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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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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앨리스 먼로의 두 얼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제발, 이 편지를 읽기 전에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혼자 읽어주세요~~~.

나는 16년 간 공포에 치를 떨게 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왔답니다. 내가 아홉 살 때 의붓아버지, ‘게리’가 저를 성추행을 하였습니다. 나는 25살 되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저를 잘못했다고 할 것 같아 두려워했답니다."

 

"Dear Mom”! Please find a spot alone before you read this~~~~I have been keeping a terrible secret for 16 years,Gerry abused me sexually  when I was nine years old.

I have been afraid all my life that you would blame me for what happened.”

 

지난 5월13일 9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엘리스 먼로’는 단편소설 작가로서는 세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인이다. 캐나다인으로서는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먼로는 최근, 그녀의 친딸인 ‘안드리아 로빈 스키너’의 폭로로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 딸이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추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이를 무시하고 모른 척하며 그와 결혼 생활을 이어 갔다는 것이다.  

 

지난 7일(일) ‘토론토 스타’에 따르면, 친아버지와 살던 '안드리아'는 그녀가 9살이던 1976년 여름 온타리오의 "크린톤(Clinton)에 있는 친어머니 앨리스 먼로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 당시 친어머니 엘리스는 40대였고, 의붓아버지 '프램린'은 50대였다. 어느 날 밤 '엘리스 먼로'와 같이 살던 의붓아버지 "게리 프램린"은 그녀가 자고 있던 침대로 올라와 성적 폭행(sexually assaulted)을 했다. '안드리아 스키너'는 원래 살고 있던 집인 BC 빅토리아에 돌아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했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앨리스 먼로'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 후에도 안드리아는 의붓아버지 프램린과 몇 번 더 만나게 되며, 프램린은 그녀와 차를 타고 갈 때 성기를 노출하기도 하고, 어머니 먼로와의 성생활을 얘기 하는가 하면, 그가 좋아하는 이웃집 어린 여자 아이들에 대해서 말했다고 주장하였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이상 성욕자"(pedophile)인 계부 프렘린의 성추행 피해자인 안드리아 스키너는 그 후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반면, 어머니 먼로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그 당시 먼로는 그녀의 한 단편소설에서 의붓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후 자살한 여성의 스토리를 그리기도 했다. 그때 25세였던 안드리아 스키너는 작심을 하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의붓아버지의 비행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 먼로는 딸 안드리아를 이해하고 가엽게 여기기는커녕, 그녀가 마치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싸늘하게 대하였다고 한다.

 

2004년 어머니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의붓아버지 게리 프램린을 "용감한 인물"이라고 묘사한 것을 보고 딸은 의붓아버지를 경찰에 고소했다.

다음은 ‘토론토 스타’ 기자와 그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은퇴한 OPP 경찰관 "샘 라자레비치"(Sam Lazarevich)와의 7월12자 인터뷰기사 발췌 내용이다.

 

2004년 말 경, 성범죄 담당 형사 '샘 라자레비치'는 앨리스 먼로의 딸인 안드리아 스키너의 의붓아버지인 게리 프렘린의 성 추행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피고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당시 80세인 고소인의 의붓아버지 프렘린은 막상 아무 말도 없었는데 피고인의 부인이며 고소인의 어머니인 엘리스 먼로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내 딸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면서 피해자인 딸보다 남편을 더 두둔하였다고 회상하였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은 하나 9살짜리의 의붓딸인 안드리아가 먼저 유혹하였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터무니 없는 변명을 했다.

 

2005년 2월21일, 의붓아버지 프렘린의 의붓딸 성추행 사건은 재판에 회부되고 그는 2년간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그후, 전직 지질학자 게리 프렘린은 2013년 X같이 살다간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거의 50여 년 전, 9살짜리 어린 여자아이 안드리아 스키너는 그녀보다 1살 위인 이복오빠 "앤두류 세비스톤"(Andrew sabiston)에게 처음으로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때 10살이었던 이복오빠는 안드리아의 계모 즉 그의 친엄마에게 알리라고 권고를 하며 그녀는 계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계모는 친부에게 알리나 친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은 이 사실을 비밀로 붙이기를 원하였고 가족들 모두에게 함구하기를 권고하였다 그 비밀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반세기에 걸쳐 감추어져야만 하였다. 

 

예술과 예술가의 삶은 일치하여만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문학을 다루는 작가는 자신이 저작한 작품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쓴 작품의 의도나 방향이 그들의 삶과 백 퍼센트 같을 수야 없겠지만, 피해자가 있는 경우 더욱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먼로의 경우 피해자는 당시 9살 밖에 안 된 자신이 낳은 여자아이다. 어머니로써 어린 여자아이가 겪을 고통에 대해 무심한 어머니가 쓴 작품, 특히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은 그 창조의 신빙성을 잃게 된다.

먼로의 모든 명성과 그녀의 저작들은 재평가 되어야 마땅하다.

 

2024년 7월14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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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6대3의 미국 대법원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한 대승리다. 미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BIG WIN FOR OUR CONSTITUTION AND DEMOCRACY. PROUD TO BE AN AMERICAN.” -Donald Trump-

 

2020년 9월28일, 성차별을 없애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87세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대법관이 된 후 27년간 미국사회의 여성인권과 양성평등, 그리고 장애인, 환경문제 등 시민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던 진보진영의 기수였다.

 

긴즈버그가 현역으로 재임할 때까지만 해도 미국대법원의 정치 지형은 보수 5명과 진보 4명으로 이루어 졌었다. 하지만 그녀가 2020년 숨지면서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 하나를 보수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현 대법관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지형도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현재는 대법관 9명 중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이 3명이 되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희미한 보수에서 견고한 보수로 운영될 것이라며,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그 결과를 예상 하였다.

