을 추천하고 추천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나 유명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추천서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의 추천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의심하도록 하여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서나 다른 제자들의 추천서가 없이 어떻게 사역을 할 수 있느냐고 의심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섬기는데 자신도 추천서가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추천서는 고린도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종이에 기록된 글로 자신을 입증하려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서신이며 자신의 추천서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삶과 그의 섬김의 결과가 고린도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들에게 수고하지 않았다면 고린도 교회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친히 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고린도 교회에게 무엇인가 검증 받아야 될 사람이 아닙니다. 열매를 통하여 그 나무를 안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도 바울의 섬김의 결과가 고린도 교회이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거나 고린도 교회를 섬기고자 할 때 바울은 더 이상 추천서가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한 가정의 자녀들이 아버지가 오래 동안 출타했다가 집에 들어오자 정말 당신이 아버지인지 입증할만한 증명서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증명서를 가지고 오면 진짜 아버지로 인정하겠다고 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왔던 것을 모든 성도들이 알고 있는데 몇 달 떠나있었다가 다시 집에 들어오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나은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역을 의심하며 그에게 추천서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가련한 일이며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태도에 단순히 분개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참된 섬김, 즉 참된 신약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심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도록 알려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고후 3:3)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편지일 뿐 아니라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라고 말씀합니다. 자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갚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냄새가 되었다는 말씀을 보았는데 지금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사역을 하자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사람들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사역의 결과가 그리스도의 서신이었다는 표현을 볼 때 우리는 참된 섬김의 목적은 여전히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냄새가 되었듯이 그의 사역을 통해 낳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서신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서신이라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실을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을 통해 사람들을 섬기게 하신 목적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을 교회에 주신 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어 그들의 삶과 행실을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고 사람들은 믿는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읽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책을 보고 예수를 믿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보고 예수를 믿는다.■ 여러분!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읽으나 불신자들은 여러분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경을 읽는 만큼 사람들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단지 예배당에서만 읽을 수 있는 서신이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읽을 수 있는 서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배당에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었다가 예배당 밖에서는 세상 신문이나 잡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읽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되는 것은 먼저 기독교 서점이나 잘 꾸며진 예배당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과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서점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 알게 하시기 위해서 취하신 방법은 그리스도의 서신인 교회며 믿는 이들이지 기독교 서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종교서적으로 달려가며 기도원이나 거대한 예배당으로 달려가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서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흥미를 잃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과 행실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비와 벌은 꿀이 있는 살아 있는 꽃에 날아듭니다. 여기에 진짜 꽃이 아닌 조화가 있다면 절대로 나비나 벌은 달려들지 않습니다!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그리스도를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절도범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안에서 진심으로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몇 년후 그가 출감하던 날, 다른 죄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처음에는 성경도, 목사님도 위선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기에 빨리 나가기 위해서 약은 수단을 쓰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계속해서 지켜보았습니다. 감방에서도, 식당에서도, 작업장에서까지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진실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누군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고 여러분에게서 그리스도를 읽고자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의 참된 목적은 믿는 이들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이 주일에 예배당에 앉아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책을 읽고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작은 삶의 일부입니다. 결코 이것이 목적이거나 결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예배당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배당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어디서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서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을 가꾸는 농부가 필요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사람을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곧 내 이름으로 일컫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 (사 43:7)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사람을 통해 그 분의 영광이 온 우주에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믿는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안에 말씀의 사역이 이루어졌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를 읽게 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신약의 사역 대 구약의 사역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그리스도의 서신으로 발견될 수 있겠습니까? 항상 문제는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과 행실이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는,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읽어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될 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은 이 이상 더 전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아예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십시오. 