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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10)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구체적으로 보면, 주정부의 권한은 의료 서비스, 교육, 민법, 교도소, 시 정부 관리 등 주민의 복지와 직결된 활동범위라면 연방정부의 권한은 캐내다 전체의 복지와 관련된 활동에 대한 권한이다. 상업, 우체국, 국방, 해운, 화폐, 측량, 저작권, 시민권, 원주민, 외교 등의 권한이 연방 정부에 속한다.

그러나 2 회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주정부 권한의 일부가 연방 정부에 이양 되어 원래의 권한 분배가 다소 수정 되기도 했다.

두 번째 도전은 언어 관련 문제였다. 이중 언어(영어 및 불어)는 법정 및 국회 기록에 국한되어 있고, 실제로 타 공공 분야에서는 선택 사항이었다. 불어권 캐나다(주로 퀘벡)와 영어권 캐나다간의 갈등 관계는 건국 후에도 해소되지 못했지만 건국 전과 건국 후의 다른 점은 불어권 캐나다의 지도층이 연방주의자와 퀘벡 자주주의(autonomy) 혹은 과격한 독립주의자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연방주의의 핵심은 퀘벡 주가 연방체제하에서도 얼마든지 정체성을 유지하고, 경제,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발전 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다. 건국시 퀘벡인으로써 연방 주의를 내세운 정치인은 Jean-Etienne Cartier다. 그는 1867 년의 St. Baptiste 축제 시 이러한 선언을 했다.

‘‘ La confederation c’est un arbre dont les branches s’etendent dans plusieurs directions et qui sont fermement attachees au tronc principale. Nous, Franco-canadiens nous sommes l’une des branches. A nous de le comprendre et travailler au bien commun. Le patriotisme est bien entendu est celui qui ne lutte pas avec un esprit de fanatisme, mais qui tout en sauvegardant ce qu’il aime, veut que son voisin ne soit pas plus moleste que lui-meme. Cette tolerance, Messieurs, est indispensable. C’est par elle que nous nous associons a la grande œuvre, dans laquelle il convient a notre ambition de reclamer une part d’honneur.” (연방체제는 사방으로 퍼진 가지가 줄기에 강하게 붙어있는 나무와 같다. 우리 프랑스 캐나다 인은 이것을 이해 하면서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 해야 한다. 애국심이란 과격 주의가 아니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간직하고 동시에 이웃을 존중하는 자세다. 여러분 필수적인 관대함이 있어야 우리의 몫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Lacoursiere pp. 119-120).

이러한 Cartier 사상은 오늘 날의 퀘벡 연방주의의 원칙적 기반이다. Cartier 의 연방주의에 대응하는 사고 방식은 당시 퀘벡 자유당이었다. 퀘벡 자유당의 연방체제에 대한 불만은 이렇다.

첫째, 불어와 카톨릭종교가 위협을 받는다. 둘째, 연방정부의 동서 철도 프로젝트(East-West Railway Project)는 세금의 인상이 수반 된다. 셋째, 연방체제는 프랑스 캐나다인의 강제 징병으로 연결이 된다.

연방체제는 영어권 우대 정책 때문에 퀘벡 경제가 불리 해진다. 흥미 있는 것은 카톨릭의 태도다. 성당 당국은 근본적으로 연방주의에 우호적이고 퀘벡 자유당의 주장을 반대했다.

이유는 100여 년 동안 계속된 갈등에 시달리던 퀘벡 사회를 연방체제가 안정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입각한 것이다. Trois-Riviere의 Thomas Cook 주교는 “우리 카톨릭인은 연방주위를 받아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톨릭은 퀘벡 자유당을 진보적 정치관 및 사회관 때문에 빨간 정당이라고(parti rouge) 미워했다. 지금도 PLQ는 빨간당이라고 부른다. 1871년에 카톨릭은 퀘벡 자유당을 비난했다.

“Il est impossible de le nier, la politique se relie etroitement, a la religion, et la separation de l’Eglise et de l’Etat est une doctrine absurde et impie. L’adhesion pleine et entiere aux doctrine catholique romaine en religion, en politique et economie sociale doit etre la premiere et la principale qualification pour les electeurs catholiques doivent exiger du candidat catholique”(Lacoursiere p.123-124)

(정치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성당과 정부를 분리시킨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요 성스럽지 않다. 종교, 정치 그리고 시민경제 분야에서 카톨릭 사상을 받아드리는 것이, 카톨릭 유권자가 카톨릭 후보자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와 같이 카톨릭은 정치에 개입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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