 

미국의 대법관은 종신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은퇴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올해 76세인 대법원장 ‘존 토마스’의 경우 40대였던 1991년부터 33년째 대법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어쩌다 자리가 비는 경우, 후임자를 뽑을 때는 현직 대통령이 지명하게 된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숨진 2020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강경 우파인 도널드 트럼프였다. 당연히 빈 자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보수 성향의 대법관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7월1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그가 한 행위는 "포괄적 면책 대상"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신청 사건에 대해, 대통령의 재임 중 행위 면책을 폭 넓게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공식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갖지만 비공식 행위에 대해선 면책특권이 없다고 밝히면서, 형사 기소가 대통령의 결정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적 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면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같은 대법원의 결정이 있은 뒤,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아메리카 합중국은 왕이 없다는 원칙 위에 세워 졌다"며 "우리는 모두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이는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방 대법원의 결정으로 이와 같은 원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 하는 왕이 될 수 있게 되었다"고 성토 하였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지난 1일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를 폭넓게 면책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X’에 모두 대문자로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 승리!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하는 코멘트를 하였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로 기소되자 "대통령 재임 중 행위는 포괄적 면책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시 행위는 범죄이며, 면책 특권이 없다는 지난 2월 연방 항소법원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 논쟁적인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재판에서 잇따라 6대3의 보수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다. 정치 성향을 따져보면 대법관 9명 중에 보수성향 대법관 수가 6명이라,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재판의 결과가 그려지고 있다. 흡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보이니 아예 대법원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행위에 대한 면책특권을 폭 넓게 인정한 지난 7월1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대 표결을 한 3명 중 한명인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 마요르’ 대법관은 이와 같은 6:3의 근시안적인 결정은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조롱하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에 따르면 대통령이 '네이비 실' 팀 6에 정적을 죽이라고 명령을 해도, 정권을 탈취 하기 위해 쿠데타를 준비하여도 그리고 사면을 해주고 뇌물을 받아도 그와 같은 모든 범법 행위가 법적으로 면책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He now will be insulated from criminal prosecution. Orders the Navy’s Seal Team 6 to assassinate a political rival.~~~Immune! Immune! Immune!)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민중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주정치를 하는 국가라는 의미의 공화국은 군주국이나 귀족국에 상대되는 말로서 248년 전 미국의 애국자들은 당시 세계 최대의 강국이었던 영국의 군주국으로부터 "민주주의 입헌공화국"을 건립하기 위해 독립전쟁에 돌입하였다.  

 

미국 독립전쟁은 1775년 4월19일부터 1783년 9월3일까지 8년 이상에 걸친 참혹한 전쟁이었고, 그 토반 위에 미 합중국은 건국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전에 미국의 선조들이 왜? 독립전쟁을 하며 피를 흘려야만 하였는지 역사 공부부터 다시 해야 되겠다.

법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미국인은 법 위에 있는 왕이 아니라 법 앞에 평등한 대통령을 선호하여야 한다.

 

2024년 7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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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2024-07-04
천주교의 우파 논란

 

캐나다연합교회는 1988년 32회 총회에서, LGBTQ 교인들을 회원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그들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32회 총회를 앞둔 1988년 초, 평신도 3만 2천명, 목회자 1,022명으로 구성된 그와 같은 움직임을 염려하여 결성된 "우려하는 모임”(Community of Concern)은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총회 개최 직전 발표한 설문 조사에는 총회원 28%만이 동성애자 목회 허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교인들이 독실한 “LGBTQ” 교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경청한 후 마음을 바꾸게 된다. 캐나다 사회에서도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 하던 때, 캐나다연합교회는 “LGBTQ” 교인들을 인정하며 받아 들이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1988년과 1989년을 거치면서 연합교회는 교인수가 급감하게 된다.

 

그 당시 우리부부는 연합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한 교회가 허물어 지는 것을 보았다. 매 주일 눈에 띄게 줄어드는 동료교인들을 바라보며 한 원로 지인이 '만약에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자조 섞인 표정으로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후 우리부부는 가톨릭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역사적으로 점화된 것은 1517년 10월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짝에 붙인 95개조의 면죄부의 시비에 관한 토론의 제기로써 시작된다. 루터는 처음부터 교황권이나 교회의 권위와 위신에 대하여 정면 도전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인간적인 법과 인간의 행위에 대한 반발로서 그의 양심상 풀리지 않는 점들을 들어 공개 토론할 것을 시도 하였었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의 깊은 전통적 정신으로 돌아가려던 루터의 순수성은 본의 아니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당시 교회 안에 만연해 있던 부패와 병폐를 시정하려 하였던 루터를 인정할 수 없었던 교황청은 그를 파면한다.

 

가톨릭(Catholic) 또는 천주교는 로마의 주교이자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인 교황을 주교단의 단장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단이며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단이다. 가톨릭의 기원은 기원후 1세기에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신봉하는 크리스천들이 세운 그 반석 위의 교회이다. 교황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이기에 주교단에서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보편적인 최고의 권한을 가진다. 주교단은 교황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한을 행사 하는데 교황 없이는 그 권한을 결코 행사하지 못한다. 그런데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87세)을 "악마의 머슴"이라는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독적인 언사로서 비판해온 이탈리아 출신 "카룰로 마리아 비가노"(83세) 대주교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지난 6월20일, 비가노 대주교는 소셜네트워크 “X”에 올린 그의 성명을 통해 '교황청 신앙 교리부'로부터 재판 출석을 통보받았다고 발표하였다.

