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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옷이나 장갑, 신발 따위는 내 것이라고 아끼고 챙기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나 아주 어렸을 때는 새 운동화 한켤레라도 사오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잠 잘 때 그 새 운동화를 가슴에 품고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건을 새로 사도 그저 그렇고 시큰둥한 게 새것이라고 특별 대접을 해주는 법은 없다.
집사람은 내가 물건을 퍽 정갈스럽게 쓴다고 칭찬을 한다. 이것이 나에 대한 집사람의 몇 가지 안되는 칭찬 중의 하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도 과히 어긋난 말은 아니다. 예로 내 자켓은 1970년 내가 학위를 마치고 첫 직장으로 노트르담 대학교에 갔을 때 산 물건이 아닌가. 이 자켓을 20년 넘게 입었다. 너무 오래 입었더니 소매가 너덜너덜 해어져서 수선집에 가서 안감을 새로 대고 소매를 줄였더니 새 물건이 되었다.
이 재건축한 자켓을 입고 또 한 20년을 잘 지냈다. 처음 샀을 때는 자켓의 옷깃(lapel)이 넓은 것이 유행이었는데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는 반복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나는 유행의 변화에는 아랑곳 않고 그대로 입고 다녔다. 언젠가 우리가 살던 런던에 갔을 때 옷가게에 가서 내가 입던 트위드(tweed) 자켓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옷감으로 자켓을 만든지는 옛날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물건을 정갈스럽게 쓰는 또 하나의 예로는 구두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2003년인가 2004년, 내가 E여대에 있으며 캐나다를 잠시 방문했을 때 두 켤레를 동시에 산 물건이다. 아무리 두 켤레를 가지고 번갈아 신었다지만 생각해보니 구두 한 켤레에 15년 넘게 신고 다닌 셈이다. 집사람 성화에 못 이겨 구두를 바꿔볼 생각도 해보나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쇼핑센터까지 가기는 정말 귀찮아 오늘 내일 미루고 있다.
이 구두 게이트의 배후인물은 미석(美石) 정옥자라는 올해 78세의 노파다. 나는 꿈 많은 19살, 그 노파는 꽃피는 청춘의 17살 서로 눈이 맞아 결혼, 같이 산 지가 벌써 50년이 넘었다.
정 노파는 고려가 망하고 600년 동안 한양에서만 살았다는 그야말로 한양의 원주민-. 그러나 나는 태산준령의 경상도, 청량산 기슭에서 여름이면 물고기나 잡고 남의 집 수박밭이나 넘겨다 보던 야생마(野生馬). 설사 음식 한 젓가락을 바지에 흘렸다 해도 종이 수건으로 쓱 한 번 문질러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사내아이 옷에 음식 얼룩이 몇 점 있는게 무슨 큰 흠이냐,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는 법, 그대로 둘 것을 권한다.
월남국수집이 약간 지저분해도 괜찮은 것처럼 남자도 옷차림새가 좀 꺼벙해 보여도 여자들의 나들이옷에 묻은 얼룩처럼 치명적은 아니란 말이다. 쌀밥이 귀하던 조선 때, 어쩌다가 쌀밥을 먹는 날이면 ‘나도 쌀밥 먹었다’는 표시로 입가에 밥알 한 톨쯤은 일부러 붙어 있게 했다지 않는가.
나는 구두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적이 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내가 학위를 마치고 노트르담 대학교에 교수자리를 얻은 때였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가족초청 비자로 캐나다에 오셔서 밴쿠버공항에서 넬슨 집으로 오는 길에 모텔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잠을 깼을 때, 아버님, 어머님이 두런두런 말씀을 나누는 것이 들려왔다. 내가 재구성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버지: 동렬이 자가 직장도 없는 모양일세. 머리 해가지고 댕기는 꼬라지나 신고 다니는 구두나 자동차 꼴 좀 보소. 저게 어찌 대학교수란 말이요…
*어머니: 동렬이 해 가지고 댕기는 꼴을 보이까네 직장도 변변한 게 없는 모양이지요…
외모에서 나는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머리는 이발을 못해 어깨까지 내려오고(그때 나는 장발족이었다) 옷은 마대 같은 옷감으로 만든 양복저고리에(나는 당시 tweed로 만든 최신 유행 자켓을 입고 다녔다) 내가 신고 다니는 신은 왈라비 캐주얼(Wallaby casual), 반짝이는 구두가 아닌 극히 투박스럽게 보이는 구두였으니 아버지 어머니의 기준으로 보면 “내 아들이 교수요” 하는 말은 도저히 나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출판기념회다, 색소폰 연주회다, 무슨 강연이다 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가 내게로 쏠리는 날이면 내 구두에 대한 아내의 불만은 그 정점을 이룬다. 이런 날이면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교 말씀을 혼자 중얼중얼한다.
몸치장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기능 말고도 남에게 혐오감만 주지 않으면 OK다. 내가 이 나이에 말쑥한 노신사가 되던 지저분한 늙은이가 되던 무슨 상관이랴? 말끔한 노신사가 되었다고 ‘저 영감 여편네는 영감치송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귀찮고 바쁠까’ 하고 동정하는 아낙네도 없을 것이요, 지저분한 늙은이가 되었다고 ‘저 영감 여편네는 남편을 저 꼴로 해두고 자기는 뭘할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내 조선나이 80세.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어도 되는 나이다. 공자도 나이 80세면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고 했지 않는가. 공연히 새 구두 산다, 안 산다 하지 말고 내년에는 못 이기는 척하고 집사람 손에 끌려 쇼핑센터 구경이나 한 번 나가볼까?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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