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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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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에른스트는 게슈타포의 소환장과 관련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빈딩을 찾아 간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여자를 껴안고 철야 파티를 하던 빈딩이 역시 반갑게는 맞이하는데, 피아노를 치고 있던 강제집단수용소장 까까머리 하이니(쿠르트 마이젤)가 술에 취해 피아노 위에 성냥개피를 장작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위에 보드카 술을 붓고는 불을 지른 다음 가혹한 고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유대인 신세는 이런 거야! 이렇게 불태워 버리는 거라구! 음! 핫핫핫…."
   실망감을 안고 나온 에른스트는 불안에 떨면서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게슈타포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는데, 거기서 뜻밖에 게슈타포 장교(클라우스 킨스키)로부터 장인인 크루제 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담배상자에 넣은 유골을 전달받는다.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먼저 요셉을 만나 상의한다. 그 사이에 폴만 교수가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성당 묘지에 크루제 박사의 유골함을 묻는다. 엘리자베스가 도착했을 때 성당에서는 아기의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어 눈치채지 못한다. 
   파괴된 공장 때문에 3일 간 일을 쉬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사이 사랑스럽고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에 방 한 칸을 마련한다. 딸같이 대해주는 주인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저녁 식사 때 엘리자베스에게 장인의 죽음을 알리는 에른스트. 오래된 고급 와인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엘리자베스. 에른스트는 그녀를 위로한다. 

 

 

   다음날 휴가 연장을 신청하지만 오히려 즉각 귀대하라는 명령을 받는 에른스트. 엘리자베스도 직장에서 마찬가지로 연장거절을 당하는데…. 
   이제 휴가 마지막 날이다. 꿈같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6시 기차로 떠나야 하는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절대로 배웅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공습경보가 울리지만 휴가의 마지막 밤을 차마 방공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작은 방 안에 그냥 머문다. 이 신혼부부는 포격소리가 울릴 때마다 서로 더 꼭 껴안으며 마지막 밤을 지새운다.
   화면이 서서히 오버랩되며 이른 아침 전선으로 떠나는 이들을 수송하는 열차를 타는 동료 군인들 속에 에른스트의 모습이 보인다. 귀대하는 날 기차역엔 유대인을 색출하려는 게슈타포의 감시망이 삼엄하다. 역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는 남편 에른스트 몰래 역에 나와 몸을 숨기고 먼발치에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드디어 경적을 울리며 전선으로 가는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창밖에 십자가가 보인다. 그러다 그녀가 아웃포커스 되면서 창틀이 십자가로 클로즈업된다. 이 순간이 그들의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그러나 아는 듯 모르는 듯 기차는 그렇게 떠나가고…. 
   다시 전투가 계속되는 동부 전선.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으며 퇴각하는 비참한 독일군들 속에 에른스트 그래버가 보인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선을 벗어나 어느 마을에 도착한 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우편물이 도착한다. 

   마을 지하실에서 생포한 민간인 포로들을 헛간에 가두고 보초 임무를 맡은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으려 한다. 
   그때 에른스트가 속한 부대가 긴급 후퇴 명령을 받게 되면서 슈타인브레너가 남아있는 민간포로들을 사살하기 위해 창고로 온다. 무의미한 살상에 진저리가 난 에른스트가 그를 제지하자 서로 간에 격한 감정과 몸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에른스트가 그를 사살하고는 갇혀있던 포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미처 읽지 못했던 아내의 편지를 품에서 꺼내 읽는 에른스트. "강가에 있는 자두나무 옆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무는 잘 자라고 있어요. 우리도 힘차게 살자고 했었죠. 우린 그러고 있어요. 제가 임신했거든요…" 엘리자베스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에른스트!
   그러나 그때 풀어준 민간 게릴라 한 명이 죽은 슈타인브레너의 총을 집어들고 에른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미처 다 읽지도 못한 편지는 강물로 떨어진다. 다리 위에 쓰러진 에른스트는 편지를 붙잡으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다 헤진 장갑 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이 애처롭다. 
   편지는 흐르는 강물 따라 떠내려가고… 에른스트의 처연한 모습만 강물에 비친다. 봄날의 자두꽃 같은 청춘은 그렇게 슬프게 지고 만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2악장(Andante con moto)"이 가슴을 찢어 놓을 듯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에른스트 그래버가 꿈꾸었던 휴가에서의 부모와의 상봉은 물거품이 되고 생사조차 모르게 될 때, 전방이나 후방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비참하게 생활하거나 죽어갈 때, 양심의 유보에 대한 그의 혼돈은 점차 진전된다. 또한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은 전쟁 중에서 인간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만큼 그에게 절대적이었으나,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찾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하다. 결국 에른스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러시아인 포로들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광인 동료 독일군을 살해한다. 그러나 에른스트는 자신이 첫 양심에 따라 움직인 그 행동에 의해 오히려 죽게 된다. 
   요컨대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아름다운 사랑과 행동하는 양심'이며, 인간의 잔인성과 무모함, 무용한 사상•종교 등과 무상함을 극복하여, 남겨진 뿌리로 싹을 돋아내는 자두나무처럼 의연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글라스 셔크(Douglas Sirk, 1897~1987) 감독은 덴마크에서 독일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본명 한스 데틀레프 시에르크(Hans Detlef Sierck). 1937년 나치 정권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두 번째 부인이 유대인이라 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름을 더글라스 셔크로 바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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