오늘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데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스스로 그리스도의 서신이 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사역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고린도후서 3장 3절 말씀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은 참된 사역의 결과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로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이지 자신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영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영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섬김을 받지 아니하고는 결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서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사역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사역은 곧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를 섬기셨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섬김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역사할 수 있도록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은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서신이 된 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며 또 돌판으로 쓴 것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잉크로 쓴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돌 판에 쓴 것과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을 대조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대조하여 설명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사역이 어떤 사람들의 일과는 다른 것임을 구분하여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추천서를 강조하며 사람의 인정을 강조하고 외적인 것을 강조하는 사람의 일과 구분하기 위해 하신 설명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써 준 추천서와 같이 잉크로 쓰여진 글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로 항상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의 조항들을 강조하며 외적으로 무엇인가를 갖추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안식을 지키며 금지된 음식을 삼가는 방식으로 자신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외적인 표시가 사람의 가치를 정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러한 외적인 모양으로는 결코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결코 할례나 율법의 의무사항을 준수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를 읽지 못합니다. 그러한 것을 결코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육신의 마음 판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율법의 사역과 복음의 사역을 대조합니다. 곧 구약의 사역과 신약의 사역을 구분합니다. 구약의 사역은 율법입니다. 그것은 돌 판에 기록된 율법으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율법의 방법으로 사역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율법의 방법으로는 결코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새길 수 없습니다. 잉크로 쓰고 돌 판에 기록하는 방식은 율법의 방법이지만 성령을 통해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일은 신약의 방법이며 복음의 사역입니다. 참된 신약의 사역은 이렇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그 사람의 마음 판에 그리스도가 새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새겨진다는 말씀은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살아 계신 성령이 그 사람 안에 역사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온 통 그리스도로 가득 찹니다. 그리스도로 새겨집니다. 성경에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 읽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서신이란 사람의 마음 안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새겨져 그리스도가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참된 신약의 사역이란 이렇게 여러분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만이 가득하고 그리스도만이 전부가 되도록 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고 그리스도와 동행을 하고 그 사람 안에 오직 그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부가 되게 하는 것이 신약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하고 저것을 금지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가, 없는 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율법의 사람은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만을 관심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사람의 마음 안에 오직 인격이신 그리스도만이 관심의 대상이며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율법 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이는 율법 조문은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 (고후 3:6) 사도 바울은 이 신약의 사역이 영의 사역이며 생명을 주는 사역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일이 신약의 사역이며 생명을 주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돌 판에 쓴 것과 같은 율법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율법의 사역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정죄하고 사람을 죽입니다. 율법은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율법 조문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글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의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만 글자이며 다만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 판에 기록된 율법과 같이 다만 옳은 말, 글자를 통해서는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율법 조문의 역할은 사람을 정죄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서신이 율법의 조항들 또는 옳은 말들, 즉 추천서와 같이 잉크로 쓴 어떤 글자들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은 살아 계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일입니다. 결코 율법의 조문과 같이 잉크로 쓴 글자, 돌 판에 새겨진 글자로는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사도 바울과 다르게 사역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추천서를 언급하고 율법의 조문으로 사역합니다. 유명한 사람에게서 좋은 추천을 받았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되거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목사가 믿음을 칭찬한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신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조금도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새길 수 없습니다. 돌 판에 기록된 율법과 같이 옳은 말과 문자는 결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보다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옳은 것을 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외적인 것을 가짐으로써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참으로 잘 못된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어떤 것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율법의 정신을 따르는 방법으로 어떤 것은 금하고 어떤 것은 행한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역사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것입니다. 죄인이 그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결코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마음 안에 한 분 인격이신 그리스도로 가득 차지 않는 한 그는 어떤 변화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의 사역을 한 것은 믿는 이들에게 새로운 조항을 주고 추천서와 같이 사람들이 좋게 여기는 어떤 것을 갖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도록 섬겼던 것입니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을 통해 각 사람 안에 그들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지고 새겨지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구약의 사역과 신약의 사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곧 율법의 사역과 영의 사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사역은 죽이는 것이고 영의 사역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영의 사역은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새기고 그리스도로 채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단순히 이러 저러한 방법을 가지면 되겠구나, 또는 무엇이 더 옳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만 발견한다면 그것은 생명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신약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저 또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새겨지고 그리스도만을 주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자 하십시오. 단순히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지말고 사람의 눈에 보이기 위해 교회 생활을 하지 말고 오직 여러분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께 온 마음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마음 안에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새겨주시도록 구하십시오. 