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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 내력(來歷)
leed2017

 

 

나의 글쓰기 내력(來歷)

 

 

 내가 수필이란 이름을 단 글을 써서 내놓은 지가 올해로 거의 30년이 된다. 맨 처음 글을 쓰게 된 것은 내가 런던에 있는 웨스턴 온타리오대학교에 직장을 얻어 있을 때다. 당시 토론토에서 <민중신문>이라는 야당 계통의 신문을 발행하던 나의 일 년 후배요 아내에게는 일 년 선배가 되는 C씨의 요청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정치적인 내용의 글은 안 쓴다." 고 거절했더니 "정치적인 글이 아니라도 좋다."기에 용기를 내서 쓴 글이었다. 맨 처음 나간 수필의 제목은 '박사 학위'.

 

 '박사 학위'는 어디까지나 만문(漫文)에 지나지 않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좋다며 "또 써라, 또 써라." 등을 밀기에 내 허영심에 불이 붙어 마구 써대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 글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시사성이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나는 서정적인 글을 고집하였다.

 

 그러던 중 H일보 K사장은 만나서 화담 끝에 자기는 서정적인 글도 좋다고 해서 내 글을 발표하는 신문을 H일보로 옮겼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H일보에 많이 발표를 했다. 책에 나온 내 수필 대부분이 H일보를 거친 것이다. 또한 한국 수필문학 문예지 <수필공원>, 지금의 <에세이문학>에도 내 글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에 네 번씩 실렸다.

 

 1986년에 첫 수필집 <남의 땅에서 키운 꿈>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출간된 수필집은 모두 14권이다. 이들 모두가 신작 수필은 아니고 이중에서 선집(選集) 두 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겠다. 첫 번째 선집은 2003년, 수필집 출판을 주로 하는 <선우미디어>에서 선우 명수필 시리즈를 내는데 내 수필은 <향기가 들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다. 두 번째는 2009년 서울에 있는 <좋은 수필사>에서 다섯 명의 출판위원이 한국 현대 수필가 100명을 선정하여 수필집 단행본 한 권씩 출간하는데 내 이름도 그 명단에 끼이게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그리움 산국화 되어>가 그 선집 이름이다. 나는 서른 해 사이에 선집이 두 권 나왔다는 것은 글쓰기 이력에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재정적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필집 출간 비용은 몇몇 저명한 수필가들을 제외하고는 필자 자신이 부담한다. 시(詩) 분야도 별로 다르지 않다. 수필집 한 권을 내면 전국적으로 200부 정도밖에 안 팔리는데 출판비까지 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새 수필집은 자비 출판이었으니 경제적 출혈이 매우 컸다. 그러나 선집(選集) 두 권과 시조풀이 두 권은 출판사에서 부담하였다. 이유는 책이 팔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 성적이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라고 스스로 대견해한다.

 

 즐거운 소식이 또 있다. 1998년 봄, 서울 큰누나 댁에서 빈둥대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전보 한 통이 와서 뜯어보니 한국 수필문학진흥회에서 내가 현대수필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통지였다.       나는 상(賞)이란 것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전보를 받고 내 기분은 하늘을 날듯 하였다. 이처럼 상이란 내가 받을 때는 미역국 한그릇이라도 대단한 것이고 남이 받을 때는 금송아지 한 마리도 별것 아닌 것이다.

 

 나는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한다든가 앞으로 수필문학이 가야 할 방향 같은 소위 수필의 이론적인 면이랄까, 문학적인 토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수필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요새는 자기 PR시대. 수필 한두 편을 발표하고는 어느 사이에 자기 이름 뒤에 수필가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 어디어디서 문학 강좌를 들었다고 뽐내는 사람, 자기 글이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자주 눈에 띄는 세상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은 자동차 판매원이 될 자질은 탁월할지 모르나 수필가로서의 격(格)은 크게 모자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수필에 대한 날카롭고 정직한 평을 받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칭찬 일색으로 도배를 한 평(評)은 나를 당황하게 할 뿐 아니라 내 글의 장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한국의 원로 철학자요 수필가인 H씨가 <한국 철학수필평론>이란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나의 세 번째 수필집 <흐르는 세월을 붙들고>를 17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하면서 꼼꼼하게 평을 하였다. 내 수필이 “유머 수필의 개척자가 되겠다.”는 칭찬도 있었고, “글의 마지막을 항상 영탄조(詠嘆調)로 엉성하게 끝낸다.” 는 꼬집음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시원한 평을 들어 봤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문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내 글에 대한 H씨의 평이 혹독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으나 요즈음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작품에 한두 마디 부정적 평만 들어도 발끈 성을 내거나 속상해하고 어떤 사람은 작품에 대한 평을 인신공격으로 생각해서 십여 년 이어왔던 우정 관계도 하루아침에 끊어 버린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어느 원로 수필가는 나를 보고, “남의 글을 평할 때는 무조건 ‘좋다, 좋다’만 할 것이고 고인의 추모사를 하는 것처럼 칭찬하는 말만 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이것을 보면 한국에서고 어디에서고 남의 글을 평하는 풍토는 우선 칭찬 일색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딘가 잘못된 풍토임에는 틀림없다.

 

 내 수필에 대한 냉정한 평을 받아 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입학시험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비슷한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즉 시험을 치르고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남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높았지만 막상 합격자 발표날이 다가오면 혹시 떨어지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던 그런 생각 말이다. “이동렬의 수필이 재미없는 열 가지 이유”라도 튀어 나오는 날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내 수필에 대한 시원한 평을 한 번 들어 봤다고 좋아할까. (201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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