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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만리(秋情萬里)
leed2017

 

 
 가을이 깊어간다. 아침저녁 산책길에 나서면 한기(寒氣)로 몸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한낮이면 그 불길 오르듯 이글거리던 햇빛이 따사롭게 느껴진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건만 가을에 대한 느낌은 나이가 더해가며 감상적(感傷的)으로 변해간다. 옛날 시인들의 시(詩)를 보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처음 느끼는 낌새는 제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나뭇잎이나 귀뚜라미를, 어떤 이는 밤비나 강물을, 또 어떤이는 하늘빛, 바람 소리 등 가을이 오면 달라지는 것 무엇이든 낌새로 썼다. 중국의 문장가요 서예가인 구양수가 쓴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아 가을이 왔구나’를 탄식하는 시(詩)를 대학교 때 본 것 같아 그 시(詩)의 원문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서가를 뒤졌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내 장기 기억에 애당초 등록이 잘못 되었던 것인가.


 그래서 중국을 버리고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詩)를 뒤졌다. 맨 처음 손에 잡힌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었다.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이렇게 힘들여 읊고 있건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 어디에도 날 알아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엔 깊은 밤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천만리 떠나간 마음

 


 여기서 지음(知音)은 자기의 참뜻을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를 이르는 말. 옛날 중국에 백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친구 종자기라는 사람이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 가락에 부친 악상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삼경(三更)은 밤 12~2시 사이, 위의 시의 핵심이 되는 만리심(萬里心)은 아득히 멀고 먼 곳으로 달리는 마음을 말한다. 나는 이 고운의 시를 좋아해서 20여 년 전 토론토에서 부부 서예전을 할 때 큰 행서작품으로 이 시(詩)를 내놓은 적이 있다.


 작자 최치원은 신라 때 사람으로 12살 때 당(唐)에 유학, 그곳 과거에 장원급제, 중국 문단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28세에 귀국,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 때 이미 신라는 국운이 날로 기울어져 가고, 벼슬아치들은 온갖 비리와 질투, 모함을 꾸미는 데만 바쁜 것을 보고 비관, 벼슬을 버리고 팔도강산을 방황, 끝내는 가야산에 은거했다. 이 시(詩)는 실의에 찬 당시의 심정을 가을밤에 부쳐 지은 노래. 그러니 이 시(詩)에 배인 정서는 어디까지나 쓸쓸함과 처량함, 외로움과 그리움이다.


 가을은 고독하다. 흥에 들뜬 봄도 지나가고 여름도 어느덧 저쪽으로,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달이 지고 귀뚜라미 울음에 내 청춘에 가을이 왔다”고 한 월파(月坡) 김상용의 가을은 마음의 조락, 곧 늙음이다. 요즈음 와서 뜬금없이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까?” 하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꾹 눌러두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벌써부터 의식의 틈을 비비고 올라온 모양이다. 왜 이런 생각이 하필 가을에 잦을까? 아마도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고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니 가을은 겨울의 예비단계라서 그런 것 같다. 


 등잔 앞 만리의 마음이라더니 40년 전에 살았던 브리티시콜럼비아(BC)주의 산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가 캐나다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밴쿠버이기 때문에 첫 정(情)을 준 데가 바로 거기다. 뼈저리게 가난했던 밴쿠버 시절, 그러나 그 때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어서 그랬는지 피곤한 줄 모르고 살았다. 공부를 한다는 자부심이 하늘에 닿고도 남을 시절.


 밴쿠버 시절을 생각하면 반드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C교수다. 그는 10살이나 아래인 나 같은 가난뱅이 학생을 정말이지 친동생처럼 돌봐주고 인생살이 얘기를 털어놓던 분이다. 우리는 토요일이면 교수댁에 모여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울분도 쏟아놓곤 했다. 사모님이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접시 내놓으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빈 접시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는 고마움을 몰랐으나 내가 가정을 갖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그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C교수가 2012년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병들어 죽게 마련이지만 C교수가 그렇게 훌쩍 쉽게 떠날 줄은 몰랐다. 그는 수학자이지만 사회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어머니가 캐나다를 방문하였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교수댁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그날 밤 교수 내외분의 ‘앵콜’ 아래 어머니는 소동파의 적벽부를 읊고, 노계의 도산가, 서포의 구운몽을 외웠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얘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시던 어머니. C교수가 마음 속 깊이 인각(印刻)되었던지 어머니는 세상을 뜨시기 몇 주 전까지도 교수 안부를 물으셨다.


 오늘 같은 날, 길에는 낙엽이 뒹굴고 하늘에는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가는 것을 보니 ‘秋情萬里心(추정만리심)’, C교수 생각에 좀이 쑤신다. 이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또 봄이 올 것이다. 이 끝없이 되풀이 되는 천도(天道) 속에서 우리 인생은 말없이 늙어간다. (20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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