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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서와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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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카톡이 하나 왔다. 한국에 있는 사촌동서가 보낸 것으로 고맙다고, 우리집 뒤뜰에서 먹은 고기도 맛이 있었고 언젠가 한번은 한국에 꼭 나오라는 메세지였다. 


 “정숙이 언니네가 왔데” 집사람이 지지난주 집에 들어오니 나에게 알려준다. 록키산맥 관광 왔다가 큰처남 형님도 암투병 중이시고, 그들이 친하게 지내는 O식당 사모님도 암투병 중이시니 병문안 차 온 것이란다. 


 3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조카 결혼식 때 만났으니 3년만이고 99년도 내가 처음 한국 나갔을 때 그 집에서 한 2~3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 동서는 의정부에서 전기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집에 있기 심심하면 자기 일터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전기 공사를 따면 전봇대를 찾아야 한다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봇대에 쓰여 있는 주소를 찾아다니는데, 차를 전진이나 후진시키면서 전봇대에 작게 쓰여 있는 글씨를 자기 서류에 있는 주소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전봇대에도 주소가 있는 것을 그때에 처음 알았다. 한국에는 길옆에 물을 흐르라고 파 놓았는지 어디에나 고랑이 있었다. 고랑의 폭이 눈대중으로 1미터는 넘어보였고 깊이도 꽤 깊어 저러다가 고랑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여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하나를 찾고 나면 다른 전봇대를 찾으러 다녔다. 전봇대를 찾아야 일꾼들에게 거기 가서 작업하라고 지시할 수 있단다. 


 동서는 나보다 세살 위이며 우리 고향에 있는 강경상고를 졸업해서 나의 매형에게는 몇 년 후배가 된다. 그래서 내가 벨빌 살때 누나네랑 사촌 동서네가 우연히 연말에 올라와 같이 술 한잔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선후배간 이니까 더욱 반갑게 맞이하며 재미있게 놀았던 적이 있다. 그때가 벌써 20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때 사촌처형과 두 자녀는 캐나다에 있었고, 동서는 몇 년간 기러기 생활을 하며 가끔 캐나다에 들르곤 했었다. 그러다 혼자 사는 게 너무 외롭고 힘드니 모두 나오라고 했는데, 처형과 자녀들은 이곳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다 한국으로 가기가 싫어 꾸물대니까 동서가 그만 송금을 끊었다. 그래서 처형이 먼저 나갔고 자녀들만 남았는데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져 그 또한 좋지 않은 것이라 아이들도 결국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1999년 한국에 나갔을 때 아들은 군대에 갔었고, 딸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주말에도 어디 가서 공부하는지 얼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 후 아들은 일류회사에 들어가 아주 잘 나가고 있고, 딸은 일류대학을 나와 선생으로 봉직하며 둘 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고 잘살고 있단다. 그래서 이제 부부가 조금씩 일하며 여행도 다니고 한단다. 아이들에게 캐나다 생활이 실패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에 배운 영어로 평생을 써먹을 수 있고, 또한 캐나다에서 고생을 좀 했기 때문에 지금 더 열심히 사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동서네가 저녁을 산다고 O식당으로 나오래서 거기서 모든 식구가 저녁을 먹고 술 한잔 더 하자고 우리집으로 왔다. 많은 식구들이 들어오니 아폴로가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점프를 하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해댄다. 아무래도 큰 개가 설쳐대니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동서가 한마디 한다.


 “아니 무슨 개가 박명수처럼 생겼어?” 동서한테 덤비던 아폴로가 기분이 나쁜지 이제 O식당 사모님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아폴로가 알아들었나봐. 


 우리 큰 처남 형님과 O식당 사모님 완쾌하시고, 처형과 동서 건강하시고 우리 모두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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