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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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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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려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스스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1-4)

 

구약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을 포도나무 또는 포도원에 비교하고 있다.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사 5:7)이라 했고, 예레미야는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다.”(렘 2:21)고 했으며, 아삽은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급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시 80:8)라 들려주고 있다.

모두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급에서 건져내어 심으신 하나님의 포도나무임을 증언하는 말씀들이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포도나무를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받아드렸다.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던 동전에 포도나무를 새겨 넣었으며, 성전입구 벽에 금으로 조각된 포도나무를 붙이고 그 나무에 금으로 만든 포도송이를 만들어 달아 놓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예수께서 포도나무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참 포도나무다.”라 하신 것은 유대인들에게 그가 누구신가를 밝히심과 동시에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준엄한 꾸지람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의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학정에서 건져내어 기름진 땅 가나안으로 옮겨 심으시고, 그들이 그곳에서 열매 맺으며 풍성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마련해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데 실패했다. 정의 아닌 불의를 행했으며, 고아와 과부와 이방민족을 학대함으로 의의 열매 아닌 악의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셨는데 그들은 신 포도를 맺었으며, 그들에게서 정의와 공의를 바랐는데 그들의 포악으로 인한 울부짖는 소리만이 들려왔던 것이다.(사 5:1-7) 그 때문에 하나님은 나는 너를 순종의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째서 나를 대적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형편없는 가지가 되었느냐고 한탄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그가 참 포도나무라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달고 맛있는 포도를 맺어야 할 포도나무에서 잡목 같은 신포도 나무로 변해버렸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맺지 못한 열매를 맺을 참 포도나무인 그의 가지가 되어 크고 단 포도를 생산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참 포도나무지만 포도원을 가꾸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라 말씀하신 후 그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하나님께서 모두 잘라내시고, 열매가 달린 가지는 더 많은 열매가 달릴 수 있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신다고 들려주신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수확할 목적으로 심는 나무다. 따라서 포도원을 가꾸는 사람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쳐내고, 열매가 달리는 가지들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릴 수 있도록 손질해 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들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구원받은 자들로서 맺어야 할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잘려서 버려지는 포도나무 가지 같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용하셔서 그가 창조하신 세상만물을 완전한 질서와 조화 속에 관리하시며 역사를 그의 계획대로 운영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걸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그의 형상을 닮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러시아의 귀족 출신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같은 인생의 목적을 보잘것없는 한 농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현인들을 만나러 다니던 중 그는 가난에 찌든 한 늙은 농부를 만나 이야기 하는 중 삶의 목표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란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하나님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유혹은 너무도 달콤하고 강하지만 그것을 물리칠 인간의 능력과 의지는 작고도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포도가 달릴 수 없는 가지는 잘라내고, 포도가 달리는 가지에는 더 많이 달릴 수 있도록 손질하시듯 우리들에게서 그가 원하시는 열매를 딸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주시며,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원하시는 열매를 맺으려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상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게로 오라.” 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나를 따르라.”하셨다.

그에게 다가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은 “내 안에 거하라.”였다. 예수께서 그를 따르도록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우리로 하여금 그의 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품이 곧 믿는 자의 거처인 것이다. 거기 거해야만 포도나무에 든든히 붙어있는 가지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리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인간생존의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문제로부터 해방된다. 예수님은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시며(마 6:25), 그들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주신다.(빌 4:19) 예수님은 그를 찾은 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주실 뿐 아니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능력과 지혜를 부여해 주신다.

이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낮에는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에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밤에는 예수께서 문이신 우리에 들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잠드는 양들처럼 안락하고 평화롭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가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같은 축복은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괴로운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인내가 주어지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인생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합당한 기도만을 들어주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 주신다고 하신 것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요 16:23) 후에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요1 5:14)

기도하며 예수님과 멍에를 함께 메는 이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리시려 그의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나타났고(요1 4:9),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롬 5:8).

따라서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님의 가지인 믿는 자들은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요1 4:20-21),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자격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 맺어야 할 열매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 중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나머지 여덟 가지 열매들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고린도 전서 13장의 결론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인 것도 믿는 자가 맺어야 할 열매 중의 열매는 “사랑”임을 말해준다.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요 15:13)이라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셨다.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 길은 우리의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완전하고 든든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절반쯤 꺾어진 상태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포도를 맺지 못한다. 슬프게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주일에는 교인이 되고, 주중에는 세속인이 되어 사는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등록교인이 되어 주일 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이 열매 맺는 성도의 삶은 아니다. 위기에 처하면 예수님을 찾고, 환란이나 역경이 몰려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예수님을 밀어내는 이들은 잎만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이 될 수밖에 없다.

미지근한 태도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 의지하고, 인생 전부를 주께 맡기는 이들과 예수님은 동행하시며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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