2016년 비가노 대주교는 미국 주재 교황대사를 지내다가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정쟁에 휘말려 본국 송환된 경력이 있는 대주교로서, 가톨릭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성향을 비난해온 대표적 인사이다. 그는 가톨릭의 성폭력 은폐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소년을 성폭행 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신앙 교리부'는 비가노 대주교가 법정에 출두 하지 않더라도 궐석 재판을 강행할 것이라고 발표 하였으며, 그는 종파분리와 교황 정통성 부정 혐의에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성직을 박탈당하고 가톨릭에서 파문될 수도 있다.

 

교황의 칙서(Papal Bull)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교황의 증서 내지는 선언서를 이른 말이다. 이 칙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55년 포르투칼인들이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침범하여 획득한 보물과 나포한 노예들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칙서를 발표함으로서 시작된다. 그후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한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의견이 대립 되면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때의 교황칙서 내용은 "기독교인은 크리스천이 아닌 비 기독교인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후,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교황칙서를 빌미로 새로 차지한 땅을 차지하고 지배 했을 뿐만 아니라, 피 비린내 나는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 교황의 칙서는 이후 등장한 유럽 식민제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며 잔혹한 학살행위를 하는 도화선이 됐다. 남미대륙에서 배출한 사상 첫 교황인 프란시스코 교황은 작년 캐나다 방문 시 과거 아메리카 식민시대 복음 전파 미명아래 저지른 악행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후 교황은 악행이 뿌린 씨앗의 결실로서 쓰여진 교황의 칙서의 폐지를 선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후 현재 시대상을 반영한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여 왔으며, 그 개혁안의 요점은 사회적 약자에 더 포용적이고 평신도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두고 있다. 그러나 교황의 이 같은 진보적 성향의 개혁 움직임은 가톨릭내의 보수 진영과의 끊임없는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에 실시된 “Pew Research”의 미국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미국 가톨릭의 75%이상의 천주교인들은 프란시스교황의 이런 방향의 진보적 개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연애가 죄가 아니라 이들을 저주하는 것이 죄라고 말한다. 법률적으로도 죄가 되면 안되고 종교적으로도 죄가 되면 안되고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To condemn someone like this is a sin,he said. Criminalizing People With homosexual tendencies is an injustice.)

혼인성사는 한쌍의 남녀가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자유로이 계약을 맺고 결합하여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성사이다. 따라서 혼인은 사랑하는 남녀가 자라온 가정과 부모를 떠나 보금자리를 이르는 신성하고 중요한 일이다. 당연히 천주교에서는 동성연애를 죄악시 한다.  내 자신도 동성간의 결혼은 찬성하지 않으며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것에 동조하지만, 그럴지라도 동성연애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할 수는 없다.

 

2024년 6월30일.

 

참고:LGBTQ는 'lesbian,gay,bisexal,transgender,queer'의 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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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3천 년 된, 끝없는 이야기

 

삼손: 아버지, 어머니, 제가 탐나로 내려 갔다가 한 어여쁜 블레셋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삼손의 부모: 이스라엘에도 너와 결혼할 여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너는 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우기냐? 블레셋 사람들은 할례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삼손: 그 여자를 데려다 주세요! 저는 꼭 그 여자와 결혼하여야 되겠어요.

 

구약성서 "판관기"에 있는 이야기다. 성경에서 '블레셋'이란 단어가 250번 나온다고 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다의 사람들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기원은 그리스 문명의 시작점이 되는 '에게해'와 '마케네'에서 온 민족들이라 한다.

 

파란만장한 유대인들의 역사는 부침을 거듭하지만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유태인들의 독립왕조는 완전히 소멸한다. 독특한 종교를 지닌 유대인들은 로마가 이교 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기원후 70년과 130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대 로마제국에 비하면 보잘것없던 작은 지역인 유대지방이 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기에 이에 분노한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유대인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였던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그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그후 로마는 철저한 유태인 말살 정책을 시행하여 유대인 다수는 몰살당하고 살아 남은 유태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길고 긴 유랑의 생활로 들어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블레셋 사람이 살고 있던 지역은 점령하지 못하였다. 블레셋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 왕국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성경의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어떤 혈통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아랍민족들이기 때문이다. 주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서기 7세기경, '마호멧'이 전파한 이슬람교의 신앙 아래 통일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후 세력이 확장되어 중동전역과 스페인까지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도 아랍인의 영향권 아래 있게 되며 그후 계속해서 이곳은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간 에집트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모세에 의하여 그곳에서 탈출(Exodus)하여 종살이에서 벗어나며,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에 들어갔다. 3천 년 전, 젖과 꿀이 흐른다는 신의 약속인 땅에 들어와 주변의 종족들을 물리치고 유다 왕국을 건립하였던 것처럼, 2000년 만에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와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웠다. 이에 대해 아랍인들은 일제히 반발함으로써 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지만, 오히려 수적으로 우세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6개국의 아랍 연합군은 신생국 이스라엘에게 패배했다. 그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1년 전인 1947년, 유엔에서 지정해준 영토보다 더 넓은 영토를 획득하면서 그 지역에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이후에도, 1956년, 1967년, 1973년 등 3번에 걸쳐 전쟁이 더 있었으나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아랍인들의 노력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되어 6일 만에 끝난 1967년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대, 가자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지역을 점령하며 그 지역들은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게 된다.

