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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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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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서울에 나가 있던 어느 날, 화사한 햇살이 실어다 주는 감미로움에 도취되어 있을 때 따르릉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아이들 전화려니 하며 수화기를 드니 내 목소리임을 알자 남편이 “나야” 하며 아이들과 별일 없느냐며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난 이미 먼 옛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남편을 만나 한동안은 우리집 전화로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우리들 등록금 때문에 전화를 팔게 되어 언제부터인지 남편의 전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당시엔 일반 전화는 꽤나 비싼 편이어서 웬만한 재산 목록쯤에 들어갈 정도였다. 나는 생각다 못해 옆집의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서 우리 집에 벨을 하나 달아 놓게 되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저씨네 집 전화로 남편에게서 연락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교문까지 나오는 동안 친구, 선배, 후배, 아는 사람도 많아 어떤 때는 만나는 곳을 정해 놓고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한두 시간 늦는 것은 예사여서 기다리다 지치면 그냥 집으로 오곤 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왕십리의 광심 다방이 그 중에 하나였다. 


 집으로 돌아 온 난 웅크리고 누워 귀는 나발 통처럼 잔뜩 키워 놓고 설레며 감미롭게 기다리곤 하다가 찌-익 울리는 벨소리에 뛰어가서 받으면 “여보세요”와 동시에 “나야”하는 목소리는 너무 반갑고 행복했던 목소리였다. 


 그만큼 사랑한다 싶어 결혼을 했음에도 처음 몇 년은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은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두 딸들을 위해서라도 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 후로는 사랑을 하면 어떻고, 설령 사랑하는 감정이 식어 버렸다 해도 그런 감정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며 별로 남편과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서울을 가기 몇 달 전에 남편이 가게로 전화를 해서 “나 당신 사랑해”하며 나는 어떠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책장을 휙휙 넘기듯 내 마음속을 재빠르게 살펴봐도 사랑이란 감정은 남아 있는 것 같지 않기에 지금 무슨 소리하느냐며 바빠서 전화 끊는다며 수화기를 놓고 말았다.


 아무리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얘기라 해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생각이 날 때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를 곰곰 되새겨 보았다. 


 미혼 시절엔 사랑한다는 감정이 그렇게 복잡하지도,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아 웬만큼 마음에 와서 닿고 좋으면 무조건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해를 거듭할수록 남편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아내에 대한 마음이나 태도, 생활에 임하는 자세, 성실성, 아이들에게 자상한 보살핌 등등이 좋은 감정으로 느껴질 때 사랑인가 싶은 것이지, 그렇지 않을 때엔 상황이나 정도에 따라 무관심이나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저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민생활 하는 동안 남편의 태도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실망스러울 때가 더 많았으니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으며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후 남편과 같이 서울에 나갔을 때 대학 친구 두 명을 만나게 되었다. 한 친구가 얘기하는 도중 남편이 출근을 할 때면 당신은 ‘귀하신 몸’이니 몸조심하라며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남편의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연봉 1억은 넘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듣고 있다가 “그 정도 능력 있는 남자라면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도 남지” 하였다. 꽤 오래 전 얘기이니 그때 연봉을 그 정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뒤미처 똑같은 남자이건만 연봉 1억 이상을 받을 때와, 그 동안 모아 놓은 재산도 많지 않고, 명예퇴직을 해서 집에서 놀고 있어도 귀하신 몸이라 대접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은 것을 그냥 삼켜 버리고 말았다. 물어 보나마나 한 것을 무엇 때문에 묻겠느냐며 말이다.  


 두 달 넘게 서울에 같이 있다가 내가 캐나다로 들어오고 연말에 남편이 전화를 해서는 “나 당신 사랑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나도 사랑해요”하고 말해 놓고는 쑥스러워 그만 전화 끊는다며 수화기를 놓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남편이 직장을 제대로 다니고, 그야말로 월급봉투라도 넉넉하게 갖다가 줄 때에는 남편 대접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더니, 그렇지 않을 때엔 남편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져 생각만 해도 민망스럽다. 


 그렇긴 해도 때로는 남편의 수입, 경제적인 능력이 사랑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또 그와 비례하는 듯 보임은, 살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엔 부대끼는 일이 별로 없어 부부간에 다툰다든지 싸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림이 궁핍해지기 시작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불편해지는 심기를 자주 들어내게 되어 부부간에도 다투는 일이 잦아지니, 과연 우리 부부가 사랑을 하는지, 사랑하고 있었는지 조차도 회의에 빠지게 된다.


 남편의 경제적인 능력이 좀 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생활하면서 조금 불편하다는 것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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