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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상대주의
leed2017
2019-09-26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으나 '문화의 모자이크(mosaic)'니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니 하는 말들이 나돌던 생각이 난다. 아마 내가 유학을 오고 나서 곧 이민이 시작될 무렵이었지 싶다. 이런 말들의 요점은 지금까지 다른 문화권에 살던 사람이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을 때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지키면서 캐나다 문화에 모자이크 조화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용광로처럼 미국이나 캐나다 주류문화에 흡입 용해될 것인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의 상대주의'란 말이 있다. 즉 어떤 문화든 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들은 자기 문화가 자기들에게 가장 합당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문화를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둘로 나누었을 때 동양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동양문화가 제일 합당한 것으로, 서양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서양문화를 가장 합당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 눈에 안경이란 말'. 그러니 극단적인 문화 상대주의에서는 야만, 미개발, 원시적이니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 현대문명을 모르고 수천 년 전에 살던 방식 그대로 아마존 밀림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들로서는 가장 합당한 문화로 생각하는 사조(思潮). 그러니 문화의 보편주의는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니스벳(R. Nisbett) 교수가 쓴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라는 책에 의하면 의학이 발달해 온 것을 보면 문화의 상대적 의미가 잘 나타난다. 서양의학은 수 천 년을 내려온 서양문화의 분석적 사고라는 전통을 기반으로 병(病)든 신체부위를 찾아내서 그 부분을 떼어내서 치료를 하며 발달한 의술이다. 그래서 몸을 각 부위별로 떼어내어 들여다보는 해부학은 고대 희랍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오랜 전통.
이에 비해 종합적 사고를 중시하는 동양문화에서는 병(病)이란 사람 몸 안에 있는 여러 기관들의 상호 균형 유지를 못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각 기관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곧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양문화에서는 신체의 전반적 기능을 활발하게 해주는 보약(補藥) 개념은 있어도 사람의 신체 부위를 떼어내서 들여다보는 해부학(解剖學) 개념은 거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의미가 없는 작은 일도 알고 보면 그 사회의 핵심문화를 반영하고 있을 때가 있다. 예로, 니스벳의 연구를 따르면 미국은 일본보다 몇 십 배 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미국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 간에 갈등이 있으면 법정에서 재판으로 해결되지만 한국 같이 구성원 간에 조화를 중요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법적 대응보다는 타협과 양보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칭찬받는 갈등 해소 방식이다.
서양에서는 정의의 실현이 구성원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상임과 동시에 선과 악은 구별되어야 하며, 어떤 갈등에서나 이긴 자와 진 자가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겨도 진 것이요 져도 이긴 것이라는 논리적으로 혼란스런 결과도 받아들이는 사회.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는 이긴 자와 진 자를 가리기 보다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동서문화를 비교할 때 궁금한 생각이 드는 점 하나가 있다. 왜 한국 같은 동양문화에서는 대중과는 다른,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들에게 신경과민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각도 결국 개인의 권리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서 개인은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존재이고, 이 독립적인 개인이 다른 개인과 사회와 사회적 계약을 맺고 그 계약 속에 개인의 권리, 자유, 의무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문화에서는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의 고유한 권리는 별 의미가 없고 다만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의 개인만 확대 존재한다. 집단의 구성원으로 조화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지 개인의 고유한 권리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불협화음을 내는 사람은 사회 전체의 조화를 방해하는 사람들, 고로 제재(制裁)가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사회에 불협화음을 낸 사람,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잡아가던 것을 본 것이 생각이 난다. 나도 모처럼 한국에 나갔다가 종로 2가 길거리에서 파출소로 연행된 적이 있다. 내 머리가 너무 길다는 이유였다. 색다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경우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양과 서양의 두 대조적인 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의견이 분분하다. 서양문화의 지속적인 우세를 점치는 주장, 문화의 차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 하나의 융합된 문화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 각양각색이다. 물론 각 진영에서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 내 생각을 말하라면 나는 두 번째 주장, 즉 차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융합된 새 문화가 자리를 잡자면 정치, 사회, 경제 구조 등 모든 사회 체제의 변화가 선행(先行) 되어야 한다. 체제가 바뀌지 않는 문화의 융합이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게 나의 지지 이유이다.
내가 죽고 천 년 세월이 흘러 백골이 진토되고 난 그때 쯤이면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지 않을까? (20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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