 

2천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고, 반면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이스라엘에게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지역에서 1200여 명을 학살하고 250여 명의 이스라엘인을 인질로 잡아간 후 그 보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민중은 3만8천여 명이다. 납치된 지 245일 만인 지난 6월8일,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에 납치되었던 인질 중 4명을 구출하였다. 구출된 이들 모두는 전쟁 발발 당일 가자지구 인근 "노바 음악 축제'에 참여했다가 납치되었던 인질이었다. 이 작전은 미국의 첩보기관이 정보를 이스라엘 측에 제공했고,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을 위해 몇 주에 걸쳐 인질이 갇힌 건물 2곳의 모형을 만들어 구출작전을 연습했다. 비록 이스라엘군이 인질 4명을 구출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 작전과정에서 어린이 64명, 여성 57명을 포함한 사망자가 274명, 부상지가 698명으로 총 사상자가 1000여 명에 육박했다. 복수가 복수를 정당화하여 과잉 복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캐나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캐네디언 권리와 자유 헌장에 의하면, "모든 인종과 윤리적 배경은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에서 함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캐나다는 다문화적인 모자이크적 문화를 지향하는 국가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심한 분열의 극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 소수인종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증오심을 품고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하는 '증오범죄'(Hate crime)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라는 집단성에 매몰되어 타자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더욱 가관인 것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야 어떻든 국가의 수반이 되어 통치자가 되면 국민의 통합에 전념하여야 되는데, 오히려 우리라는 집단성에 부화뇌동해 더욱 분열을 조장한다.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은 조상들의 고향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 또한 이 땅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에 결사 반대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3천 년된 끝없는 진행형 스토리이다. 그러나 인류 모두가 안고 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서라기 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하여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1만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중동지역이지만 그 여파는 캐나다를 비롯해 세계를 분열 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으면 다른 한쪽에선 이스라엘을 편드는 데모도 진행되고 있다. 우선, 캐나다 만이라도 문화적인 모자이크 다문화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평화 지향의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캐나다 인권헌장은 명시하고 있다.

"캐나다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Everyone in Canada is Equal)

 

2024년 6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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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
80년 후에 되새기는 교훈, 노르망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아이젠하워 장군(왼쪽)

 

 

"침공 이후, 24시간은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연합군에게나 독일군에게나 이 순간은 제일 긴 하루(The Longest Day)가 될 거야. 제일 긴 하루가"! -에르빈 롬멜-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에서(The Longest Day)]

 

1944년 6월6일 아침, 15만6,000명의 연합군이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진군을 개시했다. 이들 중 13만2,000명은 바다를 건너 상륙 하였으며 2만4,000명은 공수작전으로 강습, 투하 하였다.

 

-연합군, 육해공,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위대한 성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용맹한 동맹과 다른 전선의 전우들과 함께 독일의 군사력을 돌파하고 탄압 받고 있는 유럽시민들에 대한 나치의 폭정을 몰아내고 자유세계에서의 안보를 지켜낼 것입니다… 적들은 무자비하게 싸울 것 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1944년입니다…. 이제 전세는 역전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자유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에게 전능하신 신의 가호가 있기를!"  -드와이트 디 아이젠하워-

 

1944년 6월6일 당일 아침 프랑스로 진격하는 연합군 모든 장병에게 전달된 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명령서를 요약한 것이다.

 

연합군의 보병사단 및 기갑사단은 길이 80km 노르망디 해안 5개 구역(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침투작전을 시도하였다. 해변을 내려다보는 독일군 요새에서는 총탄이 빗발쳤고, 사상자는 절벽이 높은 오마하 해변에서 극심했다. D-day 당시의 날씨도 결코 이상적이지 못하였고 강풍으로 인해 일부 상륙선은 의도한 장소에서 동쪽으로 밀려났으며, 해안은 지뢰를 비롯해 나무말뚝, 철선 등의 장애물이 널려 있어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임무는 매우 어렵고 위험했다.

 

첫날, 전투 중 사망자는 독일군이 4,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연합군은 확인된 사망자만 4,414명을 기록했다. 연합군은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목표한 임무를 달성 하는 데 실패하였다. 상륙 첫날 서로 연결된 해변은 '주노'와 '골드' 두 장소뿐이었고, 다섯 상륙지점이 모두 연결된 것은 6일 후인 6월 12일이었다.

 

 

#사라져가는 노르망디의 노병들.

 

주노해변은 골드해변 동쪽과 소드해변 서쪽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서 제 3 캐나다 보병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1944년 6월6일, 디-데이 새벽 당시 19세였던 몬트리올 출신의 빌 로스(Bill Ross)는 전우들과 함께 해변가에 상륙하여 목표지점인 베르니에르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작전 개시 전의 해상 폭격과 공군의 폭격이 전투를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사전 폭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효율적이었으며, 거친 날씨 또한 상륙작전의 장애물로 작용하여 선발대의 진격은 07:35분까지 지연된다. 빌 로스가 소속되어 있는 상륙부대는 독일 제716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많은 전우들이 전사하며,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고 밟으며 돌진했다. 밤 9시가 되어 해가 떨어져 참호를 파고 지친 몸을 쉬게 되었을 때, 그가 소속되어 있는 보병사단은 어느 연합군 부대들의 디-데이 목표보다 더 큰 진군의 성과를 얻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2016년 91세로 노병 빌 로스는 이 세상을 하직하였으나, 80년 전 그의 전우들이 진군했던, 피로 얼룩졌던 12 킬로미터의 길을 회상하며, 또 기억하기 위해 현지의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노병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102세인 미국인 2차대전 참전 용사인 로버트 페르시치티 씨가 노르망디에서 열린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로 가는 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노병 페르시치티 씨는 장거리 여행의 위험을 감수하고 유럽을 찾았다가 중간 기착지의 노르망디로 가는 선박 안에서 응급 의료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항공편을 통해 독일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하였다 한다.

