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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kjv
토론토 은혜침례교회는 2005년 6월 12일 Canada, Toronto의 구원 받은 이 형제님이 운영하는 한 의원 부설 학원에서 10명 의 성도들이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한 형제의 열정적인 수고와 바른 성경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모임이지만,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주님의 공급으로 이겨내면서 토론토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본 침례교회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를 바탕으로 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 홈페이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성도의 교제가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오프라인 상의 성도의 교제이겠지요 *^^*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물론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에 견딜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교제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본, 홈페이지는 복음전파와 진리전파 외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답고 건전한 나눔과 섬김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공간이 주 안에서 규모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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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성경
lhyunsik

진리의 성경 조회 : 5 스크랩 : 0 날짜 : 2004.09.14 06:55 주님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님들 안녕하세요? 아래의 글은 벤쿠버 그레이스 침례교회에서 9/12 성도들이 항께 나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읽어보기가 지루하시면 제목과 성경 구절만 참고 하십시오. 진리의 성경 딤후 3:14-17 14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15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버지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말했습니다.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오늘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성경하면 영어로 "바이블"이라고 하는데 바이블은 단지 책이란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성경에 직접 나타나는 단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스크립쳐"라는 단어가 신구약 53개 구절에 나오는데, 대부분 신약성경에만 나오고 구약에는 단 한 번 나오는데, 다니엘서에 나옵니다. 다니엘서에 단 한번 성경이 언급될 때 그때의 표현이 바로 오늘의 제목인 "진리의 성경"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진리를 다룰 때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기록된 진리 말씀인 성경을 주목해야함을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우리가 매일 읽고 상고하며 들고 다니는 이 기록된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성경이 영감으로 주어졌다는 놀라운 구절일 뿐 아니라 그 성경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는데 필수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문제와 관련해서 한가지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역은 사역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누구입니까? 사역자는 주님 곁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나 아론의 아들들이 그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신약 시대에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나님의 사람이며 사역자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놀라운 보혈로 구원하실 때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긴 하나님의 사람이되 온전히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 한가지 중요한 명령을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며, 보다 더 온전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들이 온전해지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님은 주님의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디나 피니 웨슬리나 휫필드 루터 같은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들을 꼽는 이유는 그들이 놀랍게 주님께 쓰임받았기 떄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성경으로 진리로 사역한 자들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놀랍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형제 자매들이 많을 것입니다. 일생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섬기는 길을 가면서 주님이 필요한 일들에 우리가 쓰임받는 것은 종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주님 앞에 크게 쓰임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육신적인 마음이라고 정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사람 안에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쓰임받는다는 기준이 잘못되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진 기준의 잘못입니다. 제자들이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높은가를 서로 다투듯이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니라 참되게 주님이 필요한 장소에 주님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을 드려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자신을 드릴 수 있다면 또 우리의 일생가운데 그러한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상주심을 바라고 달려가는 자세는 격려 받아야할 모범된 자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각자의 일생이 주님께 드려져서 주님이 필요로 하는 일들에 주저하지 않고 온전하고도 전폭적으로 드려져서 섬기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주님, 쓰임받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각자가 자기 몸으로 섬긴 것을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더 많은 주님의 일들에, 더 필요한 주님의 일들에 쓰임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결코 잘못된 마음이 아닙니다. 다른 더 귀한 주님의 종들이 쓰임받고 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기도만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겸손과는 상관없는 말이며,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대열에서 자신을 이탈시키는 말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는 말에 대한 많은 잘못된 편견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많지만 그러나 우리의 몸을 실제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에 드리는 부분을 소극적으로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정말 몸이 아프거나 기타 불가피한 환경 아래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문제에 대해 실제적으로 행할 수 없을 때에라도 간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주님 제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시면 제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제한된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즉각 기도한대로 순종해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이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케 되지 못한다면 우리를 통해 나오는 것은 온전치 못한 섬김뿐일 것입니다. 물론 늘 우리 자신을 영광스러운 기준에 비교한다면 늘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며, 우리가 온전하다는 말을 감히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섬김이 온전함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주님을 섬기는 것과 올해 주님을 섬기는 것 사이에 무언가 변화가 있고 전진이 있고 온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늘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만 있고 심지어 뒤로 물러난다면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 앞에서 전진하고 더 온전해 지는가에 대해 오늘 말씀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때로 우리의 섬김이 너무나 온전치 못해서 주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섬김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럴때면 우리의 분주한 움직임이 심한 먼지만 날리게 하는 것 같아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잇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그러한 우리의 부끄러운 섬김조차도 기뻐하시면서 어린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안아주시지만 그러한 격려가 있을 때에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서 전진시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말로만 전진합시다. 