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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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
daekim
2017-05-16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을 구석구석 찾아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갖가지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고치기 시작하시면서 숱한 무리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예수님이 회당을 피해 산과 들과 바닷가로 나가시면서부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마태는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설교를 그의 복음서 5장, 6장, 7장에 수록하였는데 이를 산상수훈이라 부른다.
산상수훈에는 예수께서 지상사역 중에 하신 설교와 가르침의 진수가 총망라되어 있는 인류역사상 그 짝을 찾을 수 없이 귀한 삶의 교훈과 인생의 지침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기에 영국의 시인이며 신부였던 John Donne은 1629년에 한 설교에서 “마태복음 5,6,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산위의 설교는 이 세상 모든 종교의 지침과 규범과 인간 사회의 법과 규정, 성인들의 거룩하심, 그리고 신령한 분들의 삶의 기준이 다 들어 있다.”고 산상수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실망하고 주님 곁을 떠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 까닭은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에서 그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것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며 안락하고 풍요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네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예수님이 그들의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리라 믿었다. 그래서 부푼 가슴을 않고 예수님의 주위에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그들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그들이 허탈한 마음으로 예수님으로부터 발길을 돌린 것은 그런 연유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산상수훈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신 설교의 대상은 그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며,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 산상수훈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산상수훈은 “구원의 원리”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삶”에 대한 설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까닭은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성결하게 하셔서 인류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후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너희는 오랫동안 살았던 애굽 땅의 풍습을 쫒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습과 규례를 행하지 말라.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레 18:1-4)라 명하신다.
하나님께서 그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이 명령의 시작과 끝이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심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잊어버리고 이방민족들에게 동화되어 살아간다(시 106:3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 그들의 신분을 일깨워 주시며,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라고 경고하신다. 예레미아를 통해서는 “이방민족들의 길을 배우지 말라.”(렘 10:2)고 경고하셨으며, 에스겔을 통해선 “너희의 눈을 끄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겔 20:7)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그들의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들이 누구인가를 잊어버리고 이방인들처럼 살아가는 그의 백성들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력과 이생의 자랑”(요1 2:16)에서 벗어나 그들의 신분에 합당하게 살라고 하신 설교가 산상보훈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가 원하고 바라며, 우리의 삶을 안락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비결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려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산상수훈을 총괄적으로만 살펴보아도 이 사실은 명백해진다. 산상수훈은 복 있는 사람이 지녀야 할 여덟 가지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마 5:3-12) 이 행복의 조건 여덟 가지는 믿는 자들의 인격과 품성,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과 형성하고 유지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어지는 빛과 소금의 역할에 대한 말씀은(마 5:13-16)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끼쳐야 할 영향력에 대한 것이다.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마 5:17-48) “기독교인의 의”가 세속적인 사람들과 어떻게 달라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주고 있다.
믿는 자들의 경건생활은 이방인들이나 바리새인들 같은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청결함과 진실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시다.“(마 6:1-18)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욕망을 이루어야만 보람되고 성공된 인생을 사는 것이라 믿지만 주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진리이다.(마 6:19-34)
예수님을 섬기는 이들은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평하는 대신 돌보고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하며, 복음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생명의 길을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려는 거짓 선지자들을 멀리해야 함을 조목조목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부분도 산상수훈에 나타나 있다.(마 7:1-20)
예수께서는 그를 ”주여, 주여“ 부르면서 그의 가르침과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이 영원한 나라에 도달하려면 ”그의 말씀대로 사는 것“임을 강조하시며 그의 산위의 설교를 마감하신다.
개괄적으로 살펴본 산상수훈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음미할 때 확실해지겠지만 예수님의 설교는 듣는 이들의 암담한 마음에 활력소가 되기보다는 답답한 심정과 부담을 안겨준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생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예수께서는 어둠 속에서 광명한 세상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침과 기준”을 말씀하시는데 듣는 이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좀 더 평안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은 귀중한 진리의 말씀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이요, “목표”이지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설교는 아니라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그들의 위치와 입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산상수훈을 대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들은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마음에 간직하고 산상수훈을 읽는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세상의 법과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과 규정을 따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너무도 힘들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 산상수훈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준을 누구나 지킬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믿는 자의 윤리와 도덕, 가치관과 이상,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삶의 원칙이 모두가 행할 수 있는 단순하고 쉬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설교를 인간으로선 실천할 수 없는 목표로만 여긴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닮아야만 지킬 수 있는 산상수훈의 진리를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가 있을 뿐이다. 성령의 힘에 의지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육에 속한 이들에게 예수님이 제시하는 삶의 기준이 실현 불가능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산상수훈임을 확실히 깨닫는다면 우리들은 주의 영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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