 

올해 100세로, 20세 때 캐나다공군 정찰기 조종사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노병 리차드 로멀(Richard Rohmer)은 디-데이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1944년 당시만 해도 히틀러 치하의 나치군대는 조직이 잘 되어 있는 군대였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을 때였다. “만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더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독일의 나치와 유사한 권위주의 정권이 활개치는 판도로 변모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번 방문이 매 10년마다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0년 전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흘린 전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염원은, 100세 노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로 향하게 하였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지 10여 년 후 1930년대 초, 유럽은 새로운 권위주의(Authoritarian) 정권의 출현을 목격하게 된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이태리의 무솔리니 그리고 제3 제국(The Third Reich)이라 불렸던 독일 히틀러의 나치(Nazi)정권이다. 나치독일은 정부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세계는 민주주의 체제인 연합국과 권위주의 정권인 전체주의 국가와의 격돌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이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인 나치 독일의 예봉을 꺾은 것이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그 후 11년이 지난 1945년 5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멸망하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그간 세계는 놀랄 만한 변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역사의 시계추를 돌려 놓았던 역사의 주역들인, 참전용사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참전용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노병은 죽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견한 최대의 정치 시스템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해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젊은 나이의 병사들과 그들의 전우였던 노병들을!

 

2024년 6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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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6
창조 되어야 할 신화와 경계 하여야 할 신화, 모범적인 소수인종(Model Minority).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의 지원 아래 기독교 단체들이 설립하고 운영했다. 대략 130개의 기숙사학교가 있었다. 수용대상은 원주민 아이들로 한정되었고, 어린아이들은 6-7세경부터 시작하여 17세-18세까지 약 10년 간 강제로 기숙사에 머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콜롬버스가 인디언이라고 명명(命名)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였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야만족(Savage)인 원주민 아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문명화 시킨다는 미명 아래 아이들은 강제로 부모와 결별하게 했으며, 기숙사에 억류되어 있는 기간, 원주민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들만의 문화적 전통에 참여 하는 것이 절대 금지되었다.

 

솔 마마카와(Sol Mamakwa)는 원주민 출신 NDP소속 온타리오 주의원이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부모, 가족과 떨어져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10여 년을 보냈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던 기숙사학교의 선생들은 학생들이 그들의 고유언어를 말하다 발각되면, 금지된 야만족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하여 비눗물로 입을 씻게 하였으며, 형벌을 내렸다. 추운 겨울에는 장갑없이 문 밖으로 내쫓아 나무를 잘라 겨울 땔감을 만들게 하였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정신적, 신체적인 학대로 많은 원주민 어린아이들이 죽었고, 비밀로 매장되어, 그들은 죽어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숫자는 1만여 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신민당 소속 주의원 솔 마마카와가 발언을 할 때면, 고성과 야유가 오가는 정당간 토론 장소인 의사당 내에서도 신기할 만큼 조용해진다. 마마카와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 온타리오 주의원이다. 그는 지난 5월28일(화), 캐나다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캐나다의 공식 언어인 영어나 불어가 아닌 인디안 고유언어로 정기 질의시간에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영어와 불어로 통역되어 의사당 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인디안 토속어인 ‘오-지 그리(Oji-Cree)’로 한 발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던 언어, 그러나 금지된 언어였기 때문에 체형(體刑)까지 겪어 가며 보존하려 하였던 멸종위기의 언어는 그의 노력에 의해서 온주 의사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말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그날, 온주 의사당에는 그날이 생일인 79세의 그의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원주민 동료들이 초대되어 역사적인 순간을 의사당 발코니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원주민 출신 주의원 솔 마마카와는 현대판 신화의 창조자라 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으로 대변되는 북미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은 백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모범적으로 잘 따르고 있다는 칭찬처럼 쓰여지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라는 신용어가 있다. 이 용어의 요점은 아시아계는 흑인이나 라틴아메리카계 등 타 이민족과 달리 준법정신에 투철하고 근면 성실함으로써 성공한 이민자로 통하는 만큼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보는 인식이 비교적 적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일부 백인들이 자행하는 인종적인 차별대우를 정당화하기 위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라, 저 동양사람들을! 저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배우며, 일하니 잘살지 않느냐!"

 

마치, 흑인들이나 타민족이 비교적 빈곤한 것을, 게으르고 열심히 일하지 않은 그들의 잘못인 것처럼 간주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밤중에 습격을 받아 노예로 잡혀와 피와 땀을 흘려 백인들의 주류사회인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것에 큰 공헌을 한 흑인들에겐 억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씨네 컨비니언스’(Kim”s Convenience)는 캐나다의 시트콤(Situation Comedy)으로 캐나다 이민 2세 '최인수'씨의 연극 ‘김씨네 편의점’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CBC 텔레비전에서 2016년 10월11일부터 2021년 4월13일까지 방영된 히트작이다. 1974년 캐나다에 이민 와 우리 부부의 생존의 수단이었던 편의점이 주제가 되어 인기 시트콤으로 각광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를 상상해 보며 그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시트콤'에는 1970년대에 갓난 아이와 함께, 하루 14시간, 일년 365일을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전혀 컨비니언스하게 지낼 수 없었던 이민 초기의 우리 부부와 유사한 절실한 경험담은 설 자리가 없었다. 백인들의 관점에서 본 성공한 이민 케이스인 '모델 마이너리티'가 되어 있는 "김씨네 편의점"만 있을 뿐이었다. 