성장합시다 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가 생명의 성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어리고 연약하다고 고백들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으로 끝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이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버리고 싶다면 반드시 성장하는 비결을 알려고 할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어린아이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마땅히 성장해야하는데 자라남이 없다면 그것은 적은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에 이상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것이 생명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것은 생명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생명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근원적인 치료가 필요한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러나는 일들을 잘했느냐 못했느냐에만 관심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의 성장과 온전케 됨을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취하는 문제를 너무나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들을 만나서 그 일들을 잘 처리 못하는 것만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에 있는 어떤 일들을 잘 처리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생명이 자라지 못한 문제입니다. 오히려 어떤 일들을 만남으로 인해 평소에 알지 못했던 영적인 생명의 문제를 발견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치유케 될 필요를 알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진리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유일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의 말씀외에 다른 어떤 말들도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진리의 성경뿐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 즉 하나님의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질병과 문제들을 능히 치유시킬 수 있는 의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리의 잣대로 우리를 측정합니다. 그것은 온 우주에서 가장 정확히 우리의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그것은 MRI, 단층촬영, 피검사, 소변검사, X선 촬영, 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를 다 합친것보다 더 정밀하게 우리를 측정할 것입니다. 세상의 병원은 잘못 측정하기도 하고,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고, 심각한 질병에 걸린 암환자를 정상으로 판정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성경의 교리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우리를 판정해 줍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성경이 거울과도 같아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조금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성경은 다만 우리의 영적인 생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하게 고칠 수 있는 치료약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병원은 아주 많은 경우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고칠만한 뚜렷한 약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신뢰못하는 사람들이 한방에도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민간요법,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성경은 그렇게 오류가 있고 부정확하며 또 능력없는 그런 병원과 다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진리의 성경외에 다른데다 여러분의 눈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성경이 여러분을 책망하고 바로잡으려 할 때 여러분은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인간의사도 신뢰를 하고 시키는대로 따라줘야 병이 고쳐지는데, 진리의 성경이 여러분을 바로잡으려 할 때 여러분의 경험과 들은 말들 때문에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을 다니면서도 누가 좋다고 하면 그 약을 의사 몰래 따로 먹다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수치가 나빠지면 반드시 그렇게 따로 먹은 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사야 그 말을 들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진리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아니 이 성경만이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교리들을 성경보다 더 신뢰하고 따른다면 여러분의 명은 더 악화될 것입니다. 인간의 전통에 매여서 성경의 진리로 고침을 받지 않으려는 완고함을 내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치료가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인 변화산의 일들보다 성경의 기록을 더 확실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벧후1:16-19).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덮어놓고 자신의 놀라운 경험들을 자랑하러 다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이적들을 눈으로 보았던 베드로조차도 그 자신의 믿음으로 볼 때에는 예언의 말씀이 더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일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로 책망받을 때 회개하지 않는 것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가 우리를 찌르고 쪼갤 때 대항하고 적대시하는 자세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바로 잡으려할 때 우리를 수술대에 누운 사람처럼 그분이 하시는 역사를 믿고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되게 주님을 따르고 섬기려는 자들이 취해야 하는 자세입니다. 물론 책망을 받을 때 그 말을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옳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못 생각했다든지, 잘못하고 있다든지, 잘못 길을 가고 있다고 진리의 성경이 책망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씩 하나씩 그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으로 적절치 않았던 습관들, 고정관념들, 모든 것이 다 성경을 통해 바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숙이고 성경의 책망과 바로잡음을 따를 때만이 우리에게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부분입니다. 진리의 성경이 우리를 바로잡고 온전케 세워주려고 할 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모든 것을 보며 성경에 따르지 않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닙니다. 성경으로 양육하시고 의로 훈육하셔서 우리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실 때 내 습관, 내 과거의 경험, 내가 배워온 것들을 굳게 붙들고 놓치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여전히 자라지 못하는 불치의 병에 계속 방치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수행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혼들을 구원하는 일, 성도들을 섬기는 일,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관심하는 일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맡기시고 위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사람들, 그것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놀라운 동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며, 다른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이요"(고전3:9)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일들에 쓰임받는 것은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기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기회를 계속 일생을 주시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기회를 이내 박탈당하고 맙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비되고 예비되며 온전해질 떄에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갈망을 이해하게 되고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우리자신을 드리고 또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갖추어지지 않고 예비됨이 없는 자들은 주님이 그들을 사용하실 수 없으며, 그나마 주어진 일에서도 섬기는 기회를 박탈당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일은 사실 그 성격적인 면에서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애정어린 마음이 있고, 또 자신을 철저히 구비하는 일에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들은 그러한 일을 적은 일로 여기고 자신을 게으름에 방치해 둡니다. 