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odongwon
여동원 단상(斷想)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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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꼬'와 '머시당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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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만 했다 하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먹줄로 금 긋듯 "우리가 남이가" 싹쓸이 판이 돼버린다. 제 고장 애향심이야 누구나 갖는 마음이라 해도 이건 유치하다 못해 치사하다. 나라 전체를 잘 다스려 달라는 사람 뽑는 일인데 내 고장 사람이어야 한다는 판단기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민도라면 대한민국 선거는 유치원생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경상도로 피난을 간 함경도 사람이 "머꼬"의 말뜻을 몰라 경상도 친구에게 물었다.


 "머꼬가 무시기고?"


 그런데 경상도 친구는 "무시기고"가 생소하다.


 "무시기고가 머꼬?"


 서로가 묻고 있는 말뜻 자체를 모르니 온종일 "머꼬가 무시기고" "무시기가 머꼬" 반복만 하고 있다. 그때 마침 전라도 친구가 지나다 듣자니 두 친구가 하고 있는 대화가 괴상하다.


 "머꼬가 무시기고가 머시당가?"


 이쯤이면 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웃을 일이지 싸울 일이 아니다. 그러한데, 정치판에만 가면 싸울 일이 돼버린다.


 정치가 무엇인가? 백성 모두가 함께 고루 잘살자 함이며, 집단이기주의로 흐르는 것을 조절하여 한쪽으로의 쏠림현상을 조절하자 함이며, 지방균형발전과 기회균등을 위해 같은 교육의 혜택을 주고, 공정한 세제로 부의 편중을 조절하자 함일텐데, 말투 가지고 싸움판을 벌이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부끄러운 민도다.


 그렇다면 전국을 표준어로 통일시켜 지방색을 없애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봄 직하다. 그러나 그건 더욱 안 될 말이다. 획일주의는 독재의 발상이다. 민주사회는 다양성이며, 다양성이야말로 삶의 활기이고 재미고 맛이다.


 도(道)의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말과 음식과 사람 사는 풍물 기질이 약간씩 다른 느낌을 주는 맛, 쉽게 얻어지는 복이 아니다.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가. 그 다름의 특색들을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도 경계선 행정구역이 말투로 분할, 그어져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우연일까? 세계에 유례없는 형상이지 싶다. 상식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나 행정구역 설정은 다스림을 목적으로 한 정치적 발상일 터인데, 국가 경영상 능률이 고려된 산이나 경도에 의하지 않고 말투 따라 도경계선이 그어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즉 우리나라의 도(道) 분할은 선(先) 경계선 후(後) 말투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선 말투 후 경계선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경계선은 인위적(정치적) 계산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적 운명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고향 경상도 함양군은 전라도 남원군과 붙어있다. 어떤 마을은 1Km도 안 되는 고개로 갈라져 고개 이쪽은 "밥 묵은나?"고, 살짝 고개 너머 저쪽은 "밥 먹었단가?"다. 같은 들에서 일을 하고, 같은 산에서 나무를 하고, 같은 장을 보는데도 도가 다르고 말이 다르다. 아니 말이 다르고 도가 다르다. 단 한 곳에서도 전라도 땅에서 경상도 말투를,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말투를 들을 수가 없다. 참으로 신묘하다.


 이 어찌 우리의 도경계선을 사람이 그었다 할까? 몇 만 년, 아니 수 십만 년 살아오는 동안 물 따라 풍세 따라 말투가 굳어지고 그 말투 따라 편리상 행정구역으로 했을 뿐일 게다. 이 자연스럽게 그어진 경계선이 오늘날 더러운 정치판에 오염되어 감정 구역으로 변질 '우리가 남이가'로 담을 쌓고 싸움판으로 벌여 놓고 있다.


 닮은꼴끼리 친근감이 드는 것은 쪼잔하고 치사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 섭리이며 당연한 생리적 현상이다. 이것이 "우리가 남이가"식 타집단에 대한 배타적 유치한 감정이 아니라면 오히려 세상 살맛 나게 하는 아주 풍요한 자양분이다.


 세상 똑같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싱거우며 숨 막히겠는가? 팔도 구수한 사투리가 있어 코미디가 있고 웃을 일이 많지, 어찌 그것이 편 가르기 싸울 일인가?


 윤태림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인'에서 '사고방식은 한 문화의 소산이다. 같은 풍토에서 공공적, 역사적 경과 속에서 공동생활하는 동안에 이룩된 것이다. 그러나 피부색, 언어, 종교에 따라 인간 가치에 변동이 있을 수 없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오랜 세월에 형성된 지방적 특성(기질까지 포함)을 감정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우려되는 것이다. 특질과 감정을 혼동하고 있다. 지방 특질을 지역감정으로 혼동할 때의 결과는 차별화이고 감정대립일 수밖에 없다.


 말투는 감정이 아니라 특질인데 경상도 대통령일 때는 TV에서 깡패, 사기꾼은 전라도 말투가 많고, 전라도 대통령일 때는 반대현상을 보이는 사실은 특질을 감정으로 몰고 있는 망국의 예다.


 6년 동안 다닌 중고등학교 근성도 있는데 하물며 지방의 기질임에랴. 그 당연한 기질에 우열을 따져 어쩌겠다는 건가. '머꼬'와 '머시당가'의 다름은 차별이 아니라 서로의 매력임을 왜 모를까?


 50년 전 대학시절의 절친했던 전라도 벗을 지금 만나도 허물없이 지방 기질에 대해 진한 농으로 치고받을 수 있을까? 세월이 하 수상하니 싶지가 않은 것만 같다. 친한 벗 사이에 예의라는 서먹함이 낀다는 것은 크나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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