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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노스욕 참사의 현장을 목격했다. 아침부터 후배들을 만난다고 서둘렀다. 영과 쉐퍼드 부근엔 주차공간이 없으니 GO BUS를 이용했다. YK 아우와 우리 일행이 반갑게 만나 점심을 끝냈다. 화창한 날씨에 유난히 많은 인파가 통행 중이었다.
난 속으로 ‘웬 사람들이 유독 많구나’ 했다. 그땐 벌써 핀치 부근에서 사건 차량이 인도에서 광란의 질주를 한 후였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아우성. 우린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동포들이라도 만나면 자세한 소식도 알아볼 겸, 허겁지겁 시청 앞의 쇼핑몰 위층 S은행으로 갔다.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의 통제와 삼엄함.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구급대원들이 보이고, 주황색 담요로 4-5명을 덮어서 차량에 옮기고, 이게 무슨 참변이고 참사란 말인가.
수년 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질 땐 내가 젊었으니 지금의 심정과는 달랐다. 수많은 행인 속엔 갑자기 동행했던 친구나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이 간간이 보였다.
시내 사는 YK 아우는 지하철 남쪽 운행이 가능했기에 3시에 출발하였다. A 아우와 나는 뒤편 도로를 무작정 걸어가면서 인파에 휩쓸렸다.
사건 직후에 아들, 딸, 며느리에게 소식을 알렸더니 “엄마, 괜찮으세요?” “모시러 갈까요?” 번갈아 연락이 온다. 이왕 나왔으니 상황을 더 보기로 했다. 어찌 됐든 귀가는 하겠지.
경찰의 출입통제 테이프 때문에 길이 막혔다. 다행히 지하철로 욕밀에 도착하니 6시다. 정신이 없다. GO BUS 는 운행이 안 된다고 해 7시 남편의 퇴근에 맞춰 불렀다. TV를 켜니 오늘의 사고현장들이 나온다. 마음이 착잡하다. 25세 청년의 무자비한 광란 질주 때문이라니.
70평생 무사안일 했는데 오늘은 너무 착잡하다. 조용했던 토론토의 중심가인 영길에서 무슨 난리통이란 말인가. 난 생생한 목격자였다. 한국인 3명의 사망자. 어이없는 죽음. 꽃다운 나이의 K선생은 가족을 떠나와 얼마나 고생을 하다가. 만약에 우리 일행도 길거리를 나와 걷고 있었더라면, 아찔한 생각이 자꾸 든다. 시간이 엇갈린 것뿐이다.
주님, 갑작스런 슬픔을 접한 유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세요. 명복을 빕니다. 신문과 TV에선 계속 소식들을 알린다.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고,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 하얀색 밴과 범인을 잡아서 수갑을 채우던 경찰. 수많은 피해자를 내고 생명까지 뺏어간 너의 죗값이 꼭 치러지길 바란다.
광란의 질주 80km 이상으로 인도의 행인을 무차별 치고 죽이고 너무 잔인한 너의 행동에 하늘은 꼭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손이 떨린다. 너도 부모형제가 있으면서 감히 그렇게.
꽃집에서 대량의 꽃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시청에서 제공한 게시판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어 가슴을 울린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카톡에서 소식들이 빗발친다. 난 그날의 참극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나. 소라 양의 하얀색 양말과 발을 잊을 수가 없다. 비통하고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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