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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의 고향생각
leed2017

 

 고향이란 멀리서 바라보아야 그리움이 더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라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진 사람도 있고, 북한 어디에 고향을 둔 사람처럼 갈래야 갈 수 없는 고향, 말하자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나 그 그리움의 정도에는 차이가 크다. 이 세상을 다녀간 시인들 중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詩) 한두 편을 써보지 않은 시인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시인은 꿀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꿀벌과 같고, 병아리를 품어본 적이 없는 암탉과 같다. 또 한가지- 사람은 나이가 더해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더해진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 태백산맥에서 튕겨져 나온 청량산 근처다. 봄이면 산에 진달래 불길이 온 산에 번지고 여름이면 낙동강 물줄기를 타고 은어(銀魚) 떼가 올라오는 곳, 여느 동네와 다를 것은 없다. 안동의 옛 이름은 영가(永嘉) 혹은 복주(福州)다. 그런데 지금 안동에 가면 ‘안동웅부’라는 고려 공민왕이 쓴 것으로 알려진 큰 해서(楷書)체의 간판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도 안동으로 불렸던 모양이다. 


 이 ‘안동웅부’ 글씨는 홍건적 난리가 일어나자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와 있을 때 쓴 것이라 한다. 얼마나 겁보 임금이었으면 일개 도적의 무리들을 피해서 개성에서 600리 길 안동까지 피난을 왔을까. 안동에 있기도 불안했던지 안동에서 60리 떨어지 심심산골 청량산까지 도망을 갔다 한다. 지금도 청량산 근처에 왕모산성(王母山城)이니, 내 역동 생가에서 40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민왕대(愍王臺)니 하는 공민왕에 얽힌 유적들이 많은 것을 보면 꾸며낸 말은 아닌 것 같다.


 나의 문장 멘토(mentor) C씨에 따르면 고향에 간다는 말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귀향(歸鄕)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돌아간다는 총체적인 일컬음이고, 귀성(歸省)은 부모 형제가 살아계셔서 고향에 문안드리러 가는 것, 귀고(歸故)는 부모는 이미 다 돌아가시고 찾아볼 이 없는 옛 고향에 가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향(落鄕)이란 벼슬살이로 외지에 나가있던 선비가 늙어서 고향에 돌아와서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부모 형제가 안 계시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그 말은 거짓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시면 부모님에 대한 회억의 실타래는 ‘고향’이라는 큰 단어 속으로 흡입되어 버리는 것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뼈에 새겨진 원죄 같아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전라남도 광산에서 태어난 여명기의 시인 용아(龍兒) 박용철은 고향을 찾았을 때의 슬픔을 다음과 같이 쏟아 놓았다.


‘고향은 찾아 무엇하리/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데/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마을 앞 시내도 옛 자리 바꿨을라/어릴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떠도는 구름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지 여남은 해/고향은 이제 찾아 무엇하리/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워 보랴/남겨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라/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었만/서로의 굳은 뜻을 남게 아낀/옛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콧등이 시큰해오는 서러움과 그리움, 애정과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는 원망이 뒤범벅이 된 애절한 망향의 노래이다. 


 몇 주 전에는 고향친구 C의 편지를 받았다. C는 강 건너 학교가는 길 ‘청고개’ 밑에 살던 같은 반 아이. 지금 그가 사는 곳은 그의 옛날 마을에서 자동차로 40분도 안되는 거리에 살면서도 옛 마을을 그리워하는 녀석이다. 내가 한국에 가면 C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청고개’를 가서 하루 종일 몽유병 환자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돌아오는 올해로 일흔 여섯에 접어드는 노인 녀석이다.


 동렬아 보고 싶구나. 건강히 잘 지내겠지? 네가 있는 곳에 해가 뜨면 내가 사는 곳에 달이 뜨고 내 있는 곳에 해가 뜨면 네 있는 곳은 달이 뜨니 무슨 묘한 인연인고, 늘 그립다… 지금도 청고개에 가끔 가보면 사람이라고는 구경할래야 할 수 없는 첩첩산중이 되어 옛날 우리가 살 때는 없었던 멧돼지, 산도라지, 더덕 같은 꿈에도 못 보던 것을 캔다. 올해는 산삼도 한 뿌리 캐었단다(자랑!)…


 오늘같이 한 해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는 날은 고향 생각, C녀석 생각이 간절하다. 그 고개를 떠난지 어언 46년. 내 떠나던 날 울던 뻐꾹새는 가고 없어진 지가 옛날일 테고 그의 20대나 30대 후손되는 놈이 주인도 없는 빈 산 속에서 혼자 울어대고 있을 것이다. 무정타 세월이여, 40년 넘는 세월이 구름 저쪽으로 갔구나. (20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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