 

온타리오주 덕 포드 총리는 지난 5월25일(토) 아침 5시 노스욕 유대교 '퍼블릭 스쿨(Bais Chaya Mushka Elementary School)에 두 명의 괴한이 쏜 총알 흔적이 발견된 데 대해 이민자들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지적하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캐나다는 다문화 모자이크 사회다. 엄격히 말해 캐나다는 원주민 외에는 모두가 이민자가 되어 설립한 국가이다. 포드 수상 또한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가 말하는 이민자는 과연 누구를 뜻하는 것인가? 그 후, 누구보다도 이민을 장려하는 정치인이 포드 총리 자신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포드 수상의 이와 같은 이민자의 인식은 인종차별 주의자(Racist)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눈에 뚜렷이 보이지 않는 아시아계의 독특함은 표면상으로는 인종갈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민 1세대의 경우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점도 있지만 2세대에 들어 서면서 전문직 등 비교적 잘 적응하여 흑인들이나 타 인종에 비해 연봉을 더 받는 것은 사실 일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계 및 아시아 인들도 경제적으로 부유 하지 못할 수 있고, 학생들 또한 학업에도 부진할 수 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모범적인 이민 신화의 뒤안길에는 극복 되어야 할 특정 계급이나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이 숨어 있다. 그러한 편견에 자화자찬하여 안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계하여 인종의 우열을 가려 등급을 매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2024년 5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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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잊혀져 가는 전쟁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이상 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전선 돈바스(Donbas)지역에 주력하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하르키우(Kharkiv)주의 하르키우시를 향해 진격을 해오고 있다.(하르키우시는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이자 하르키우주의 주도다.)

 

지난 5월13일, 우크라이나 동북부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러시아군은 진격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의 '하루키우주' 9개 마을을 차례로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공세를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무기지원이 늦어지는 틈을 이용해 동북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에게 속수무책 밀리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레산드로 시루시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000KM에 걸친 전선에 얇게 배치했던 병력을 다시 빼내 북동부 하루키우로 지원을 보내는 등 최전방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기지원이 빨리 오지 않으면 현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우리는 매우 힘든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가장 용맹한 군인들과 대통령이 있다 할지라도 현대 전쟁은, 자금이 없어 무기가 바닥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몇 달 간의 지연 끝에 미국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지난 4월20일, 61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추가 예산안이 가결되었다. 미 하원에서 통과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상원의 승인을 거쳐 4월24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함으로써 법안으로서 그 효력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4월29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방분야 지원을 위한 1,000억(약 148조 원) 규모의 특별기금 설치 계획을 전달하였으며, "이제 우리의 책임은 이 같은 발표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무기 탄약 등이 우크라이나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러시아는 1945년 5월9일을 모스크바 시간으로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에 무조건 항복한 날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인 5월8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러시아와의 차이를 두고 있다. 지난 5월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에 올린 동영상에서 80여 년 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즘을 쳐부수기 위해 피를 흘렸고, 지금 우리들은 다시 악에 맞서고 있는데, 이 악은 '러시아 파시즘'이라며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여 비난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의 촬영 장소는 2년전 러시아군이 아이들을 포함한 약 350여명의 주민을 감금한 체르니우치 마을에 있는 지하실이라고 설명한 뒤, 빛이나 식량, 물도 없는 지하실에 갇힌 그들을 상상하면 푸틴의 러시아가 어떤 악의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불어 세계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반 푸틴 연합"으로 뭉치게 되면 "모스크바의 나치스"를 저지할 수 있고 새로운 악이 유럽 전체를 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결속을 호소하였다.

1952년 5월, 마크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쟁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던 당시의 미군 수뇌부의 분위기는 승리보다는 패하지 않는 전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던 시기였다. 클라크 장군은 자신이 미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는 휴전협정에 서명하면서도 승리 없는 휴전에 서명한 첫 미군 사령관으로서 휴전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생각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한국군과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은 중국 인민군의 참전으로 밀리면서 쌍방이 휴전선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 되고 있었다.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중공의 모택동과 같은 동맹국이면서도 은연 중 그와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스탈린은 미, 중 두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격돌함으로써, 특히 미국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기 원하였다. 치밀한 성격의 스탈린은 그렇게 함으로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 하고 싶은 복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갑자기 죽고 그가 숨진 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뀔 수 있었고, 그해 7월27일 휴전 협정이 성사된다. 그 후 소비에트 연방은 1990년 붕괴되고, 한국전쟁 휴전 71년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발판 삼아 동유럽의 지배자가 되어 대 러시아 제국을 꿈꾸게 된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우크라이나 침략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결사적인 항쟁과 서방세계의 군사지원에 밀려 예상 밖의 고전을 하게 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크라이나가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한국전쟁처럼 국토가 유실된 채 휴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트럼프가 오는 11월5일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렇게 될 확률은 아주 높다.

 

한국 동란 당시, 한국공군과 미국공군은 공산군의 기지가 있는 압록강 너머를 폭격할 수 없었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군 또한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서방국가가 제공해준 무기로는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 있는 러시아군대에는 공격을 가할 수 없다. 단, 러시아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오면 그때야 방어차원에서 서방세계가 제공해준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철저한 대리전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 인증(認證)되지만 현재에서 증명된다.

