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9 전체: 416,203 )
오복(五福)
leed2017
2019-08-21
사람은 일반적으로 축복 속에서 태어난다. 아빠 엄마를 비롯해서 주위에 가까운 가족들은 아이가 이 세상에 어서 나오기를 흥분과 설렘으로 기다린다. 요즈음에 태어난 아기는 제 명(命)대로 산다면 80은 무사히 넘길 테고 90, 100, 110살 근처 어디에서 세상을 하직하는 눈을 감을 것이다.
태어난 아기가 커서 어른이 되고 늙어서 죽기 전까지의 인생행로가 세상에서 꼭 같은 사람은 없다. 한 배 속에서 나와서 한집에서 자란 쌍둥이도 겉보기에는 비슷해도 속으로는 서로 생판 다른 삶을 살다가 간다. 삶이 이처럼 예측 불허임에도 인생행로를 점치려는 인간의 노력은 끊이질 않는다. 사주팔자라는 게 그 예가 아닌가.
그러니 바라는 삶의 방법도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재물이 풍성한 삶을, 어떤 이는 육체적, 관능적 만족 위주의 삶을, 또 어떤 이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좇는 삶을 살다가 눈을 감는다.
물론 자기가 어떤 삶을 원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려고 애쓰고, 몸을 튼튼히 하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명예를 찾는 것... 이 모두가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이루고자 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을 얻는 것에 있다"고.
그런데 옛날부터 이 행복한 삶을 이루는 몇 가지 요소랄까 종목이 있다. 이를 두고 오복(五福)이라 한다. 순서대로 적어보자.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수(壽)는 오래 사는 것, 부(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사는 것, 강령(康寧)의 강(康)은 신체적 건강을, 령(寧)은 정신적인 건강을 말한다.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좋아하는 태도로써 남을 도우려 애쓰는 착한 행동으로 덕을 쌓는 것, 마지막으로 고종명(考終命)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언어력, 수리력, 공간 지각력 같은 분야의 점수를 모아 지능지수(IQ)를 산출하는 것처럼 이 다섯 종목에서 얻은 점수를 종합하여 오복의 많고 적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오복 개념이 언제 어디서 태어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교가 조선에 흘러들어오기 훨씬 전, 그러니까 고려나 삼국시대, 아니면 저 옛날 동굴 속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유행하던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수천 년을 내려오던 오복의 개념이 최근에 와서 흔들리고 있다.
8.15, 6.25, 4.19, 5.16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가치와 규범이 급격히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복(五福)도 영향을 받았다. 하루는 내 컴퓨터에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나 '오늘날의 오복'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 다섯 가지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1. 건강
2. 처(남편 혹은 자기를 돌봐 줄 수 있는 배우자)
3. 재산(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재산)
4. 취미(생활의 리듬과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소일거리)
5. 친구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편안한 최후를 맞이하는 고종명과 함께 남에게 선행과 덕을 베풀라는 유호덕이 없어진 것이 흥미롭다. 이제는 일찍 죽는 병의 대부분이 치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죽을 때 산소마스크를 달고 있으니 고종명의 의미가 약화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유호덕이 빠진 것은 서구에서 몰려온 개인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남에게 선행을 베풀고 덕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보자는 '나'에 대한 관심 때문에 '남'이 많이 줄어든 반면 완전한 '남'보다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내세우다 보니 친구 항목이 들어선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덕을 쌓는다는 말 같은 것은 점점 들어보기가 힘들다.
전통적인 오복이나 현대 오복에 자식 복이 없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예로부터 많은 자식들이 효도를 하기는커녕 부모 속만 썩이는 애물단지가 되어 자식이라면 아예 효경(梟?)의 기질이 있는 존재로 봐서 그런가? 효(梟)는 어미를 잡아먹는 새이고 경(?)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으로 불효 혹은 불충을 말한다.
또 최근의 배금사상은 도도하게 밀려 내려오는 용암처럼 인간생활의 모든 면을 뒤덮고 있다. 그 결과 멀지 않아서 제1의 복인 수(壽)의 자리가 부(富)에 밀려날지도 모른다. 배금사상이 초대형 복(福)으로 부상(浮上)하는 날에는 돈만 있으면 5복 중 4가지 복은 식은 죽 먹기로 쉽게 해결이 된다는 말이다.
예로 앞에서 한 1만 년이 지나면 뱃속에 있는 아이도 잠시 꺼내어 필요한 성형수술을 하고 다시 자궁에 집어넣는 기술이 나올지 모른다. 그런데 그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일텐데 우리나라에서 이 돈을 감당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L씨와 C씨 두 가계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1복 부(富)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1복이 될 것이다. (2012. 8)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