다른 일들에는 욕심도 있고, 잘하지만, 주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그러한 마음이 없고 또 진리의 말씀으로 예비하는 일을 귀찮아 한다면 속에서부터 주님을 섬길 마음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등은 가졌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신랑을 예비하는 마음이 아니듯이, 누군가가 진리의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면서 자신을 진리 방면에서 철저하게 구비할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예비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 앞에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냥 구원받은 사람은 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는 차원에서 말고 예비되고 구비된 그래서 온전케 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붙여지고 인수가 불어나고 교회가 성장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이 나와서 주님을 섬기는 일이 있지 않는 한 우리 교회는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사데교회"같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목적을 온전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어리다면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는 말만 할 뿐 실제적인 면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만 만들어 내겠습니까? 만일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부모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겠다면 아예 허락도 안하겠지만 허락한다 하더러도 제대로 된 섬김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지만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장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 왜 예비되어야 하는 지를 너무나 잘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생명의 자라남이 진리의 공급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자라기 위해서 우리는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2). 우리가 진리를 대할 때 단지 우리가 갖출 지식적인 방면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양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양식은 우리의 자라남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우리의 영적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육체의 양식을 먹을 때 우리의 몸이 강건해지듯이 영적 양식을 먹을 때 우리의 영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누군가가 묘사한 것처럼 육과 영의 전쟁입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온 것처럼 육신적인 생각을 따르느냐 영적인 양식을 따르느냐가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의 연속이 우리의 믿음 생활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진리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침례로 말미암아 죽고 장사되었으며, 우리의 영이 주님과 함께 일으켜졌음을 단순히 믿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어떤 기독교 단체에서는 매우 치우침으로 말미암아 고린도전서에서 했던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십자가의 도만 필요한 진리인 것처럼 오도하기도 합니다. {이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너희 가운데서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런 우리는 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이러한 말을 했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육신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분열과 교만, 사람(육체)을 따르는 것 등이었기에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이미 고린도 교회는 다른 진리 방면에서 많은 교육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많이 듣고 날마다 적용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계속 문제에 부닥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의 영의 약함이 가장 주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는데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고 또 말하면 아는데, 필요한 순간에 생각이 나지 않고, 생각이 나도 너무나 나의 실제 삶에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강하게 나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반적인 영적인 면에서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모든 진리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호 연관이 있으며 한 진리가 다른 진리에 강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겉으로 볼 때 무관한 듯 보이는 진리들이 모두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진리 하나가 다른 진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진리만을 계속 강조하기 보다 전반적인 모든 진리들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의 영을 더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가지를 깊이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과 오늘 말씀은 전혀 대치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기 위해 다른 진리의 부축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한가지 진리만 강해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적인 면에서는 불가능한 말입니다. 어떤 음식만 편식할 때 영양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몸이 약해지고 병이 생기듯이,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창조하실 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필요하며 거기에다가 몸에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물질이 필요하듯이 그 어떤 것 하나도 부족하면 몸에 문제가 생기듯이 진리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진리만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바울서신만 섭취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성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성경은 필요없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감으로 주어진 66권의 성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모든 성경이 진리일진데 우리는 이것을 일생동안 먹을 필요가 잇습니다.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사랑하는 자의 참된 자세입니다. 진리의 성경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될 수 없고, 선한 일을 위해 갖추어질 수 없습니다. 선한 일에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선한 일을 위해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음식을 입으로 씹고 넘겼다고 다 내 몸의 살과 피와 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화를 잘 시켜야 됩니다, 우리는 24시간 계속해서 성경을 펴놓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시간나는 대로 계속해서 진리를 되새김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꼴이며 순수한 젖이며, 사과이며, 꿀이고,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라는 시편 1편은 우리가 가장 먼저 대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명심해야될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에 진리의 공급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곧 판별이 날 것입니다. 진리의 성경은 우리를 반드시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친 것이 사람의 말이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이었는지는 생명의 성장이라는 결과가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나올 때, 입증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