2024년 5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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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법과 정의

-누구나 살인범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편, ‘타임 투 킬’-

 

1984년, 존 그리샴이 미시시피 법대를 졸업한 후 애숭이 변호사로 있을 때였다. 그는 법원을 드나들며 법정에서만 느끼며 볼 수 있는 많은 법정 투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12세 소녀가 그녀를 강간한 남자를 상대로 법정 증언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그는 강간당한 소녀의 치욕적인 고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를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보게 되었으며 법과 정의에 대한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녀가 나의 딸이라면, 그래서 그의 딸이 공개법정에서 자신을 짐승처럼 능욕을 한 범인을 눈 앞에 두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서,그가 아버지라면 그 강간범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그가 아직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작가가 되기 전 3년 여의 변호사 일을 하며 여가시간을 이용해 그의 데뷔작 ‘타임투 킬’(A Time to kill)을 쓰게 된 동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하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주 포드군의 작은 도시에서 길을 걸어가던 10살짜리 흑인 소녀가 마약과 술에 취한 두 백인 남자에게 폭행 당한 후 강간을 당하게 된다.

 

범인들은 곧 체포되지만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고 흑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오히려 보석으로 풀려날 기미마저 보였다. 이에 분노를 참지 못한 소녀의 아버지 '칼 리'는 범인들이 구치소로 이송되는 틈을 타, 그의 딸을 유린한 두 백인을 총으로 난사하여 살해함으로써 복수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은 흑백간의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백인 브라이전스 변호사의 변호가 시작된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미시시피주 데소토 카운티에서 강간당한 12살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그 당시 존 그리샴은 재판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법정에 있었다 한다. 그는 그의 소설 '타임투 킬'을 통해 소녀의 아버지 "칼 리"로 하여금 살인범을 총으로 죽임으로써 흉악범에 대한 법의 심판이 아닌 직접적인 응징으로 범인들을 처벌한다. 잔혹한 인종차별의 폭력을 고발한 인간애가 담긴 작품으로 법과 인간의 관계와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지난 2021년 7월2일 이래, 잠복근무 중인 경찰을 죽인 1급 살인죄의 혐의를 받고 평생 감옥생활을 할 위기해 처해 있던 회계사 우마 자미엘을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게끔 배심원의 판정을 이끌어낸 배후에는 45세의 변호사 나달 하산이 있었다.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와 노르웨이 출신 어머니가 영국에서 만나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옥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미국 하버드대학, 영국 캠브리지대학을 거쳐 2006년 토론토대학 Law school을 졸업 후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주로 사회적으로 승산이 적은 사건과 힘없는 대중을 위한 범죄사건을 많이 취급하였다.)

 

 

3년 전 7월2일 자정경, 토론토시청 주차장에는 주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복 경찰관 4명이 잠복 중이었다. 그 당시, 우마 자미엘은 캐나다데이를 즐기기 위해 다운타운에 나왔다가 임신한 부인과 2살된 아들을 동반한 채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갑작스럽게 그의 차에 접근하는 두 명의 괴한을 보고 강도라고 판단한 후 차를 후진하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근무 중이던 한 명의 경찰을 차에 치여 죽게 한다. 사건 발생 후 초기 수사에서 한 명의 근무 중이던 사복형사가 사건 현장에서 죽은 후, 경찰과 검사는 이 사건에서 뚜렷한 살해의 동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검찰은 사건의 방향을 무슬림 테러리스트 그룹이나 반정부 비합적 조직으로 연결하려 했으나 그 취지 또한 어떤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검찰 측 결론은 유일한 사건 목격자인 동료 사복경찰 3명의 증언에 기대를 걸고 사건을 1급 살인죄로 기소함으로써 귀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현장 증인의 논리는 하산 변호사 팀의 "레이저 기반 촉감 재 구현기술"(Laser reconstruction)의 입증으로 위증임을 밝혀내게 된다.(당시 숨진 경찰관과 함께 잠복 근무하던 경찰 리자 포브스는 사건 현장 증인 진술에서 죽은 노스롭 경찰관이 먼저 손을 들고 경찰이라는 것을 알렸으나 범인이 이를 무시하고 그냥 돌진하여 경찰을 죽였다고 증언하였다.)

 

법정에서 증인은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한다.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중언을 하면 위증죄가 성립된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사람이 시내에서 하루를 즐기기 위해 시청 지하실에 차를 남겨 놓고 나갔다가 집에 가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그것도 아무도 없는 심야에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접근한다면 누구나 겁에 질려 빠른 시간 내에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당연히 그가 잠복 중인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였고, 그래서 내가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평생을 살인범으로 감옥에 억류된다고 상상해 보라.

 

법은 소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어야 한다.

 

살인범으로 누명을 뒤집어 쓴 회계사 우머에게 변호사 하산과 그의 동료 변호사 알렉산드라 헤인은 정의의 메신저였다.

 

법과 정의는 인권에 기반을 둔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한에서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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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56년 후, 그들이 돌아왔다

 

56년 전 1968년 4월30일, 미국 뉴욕시의 콜롬비아 대학생들은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위해 대학내의 해밀톤 홀(Hamilton Hall)을 점거했다. 경찰은 강경 진압을 통해 시위 인원 700명을 체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학생은 물론 경찰까지 포함해 총 100명 이상이 다쳤다. 미국 대학생들의 위와 같은 월남전에 반전 시위는 그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비판의식이 번지게 된다. 이에 당시 미군 파병을 결정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반면, 월남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운 공화당 후보 닉슨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1968년 사회운동은 그 당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사회분쟁으로 권위주의적 정권에 맞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인종주의를 비롯한 여러 차별들에 대한 반대 뿐만 아니라 핵이나 환경 오염, 월남 전쟁과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반대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칭해서 68혁명이라 불렀는데 미국에서는 콜롬비아대학 사태가 이 운동을 크게 확산시켰다.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확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면서 대선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요소가 되고 있다.(흡사 1968년의 유령이 되살아 온 것처럼 56년 전의 풍경과 너무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언론에 의하면 30일 밤 뉴욕경찰이 콜롬비아대 해밀톤 홀에 진입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을 체포했다고 보도하였다. 앞서 대학당국은 전날 오후 2시까지 천막 농성장을 떠나라고 통첩을 보냈지만 학생들은 투표를 통해 거부를 결의하게 된다. 이어 이튿날 새벽 일부 학생들이 해밀톤 홀에 들어가 바리케이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가자 학교 당국은 점거 학생들을 퇴학시키겠다고 위협하며 경찰에 진압 요청을 하게 된다.