그것만이 여러분에게 참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3. 율법의 일을 하지 말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기 위해 신약의 사역의 중요함을 인식하였다면 여러분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결코 율법의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이 영적인 그리스도인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율법이 됩니다. 이 말은 결코 자녀를 징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율법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의 조문이 되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끊임없이 알려준다고 해서 자녀들이 결코 생명을 얻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녀들에게 훌륭한 율법 교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자신이 곧 하나님의 표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옳고 그른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옳은 것인데 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칩니다. 그리고 저것은 왜 옳지 않은데 왜 하느냐고 다그칩니다. 자신 안에도 평강이 없고 자신 안에도 생명으로 충만하지 않은데 계속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율법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율법이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율법의 조항들을 가져다가 다만 그것을 옳은 글자로서 제시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자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남편을 둔 자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성경을 알고 있는 자매님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남편이 영적인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매님들 안에 동기도 참으로 의심스러운 것이지만 항상 남편의 육신적인 행동에 혀를 내두르며 기회만 있으면 거룩한 잔소리를 합니다. 왜 당신은 성경을 안 읽느냐? 왜 설교 시간에는 조느냐?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왜 그것은 하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그것을 하느냐? 항상 영적이지 못한 남편에 대해 불만입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남편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남편에게 자신은 율법의 역할을 합니다. 경건한 자매님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결코 율법의 역할을 해서는 남편이 변화 받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남편을 생명에 이르지 못하도록 항상 방해하는 것이 바로 아내들의 거룩한 율법의 잔소리임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아내들이 자신들마저 남편에게 이러한 소리를 안 하면 남편은 영영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들으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율법이 되어 율법 조문이 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남편을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이끄는 일임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생명으로 이끄는 것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새겨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tv를 치우고 재떨이를 치우고 술잔을 치운다고 해서 여러분의 남편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주목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있어야 다른 것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새기시고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변화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들 앞에서 잘도 우쭐거리는 남편들도 잘 들으십시오. 자신의 행동은 항상 엉망이고 전혀 그리스도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데 자신의 아내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고 저렇게 하는 것이 육신적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에게 맡긴 것은 단지 밥을 짓게 하고 아이를 낳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돌보고 양육하도록 주신 것을 알지 못합니까? 남편되신 형제들도 결코 율법의 조문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매된 아내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음식이 썩지 않게 하려면 계속해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도와 보호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자매된 아내를 항상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주목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내를 통해 항상 여러분의 속을 씁쓸하게 하는 일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역할을 해서 다른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사역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도록 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는 일 없이 결코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서신으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신약의 성도들로서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섬김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사망에 이르는 죽음의 섬김을 갖고 있는 살펴야 합니다. 4. 자신이 성령이 될 수 없다. 한 가지 그리스도인의 서신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 또한 주의 할 것은 우리가 율법의 조문과 같은 역할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결코 성령 그 자체가 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조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율법의 일을 대신하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결코 성령이 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지 자신이 성령이 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성령의 역할까지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새기려 하고 억지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를 씁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사람을 반드시 구원하려는 것까지 책임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을 책망하고 의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만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마음을 열도록 하시고 그리스도로 그 사람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써 복음을 선포하도록 명령하신 것이지 사람을 구원시키도록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복음을 듣는 사람 대신해서 무엇인가를 결정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성령께서는 성령의 하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하셨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성령께서는 성령께서 하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신약의 사역자로 어떻게 섬겼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요, 오직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고후 3:4-5)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서 무슨 능력이 있어서 고리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도록 사역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오직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신약의 사역자로서 고리도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지를 보면서 우리 자신이 무엇을 주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기 위해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새겨지기를 바래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섬길 때도 마찬가지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가득 채워지고 그리스도가 각인이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의 서신이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부터 그리스도만이 가득 채워져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리스도만이 새겨질 있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서신이니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고 모든 사람이 알고 읽은 바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왜 우리의 서신이며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다고 말씀하시냐면 이는 사도 바울 안에 먼저 그리스도가 가득 채워져 있고 그리스도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그리스도가 새겨지고 가득 채워져야 다른 사람 안에도 그리스도가 가득 새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