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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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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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실세,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요 4:1-8)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팔레스타인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었고, 유대는 제일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사마리아가 끼어 있었다. 따라서 남과 북을 왕래하는 데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을 극도로 증오하였던 유대인들은 그 직선통로를 피해 두 배나 먼 길을 돌아서 유대와 갈릴리를 다니곤 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에 이 같은 적대감정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22년부터였다. 그때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바벨론을 비롯한 여러 지역 주민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키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과 통혼하게 되었다(왕하 17:1-20).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 간주했기에 그때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여 그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는 사마리아를 통해서 갈릴리로 가겠다.”(I have to go through Samaria.)는 확고한 의지를 밝히셨다. 사람들이 볼 때 이 같은 예수님의 결정은 현명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일거일동을 주시하는 유대 지도자들이 유대인 출입금지구역인 사마리아로 들어가는 예수님에게 어떤 모함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사마리아로 들어가서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자 동행하던 제자들에게 마을로 들어가 음식을 사오라 분부하시고, 그곳 우물가에 앉으셨다. 이때 한 여인이 예수께서 쉬고 계시는 우물가로 다가 왔다.

이 여인은 수가성에 살고 있었으며,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사회에는 여자는 어떤 경우에도 세 번 이상 재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와 상대하기를 몹시 꺼렸다.

아침에 우물에 나와 다른 아낙네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쬐는 정오에 홀로 물동이를 이고 왔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피하는 사마리아로 예수께서 들어서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여행이 금지된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결단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쉬고 계신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 곳에 도달하시자 먹을 것을 사오라며 제자들을 모두 동네로 들여보냈다.

그 여자가 동네 아낙네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점심시간에 거기 올 것을 아셨기에 제자들을 모두 심부름 보내고 홀로 그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그녀가 만난 것은 예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우물에 도달한 여인은 거기 유대인 남자가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춤했지만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서 머뭇거리면서 물을 깃기 시작한다. 그때 예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 한 그릇을 청하신다. 여인은 놀랐다. 사마리아인을 업신여기는 유대인이, 그것도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당신은 유대인 남자로서 어째서 저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라 묻는다. 여인이 당황해 하며 한 이 질문이야말로 예수께서 기대하던 바였다.

예수님은 수가성에 오시기 전 유대인 율법학자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 이제 니고데모와 달리 불학무지하며 부도덕한 인생을 사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기 위하여 물을 달라 하신 것은 그녀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대화의 문이 열리자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하신다. 그녀는 그릇도 없이 30미터나 되는 깊은 우물에서 어떻게 생수를 떠서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여인은 니고데모가 “거듭남”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가 “영원한 생명의 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나는 네게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를 주겠다.”고 하시자 그녀는 유대인 남자에게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그 물을 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린다.

그러자 예수님은 갑자기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신다. 언뜻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적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당한 위험부담까지 내포된 말씀이었다.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여자가 대화를 중단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도 컸던지 그녀는 물동이를 이고 돌아서는 대신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 실토한다.

그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그녀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며, 현재의 남자도 정식 남편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거나 위축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자신의 참된 신분을 밝히시기 위함 이었다.

부끄러운 자기의 과거를 낱낱이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녀는 예수님을 평범한 유대인 남자 아닌 “선지자”로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그녀는 예수님께 예루살렘과 그리심 산 중 어디서 예배 드리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다.

예배에 관하여 수백 년 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 예배가 참된 것이라고 주장해오고 있었다.

이 같은 그들의 심각한 갈등에 관한 예수님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진정한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예수님의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만이 하늘에 상달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 자를 찾고 계시며, 그런 예배를 드릴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이 명백해 질 것이라 말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네가 말하는 메시아다.”라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녀의 조상들이 믿었던 그리심 산에서의 예배만이 신령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동시에 이 귀한 진리를 배운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유대인 남자” 아닌 “선지자”로, 더 나아가서 “메시아”로 알아보는 데까지 믿음이 성장한다.

이처럼 그녀의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 하나하나는 예수께서 저술하신 “전도 교과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금기로 여기던 사마리아를 통해 갈릴리로 가시다 “유대인 접근금지” 푯말이 박혀있는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녀와 만나 당시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주제인 마실 물로 대화의 문을 여시고 그녀가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그 자신이 곧 그리스도요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전도란 전도대상이 처해있는 상황에 가장 적절한 방법과 방식을 택하여 복음의 씨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통해서다.

이 원칙을 가장 잘 배우고 실천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전도자가 사도 바울이었다. 3차에 걸친 바울의 선교여행을 살펴보면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지적 수준 그리고 그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거기 맞추어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을 전파하며(고후 4:5),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이다.(행 20:24)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죄악의 삶을 살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가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는 순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 들어가 외친다. “모두들 나와서 나의 어두운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분을 만나보세요.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녀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달려가 그를 둘러싼다. 예수께서 그들의 요청에 의해 이틀을 거기 머물며 천국의 진리를 들려주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하여 전도의 기본원칙과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이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며 그 여인을 만난 것은 구원은 유대인들이 확신하고 있었듯이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하 만민을 위한 것임을 예수님 자신이 직접 선포하셨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수가성에서 단 이틀을 지내시며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는데도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유대와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3년간이나 숱한 권능을 행하시며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것이다. 구원 받을 믿음을 가진 것처럼 큰 축복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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