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진에 얽매이어 떨치고 못갈지라도
강호(江湖)일몽(一夢)은 꿈꾼지 오래더니
성은을 다 갚은 후는 호연장귀 하리라
※해설: 속된 세상에 얽매여서 떨쳐버리고 가지는 못해도 속세를 떠나 전원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은 꿈을 꾼 지는 오래다. 임금님 은혜를 다 갚고 나면 태평스럽고 시원한 마음으로 전원으로 돌아가서 살까한다.
저자는 남파(南坡) 김천택이다. 그는 영-정조 때의 가인(歌人)으로 노가재 김수장과 친하게 지냈다. 노래 뿐만 아니라 시조도 잘 지었으며 노가재와 더불어 평민 출신으로 구성된 <경정산 가단(敬亭山 歌壇)>을 창립하여 거기서 김진태 등 조선 말기를 주름잡던 시조 가인들이 많이 나왔다. 남파는 시가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하여 우리나라 시조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어려 세상 사람 아지 마라스라
알면 정 나고 정 나면 생각나니
평생에 떠나고 그리는 정은 사람 안달인가 하노라
※해설: 세상 사람들아 사람 알려고 하지 말아라. 사람을 알게 되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평생에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정은 사람 알게 된 탓이다.
다음은 성낙은 님의 <고시로 산책>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시로 한 수가 퍽 재미있다고 생각되어 여기 옮겨 본다.
바람아 불지마라 비올 바람 불지마라
가뜩이나 변한 마음 길 질다고 아니 온다
저 님이 내 집에 온 후에 구년수(九年水)를 지소서
※해설: 별다른 해석은 필요없는 듯하다. 다만 종장에 나오는 구년수(九年水)는 중국 요임금 때 있었다고 하는 9년에 걸친 홍수를 말한다. 일단 님이 내 손에 잡히면 녀석을 내 사랑의 노예로 만들고 말겠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이 책 <시조 이야기>의 저자로서 자주 감상하는 시조 여섯 수를 소개해 볼까 한다. 말하자면 노래에서 18번 노래를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 여섯 수는 너무나 잘 알려진 시조들이고 모두 전번의 졸저 <세월에 시정을 싣고>에 얼굴을 내밀었던 시조들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말의 대학자요 충신 야은(冶隱) 길재의 흥망성쇠와 인생무상을 읊은 노래이다. 태조 이방원이 벼슬을 주려고 불렀으나 가지 않고 선산 금오산으로 들어가버렸다. 김숙자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가르치며 영천의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영남학파의 조종(祖宗)이 된다.
선인교 내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니
반천년 왕업이 물소리 뿐이로다
아이야 고국흥망을 물어 무엇하리오
개성 송악산 자하동 골짜기에서 개성시내 선인교까지 흘러내려오는 것을 보고 고려 사직의 무상함을 허무주의자의 입장에서 읊은 노래이다. 작자 삼봉(三峰) 정도전은 당시의 많은 성리학자들이 명문거족 가문 출신임과는 대조적으로 극히 보잘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미천한 출신 배경은 동문 수학하던 벗들로부터 따돌림과 무시를 당했다. 이 서러움이 뒷날 그의 혁명 사상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도전은 서울로 올라와서 이성계를 만나면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그의 조선 개국에 끼친 영향은 누구보다도 크다. 조선의 국호를 정하고, 서울을 선계하고 경복궁의 여러 전각과 동대문, 서대문 등 4대문의 이름을 지은 것도 정도전이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임의정이
녹수 흘러간듯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여어 가는고
사랑하는 님에게 바치는 일편단심을 노래한 황진이의 노래다. 이 멋진 구원의 연가를 듣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목석 같은 사나이들이 있을까? 황진이에 대한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가 흩어져 있으나 그 대부분이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여 신빙성이 극히 적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선조 때 전라도 부안 명기 매창이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그의 님은 임진왜란 때 의명을 지휘했던 촌은(村隱) 유희경으로 촌은이 부안에 왔을 때 정이 깊었다 한다. 드디어 남자 차림을 하고 촌은을 찾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와서 “기러기 산채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력히 가르쳐 두고/ 밤중만 님 생각 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하는 애절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한다.
감장새 작다하고 대붕아 웃지마라
구만리 장천에 너도 날도 나도 난다
두어라 일반(一般)비조(飛鳥)니 너와 내가 다르랴
이 이택의 시조에 나타난 두둑한 배짱과 강인한 투지력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없이 필요한 생각이다.
청춘 소년들아 백발노옹 웃지마라
공평한 하늘 아래 넨들 매양 젊었으랴
우리도 소년 행락이 어제런듯 하여라
우리도 소년 시절을 즐겁게 보낸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젊은이들아 우리 늙은이들 보고 너무 늙었다고 비웃지 마라. 이 공평한 하늘 아래 너라고 늘 젊어 있겠느냐. 우리도 젊어서 뛰어놀던 적이 바로 어제 같구나. 어느 무명씨가 쓴 노래인지는 몰라도 맞는 말, 꼭 맞는 말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애상적이고 가냘픈 정서의 소유자 이조년이 671년 전에 이 세상을 다녀가면서 남겨놓은 시조가 <시조 이야기>의 저자 이동렬이 가장 문학적 수준이 높은 노래로 꼽는 시조이다.
<시조 이야기>를 마치며
일 년 가까이 연재되던 <시조 이야기>가 이번 주로 끝을 맺는다. 펜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던 필자의 입장으로는 여간 시원섭섭한 심정이 아니다. 독자 중에는 이 고리타분한 옛시조를 왜 이렇게 오랫동안 질질 끌었느냐는 불만을 품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시조 이야기>가 옛날에 읽었던 시조를 다시 한 번 감상할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시조 이야기>는 팔자가 사나워서 애당초 H 일간지에서 시작하여 C 일간지를 거쳐 방황하다가 이용우 사장의 옛시조에 대해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과 사랑 덕분에 <부동산캐나다>를 만나 둥지를 트고 ‘여생’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다시 한번 이용우 사장의 뜨거운 지지에 고마움과 찬사를 함께 보낸다. 그리고 <시조 이야기>의 원고, 특히 어려운 한자(漢字)를 타이핑하느라 진땀을 뺀, 한문을 배우지 않은 세대 출신인 <부동산캐나다>의 이은미 님에게도 가슴 가득 마음의 꽃다발을 안겨 드린다.
옛시조는 우리 선인들이 살아온 이야기이다. 그들이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무서워하고 흥분하던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속살이요 600년 가까이 이어온 이 겨레의 숨결이다.
<시조 이야기>는 <이동렬 시조 이야기>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내년 2월 서울에 있는 수필집 출간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 <선우 미디어>에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책의 준비는 이미 제 1, 2 교정을 마치고 제 3 교정 단계에 와 있다.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빈다.
청현 산방(山房) 주인 도천 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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