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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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자리와 난자리
jakim

 

 밤새 좋지 않은 생각에 꿈이 뒤숭숭했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잠이 들만하면 아폴로가 그 큰머리를 내 다리에 올려놓아 또 잠을 캤다. 가뜩이나 잠을 못 이루는데 아폴로가 무려 세 번이나 머리를 내 다리에 올려놓기를 반복해 비몽사몽으로 지낸 밤이 드디어 밝았다. 샤워를 하고 안방을 나오니 아폴로가 따라 나올 듯 바닥으로 내려온다. 나오라고 손짓을 하니 나를 힐끗 한번 보더니 뒤돌아 서서 훌쩍 침대로 올라가 버린다.

 안방을 나와보니 조용하다. 며칠 전에 비해 집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집안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집안을 둘러보았다. 꼬마들 장난감 한두 가지만 구석에 있을 뿐 아이들의 모든 살림살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그리고 시끌벅적함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폴로도 자다가 아이들 소리가 나면 문 열어달라고 컹컹 짖고 난리를 치더니 아이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시 들어가 잔다. 아폴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과자들을 흘리면 주워먹었는데, 이제 아폴로의 간식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약 한달 전부터 집사람과 매일 걷고 있다. 당, 혈압 그리고 콜레스테롤 때문에 운동을 꼭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주전부터 걸으면서 집사람이 “애들이 곧 이사 나간데” 한다. 딸내미가 시집갈 때는 집을 나간 상태에서 결혼했기 때문에 별로 섭섭하지가 않았는데, 이제 모두 같이 살다가 나간다고 하니 너무 섭섭하단다.

작년 5월초에 자기네 집을 고친다고 3식구가 우리 집에 들어왔고, 7월 말에 작은 손녀가 태어났다. 이 좁은 집에서 6명이 아폴로와 함께 일년 반 동안 생활을 했고 지난주 모든 짐을 뺏다. 화요일 아침에 사위가 마지막으로 애들 침대를 분해해서 복도에 놔둔다. 이제 여기서 자는 건 어제로 마지막이라는 거지…그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애들 침대 외에도 이것저것 갖다 놓는데 분량이 꽤 됐다. 그것을 혼자 차에 싣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가 혼자서 끙끙거리고 나르는 것을 바라만보고 괜히 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척, 전화를 거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나를 보더니 딸내미가 “아빠, Are you sad?” 하고 묻는다. “No, I am Okay”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사위가 혼자서 짐을 다 싣더니 가면서 오늘 저녁은 우리집에서 먹는단다.

 집사람의 가게가 끝나고 St. Louis 에서 치킨윙과 립 등을 Takeout 해서 저녁을 차렸다. 6시쯤 제이미를 선두로 모두 들어온다. 작은 손녀딸 라이언은 역시 환한 웃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반긴다. 제이미도 우리와 헤어짐을 아는지 며칠 전부터 나에게 훨씬 싹싹하게 대했다. 식사를 하며 와인 한잔씩 따라서 마지막 저녁을 역시 시끌벅적하게 보냈다. 이제 여기서 애들을 보기보다는 애들집에서 애를 보는 일이 훨씬 많겠지.

 오늘은 토요일이라 제이미는 학교를 가지 않고 나도 별일이 없으면 아이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집사람도 가게를 나갔고 며칠 전부터 시작한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폴로가 안 보인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뭐하나 찾아봤더니 소파에 푹 파묻혀서 자고 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일, 손에 있던 과자를 어른들 안 볼때 빼먹던 일 등을 회상하고 있나 보다. 애가 힘이 푹 빠진 것 같다.

주차장에 항상 차가 네 대나 있었는데, 아이들이 차 두 대를 가져가고 내 차는 아이들이 짐을 뺀 차고에 넣어두었으니 집안이나 밖이나 모든 게 널널하고 여유가 있다. 그리고 집안이 깨끗한데 뭔가 빠진 것 같고 허전한 것 같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아이들과 같이 사니까 생활비도 꽤 나갔다. 집사람과 코스코에 장보러 가면 보통 오백불 전후를 사 오는데 며칠 지나면 또 먹을 것이 모자란다. 두 손녀딸도 워낙 식성이 좋고, 집사람이 음식을 잘하니까 딸과 사위도 더욱 잘 먹는다. 모두들 체중이 꽤 불었을 거다. 가끔은 딸내미가 장을 봐오는데 제 엄마 닮아 손이 큰지 바리바리 사 들고 와도 며칠이 지나면 또 필요한 것이 있고.

 Enbridge 에서 가스 고지서를 받으면 너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친절하게 그래프까지 그려 보내준다. 사람이 많으니 전기도, 물도, 그리고 가스도 더 쓰는 건 당연하지.

 1년 반을 같이 살면서 서로간의 갈등이 전혀 없었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리도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주된 갈등은 그들과 우리와의 갈등이 아니고 그들간의 갈등 우리 안에 갈등이 많았다. 작년 연말 그들 부부가 크게 싸움을 할 때 나는 사위에게, 제이미가 시집갈 때쯤 해서,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위야, 너도 제이미 남편 되는 사람이 제이미에게 소리지르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니?”

며칠 후 잘 마무리 됐다. 우리 부부는 항상 그렇듯이 오랫동안 아무 문제없이 지나가면 탈 나는 집안이라 주기적으로 티격태격 할 때면 아이들이 눈치를 설설 본다. 그리곤 다음날 또 정상으로 돌아오고. 사위도 우리와 살면서 전혀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늘은 왜, 어떻게 우리 장인 장모가 다툴까 기대했을지도 모르지.

 같이 살면서 가장 신경 쓴 것 중의 하나는 혹시 아폴로가 손녀들에게 어찌하지 않을까 특별히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아폴로는 맹견 종류의 하나이고, 아이들이 너무 어려 자기 방어능력이 떨어지니까 잠깐의 실수가 큰일로 번질 수도 있기에 어른 네 명이 항상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비상이 걸리면서 초기에는 특히 조심했다. 한 삼 개월은 아예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 코로나의 좋은 점도 있다. 어쨌거나 무사히 있다 가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일 끝나고 집에 온 집사람이 집안을 정리하다 TV 보고 있는 나에게 내려온다. “제이미가 보고 놀던 I PAD 를 보니 눈물이 나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몇 번 울컥했지만 그 사실은 감추고 “아 이사람 참 싱겁게” 하고 말았다.

 아기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여럿이 먹는 저녁상, 시끌벅적함, 여기저기 어질러진 장난감, 현관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신발들, 이런 인간들의 냄새 나는 모습이 그립다. 내일은 딸네집에 다녀와야겠다.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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