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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날의 단상들
drsul
2019-06-13
6월도 절반이 지나갔다. 이제는 바람도 훈훈해지고 햇빛은 너무 따사함이 매일 감사할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건강을 허락해주신 은혜와 가족들을 허락하심을 감사한다.
4살 조금 넘은 손주 엘리옷은 벌써 축구반 등록을. 여름철엔 열심히 뛰고 숙제도 척척해 내는 꼬마 귀염둥이. 아직은 데이케어 원생이지만 놀이터의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걸어서 올라가는 개구쟁이다. 형과 같이 놀 때는 더욱 가관이다. 형을 제압하면서 기합도 넣어본다.
아슬아슬하여 행여 다칠까 봐 노심초사인 나를 위로한다. “할멈, 이건 장난이니 걱정 마세요.” 아주 더운 여름날보다 얼마나 상쾌한 기분인지.
50년 넘은 이민의 발자취, 마음은 아직 열정이 있고 큰 꿈도 남은 지금인데 육신은 변해가고, 겨우 도서관의 출입이나 쇼핑이나 친구를 만나고 손주를 만나는 일 외엔 별로 할 일이 없다.
매일 열심히 가게로 출퇴근하는 남편도 여유로워 보인다. 체중을 줄인다면서 조석으로 30분 이상 산책을 즐긴다. 운동을 즐기는 성격이라서 가게 안에서 철봉을 한다. 가끔 주차장 나무 밑을 걸으면서 햇빛도 쏘인다.
부지런히 운동하고 마음을 부자로 풍요롭게 해야 한다. 산책길의 다리 밑에 흐르는 물이 너무 맑고 소리도 좋고, 풀밭에선 노랑 민들레 꽃과 파랑 잎이 제법 나오는 나뭇가지들, 감탄과 환호가 정말 자연의 이치에 놀랍다.
엊그제는 이곳을 다녀간 올케언니의 카톡 소식에 친정 본가의 막내 올케언니와 사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와서 내가 낳아서 자라고 정이 듬뿍 담긴 친정집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5남매를 혼자서 양육하고 교육시킨 올케언니의 대단함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핑하고, 많이 변하진 않은 언니의 모습에 보고 싶고 쌓인 얘기도 나누고 싶다.
고향을 떠나온 지 50년이 넘었다. 이곳에 더욱 익숙하지만 어릴 적의 내가 놀던 고향의 골목길과 언덕과 동산도 잊을 수만 없으니 말이다.
오빠들이 유난히 사랑을 주었는데 모두 저 세상으로 가버린 지 오래다. 가끔 올케언니들의 사진첩을 뒤적인다. 가족 사진 속의 내 모습도 20대에 떠나버린 나의 조국, 고향 산천이 그립고 애잔한 아침이다.
욕심이 있다면 손주들을 데리고 고향에 가서 보여주고, 설명도 하고, 나물 뜯기와 소풍날의 어린 시절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들이 6살 되던 해(70년대) 고국 방문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말해줬는데 “엄마 왜 코리아는 어른들을 존경하라시면서 아이들의 생각은 별로 존중하지 않는가요?” 무엇이든 어른의 중심이 되어있다고 자기가 본대로 의견을 말했던 아들의 어릴 적 반문이 생각난다.
지금은 많이 변한 고국의 사정을 아들, 딸이 알 수 있을까. 가끔 고국 홍보에 열을 올렸던 우리 부부의 덕택에 아들, 딸은 삼성 제품을 애용하니 고마운 일이다. TV와 전화기 등 사위도 우리 의견을 존중해서 근간에 현대자동차의 자동차도 샀다. 한 사람의 말도 그렇게 힘이 되는데…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뿌리인 조국이 부강하면 우리의 마음도 부유해진다. 애국엔 별것 없다. 될 수 있으면 조국의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 실천도 해야지 요즘엔 G식품점 문화교실에서 열심히 무료 봉사하던 Y선생 시간과 기술로 봉사함을 보고 훌륭한 재능을 주신 능력도 감사한다.
최선을 다해서 남의 아픔을 정성껏 치료해 주시는 강사 선생님. 무엇인가 남을 위해 배려하고 실천하는 것도 축복의 길이다. 어깨가 뻐근할 때 좋은 자세로 운동을 계속하라시던 Y 선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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