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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대결
leed2017
2020-02-09
오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스페인, 과테말라, 세르비아 등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바쁘다. 행사내용도 가지각색.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홍보하는 세미나, 사진전, 강연 같은 비교적 조용한 행사를 하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낙태 지지, 혹은 낙태 반대 같은 특정 이슈(issue)를 걸고 시끄럽고 격렬한 길거리 시위를 한다.
여성은 자기 몸에 일어나는 일은 자기 스스로가 통제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고, 뱃속에 있는 태아(胎兒)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함부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입장이다. 특히 카톨릭 신자들이 많은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는 반대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어느 나라 행사를 봐도 행사의 골자는 하나같이 ‘여성은 남성에게 많은 권리를 빼앗겼으니 이것을 되찾아 남녀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리를 빼앗겼다니 애당초 그 권리를 다 가지고 있었는데 남성에게 빼앗겼단 말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잠시 태곳적 동굴 생활로 돌아가보자. 인간의 존재 목적은 자기의 유전자를 되도록 많이 뿌려놓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식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이 목적에 부응하는 것. 그러니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이성(異性)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 시절 인간사회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한 가지 자원(資源), 즉 이성(異性)과 이성을 차지하는데 도움이 될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성 대 남성 갈등에서는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갈등이 생길까?
진화 심리학으로 보면 두 성(性) 간에 갈등은 남성과 여성이 쓰는 책략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일어난다. 남성과 여성은 성(性)적 욕구 만족에 대한 책략이 다르다. 그 중 가장 큰 책략의 차이는 남성은 성(性)적으로 적극적인 반면 여자는 소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또 남성은 성적 욕구를 비교적 짧은 시일 안에 만족하기를 바라고, 여성은 성적 욕구 만족을 연기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니 두 성(性)이 같은 욕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는 없다.
만일 어떤 여자가 상대 남자가 자기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일 때까지 성적 욕구 만족을 늦추는 데 반해, 남자는 빠른 시일 안에 성적 욕구 만족을 서두른다면 두 책략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갈등은 성적 욕구 만족시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애(求愛) 중 남자가 자기 학력을 속이거나 자기의 결혼 사실을 속이는 것, 여자가 자기 나이를 속이거나 결혼을 하고 나서 배우자 아닌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도 책략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나 질투, 슬픔, 낙심이나 실망 같은 부정적 정서는 주로 이 책략 갈등 해소와 관련된 정서이다. 진화 심리학으로 보면 ‘성(性)대결’이란 이상한 말이다. 남성은 여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기네들끼리 경쟁을 하며 여성도 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경쟁하는데 성(性)대결은 무엇을 두고 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동굴을 떠난 지가 오래 되었다. 이제는 싸움의 형태도 그 원형을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 여성이 최고 권좌에 앉은 나라도 있고, 굵직굵직한 기업체의 CEO 자리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학 사회에서도 여성 교수의 비율은 해마다 높아간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져도 보통 달라진 게 아니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성(性)차별이란 성에 대한 편견과 퍽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녀평등의 만개(滿開)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조지 번스(George Burns)의 익살스런 말이 생각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에 성(性) 대결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을 원하고, 여성은 남성을 원하는 한…” (20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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