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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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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사람을 위한 기도
lhyunsik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사람을 위한 기도 조회 : 3 스크랩 : 0 날짜 : 2004.09.25 03:24 마6:9 우리는 앞에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1)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미리 알고 채워 주시는 아버지이시며, 2)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3) 하늘에 계신 전능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신뢰와 경건한 자세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은 우리 영을 성장시켜 주며, 우리의 영에 기쁨을 일으켜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죄를 짓고, 상처를 입은 나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바라볼 때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도 올바르게 볼 수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사람을 위한 기도 주기도문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간구와,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로 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에 대한 내용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기도(3=하늘의 숫자) 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함(성부) 2)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도함(성자) 3)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함(성령) 둘째 사람을 위한 기도(4=땅의 숫자) 1)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성부). 2) 우리의 빚진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성자) 3) 시험에 대한 보호(성령) 4)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성령) 이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하늘의 숫자인 3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에 대한 기도는 땅의 숫자인 4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모두 합하면 완전 수인 7이 됩니다. 이러한 기도의 순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고 나서, 그 후에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뜻을 구하기도 전에 자기 필요를 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바람직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속 종교나 불교에 젖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설득해서 축복을 빌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에 익숙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분명히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구한 후에, 우리의 필요를 위해 구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 보다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축복을 받지 못하면 시험에 들어서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자세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고(9(하)-) 첫째로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가장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아버지의 이름=하나님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 여기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이름을 그 이름을 가진 사람과 동일시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야훼)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아버지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야훼")란 말이 나오면 그 이름을 "주님"이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권장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성경을 쓰다가 "여호와"(야훼)란 말이 나오면 글을 쓰던 붓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나서야 그 이름을 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란 말이 100번 나오는 시편이 있다면 100번 붓을 빨고 100번 목욕을 하고서야 그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모독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기원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존경을 받기를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할 첫 번째 기도 제목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도 전에 자기의 필요를 먼저 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 34편)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나와 함께 주를 찬미하라. 우리 함께 그의 이름을 드높이자." 이것이 바로 올바른 성도들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기도 제목입니다. 사실 이 첫 번째 기도는 기도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기도의 첫 걸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과 경배는 인간을 지은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시편 기자처럼 "찬양하라 내 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는 노래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크신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자신 뿐 아니라, "온 천하 만물들과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말로만 아니라, 삶으로도 우리와 가정과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삶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일이 계속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통계를 보니까 기독교 인구는 19억으로 지난 해 보다 약간 줄은 반면, 이슬람교 교인은 2억에서 자그마치 12억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깨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행실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음 받은 첫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마 6:10-)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2. 왕국이 임하옵시며(10-) 주님은 두 번째로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할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땅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간교한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다가 그 영광을 가로 막는 사탄의 권세가 깨뜨려지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왕국이 임한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할까요? 이 말은 교리적으로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속히 천년왕국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계시록을 쓰고나서 맨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버지의 왕국은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 땅에 완전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기를 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속히 천년왕국이 완성되기를 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모되어 셋째하늘로 휴거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 말은 우리 마음이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을 좆던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성령의 통치를 받게 되는 순간, 그들은 이미 사탄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1;20 "그러나 만일 내가 하나님의 손길로 마귀들을 쫒아낸다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한 것이 분명하도다." 그리고 또 주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눅17;21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라." 이 말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성령을 통해 중생할 때에 그 마음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사탄의 세력이 무너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속히 주님이 재림하셔서 아버지의 왕국이 완성할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사업이나 나라를 구하기 전에 먼저 이러한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두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3.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0) 주님은 세 번째로"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 왕국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수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얼마나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뜻을 멀리 떠나 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만연해 있는 불법과 불륜과 죄악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교회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고 공의와 진실이 시행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성령의 힘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 *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 * 우리는 앞에서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 즉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은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여러 가지 필요를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재물과 명예를 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권력과 배우자를 구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시간과 정력을 모두 소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 꼭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성도들이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4가지를 구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일용할 양식, 2) 죄사함, 3)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4) 악한 세력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 이 네 가지 중에서 첫 번째 주제(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일용할 양식은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가 구해야 할 "일용할 양식"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만 선하고 육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인 것을 구하는 일은 선하지만, 육신을 위해 구하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은 물론 육신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은 바로 우리가 오늘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루터는 본문에 언급된 "일용할 양식"을 음식과 건강, 집과 가정, 교회의 형제들을 포함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더욱 더 깊은 사랑과 신뢰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2. 왜 일용할 양식만을 구해야 하는가? 그러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일평생 먹고 살 양식"을 구하라고 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만"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만일 주님이 우리에게 "일평생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면, 우리는 날마다 양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그 날 필요한 양식만"을 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 날 그 날 먹을 것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먹을 것을 한꺼번에 만드실 수는 없는 분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오늘에 필요한 양식만을 구하라고 가르쳐 주셨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이 이렇게 명하신 이유는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우리가 매우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날 하루의 생명을 하나님께로 허락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언제 거두어 가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 하루 사는 데에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둘째로 주님이 이렇게 명하신 이유는 내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을 믿으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근심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내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족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에 쓸데 없는 욕심이나 탐욕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모름지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그날의 재앙은 그 날로 충분하니라. 3. 성경적인 실례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일용할 양식을 거두게 한 사건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양식이 떨어졌을 때에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그 날에 먹을 것을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내일도 만나를 내려 주실 것을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 명령을 어기고 하루 먹고도 남을 만큼의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둔 만나는 다음날이 되자 모두 썩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거두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루 하루를 하나님께 의존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욕심이 많아서 쓰고 남을 만큼 거두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필요한 것 이상은 모두 다음 날 사라지게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분의 양식을 거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는 백성들에게 안식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명령을 순종하려면 내일은 만나가 내리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하루 양식만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안식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매우 당황해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양식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이것을 믿지 못해서, 안식일도 쉬지 못하고 일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이러한 사건은 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잠 30장 8절)을 보면 아굴이란 사람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며 내게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소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비굴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굴은 필요한 양식만을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족의 삶은 경건한 삶을 사는 데에 매우 유익합니다. 4. 일용할 양식을 꼭 구해야만 하는가?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꼭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실 것입니다." 이말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자기 자녀들과 날마다 대화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일평생 먹을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주셨다면,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고, 날마다 방탕하게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것을 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심프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마치 거대한 유산을 분배해 준 후에, 그것을 매일 조금씩 수표를 끊어서 쓰게 하신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표장을 주셨지만, 매일 매일 필요한 만큼씩 하나님의 결재를 맡아서 사용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도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5. 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면 왜 지구상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양식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일용할 양식을 거두지 못할만큼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밥을 만들어서 입에 먹여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양식이 될 것을 주신 후에, 우리 손으로 그 날 필요한 양식을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게을러서 그 양식을 거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난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둘째 일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거두고 그것을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부와 재력을 모두 독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쓰고 남은 것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 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를 가지고 나누어 주지 않으면, 그 재물은 탐욕을 채우거나 죄를 짓는 일에 사용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양식에 만족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6. 성도들은 왜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는가? 이 기도는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성도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부지런히 일용할 양식을 거두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는 사람들을 굶게 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을 해서 자기 양식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할 수 있으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거둘 부지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4;28 "도둑질하는 자는 더 이상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일하게 하라." 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많이 거두었을 때에 그것을 자기만을 위해서 쌓아두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쓰고 남을 만큼 거둔 경우 그것을 일용할 양식이 없는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 양식만을 구하기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익현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