 

 

해밀톤홀을 점거한 학생들은 그들이 점거한 이 건물을 ‘힌드의 홀’이라 명칭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학생들이 내건 대자보 사연은 이러하다.

‘힌드 라잡’은 팔레스타인 소녀로, 이 세상에서 보낸 햇수는 고작 6년 이었다. 지난 1월29일 힌드는 삼촌가족과 차를 타고 가자시티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녀는 이스라엘군의 총탄이 무서워 도망치려 하였으나, 그 총탄 때문에 영영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삼촌과 숙모가 먼저 죽임을 당했고 사촌언니도 죽었다. 이 몰살당한 차량에서 아직 죽지 않은 15살 라얀이 외국에 있는 친척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하였다.

“엄마 아빠는 벌써 죽었어요. 언니도 죽었고요. 저랑 힌드만 살아 있어요.” 

“걱정 하지마, 무서워 하지마, 바로 앰뷸런스를 보내줄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친척은 바로 이슬람권 적십자사에 구조를 요청했다. 라얀의 전화번호를 주고 연락하면 라얀이 받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라얀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에 이스라엘군의 탱크는 총격을 가했다. 둔탁한 총격소리와 라얀의 비명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2주 뒤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며 구조대원 2명도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다.)

전쟁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군산 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은 56년 전 1968년 콜롬비아대 상황과 여러모로 동일하다.

당시 해밀톤 홀을 점거하고 월남전 징집 반대와 이 대학의 군산 복합체(軍産複合體)와의 관계 단절을 주장하던 학생 700여 명을 경찰 1천여 명을 투입해 진압한 날도 또한 4월30일이었다. 시위 학생들이 이날 새벽 해밀톤홀을 점거한 의도의 배경도 4월30일이라는 날짜에 상징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날 밤 몇 명의 시위대가 홀에 들어간 뒤 이날 새벽에 문을 열어 많은 학생들이 대거 진입할 수 있게 하였다. NBC 방송은, 1968년 당시 같은 장소에서 데모에 참여했던 마크 나이손 역사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56년 전 당시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전하였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테러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캐나다와 미국으로 대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반유대주의(Anti-semitic)와 반 팔레스타인에 대한 어느 한 쪽의 지지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발생한 집단 살해의 윤리적인 차원에 입각한 인권(Human Right)문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만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3만5천여 명의 시민이 이미 죽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가자지역에 남아 있는 생존자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기아 선상에서 고난을 받고 있다.

한편, 몇몇 유대인 학생들은 캠퍼스 분위기가 반 유대주의적인 정치적 동기를 포함하고 있어 신변의 안전 우려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시위대는 이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부풀려 있다고 지적하며 유대인 학생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들 학생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 학살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지원하는 무기 제조산업 및 관련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기부금 투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의 학생들의 반전시위와 그때마다 요구하는 사항들은, 1960년대에도 70년, 80년대 그리고 현재, 2024년에도 옳았다. 지금은 학생들을 처벌하기 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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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나이

                       

재판관: ”자미얼 씨,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Mr. Zameer, you are free to go, sir.”) 당신이 여태까지 겪어 왔던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You have my …deepest apologies for what you have  been through".)

 

2021년 7월2일 자정께, 토론토시청 지하주차장에서 회계사 ‘Umar Zameer’는 임신한 그의 부인과 2살짜리 아들을 동반한 채 집으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체격이 크고 험상궂게 보이는 남녀 두 명이 그의 차에 접근해 오고 있었다. 깊은 밤, 음침한 지하주차장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의 차에 접근 하는 두 명의 괴한을 보고 순간적으로 강도라고 판단한 그는 방어 차원에서 후진하던 차를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대로 차를 몰아 돌진시켜 한 명을 사망케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들이 아니었고, 시청 주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수사 중이던 사복 경찰관들이었다.

 

결국, 차에 깔린 경찰관(Jeffrey Northrup)은 순직했고, 회계사 우마 자미얼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1급 살인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숨진 경찰관 '노스롭'과 파트너로 함께 근무하던 여자 경찰관 '리자 포브스'(Lisa Forbes)는 재판과정에서 차량이 다가오자 노스럽 경관이 먼저 손을 들고 저항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우마 자미얼'씨가 그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하여 경찰관 '노스럽'을 사망케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후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 두 명의 정밀조사가 있었고, 그 증언이 거짓임이 밝혀져 함께 잠복 근무하던 다른 2명의 사복 형사들과 함께 위증의 혐의를 받게 된다.

 

'방안에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데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민감한,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아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문제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다. 이 표현을 인용하면서 이 재판담당 판사 '앤 모리'가 피의자에게 명백히 드러나는 살해의 동기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을 검사 측에 설명하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인용한 관용어 영어 표현이다.

 

지난 3년 이상의 세월을 온타리오주정부 사법부의 검찰당국은 살인 범죄로 취급하기에는 살인의 동기가 불분명한 비극적인 사건을 가지고 한 사람의 죄 없는 시민을 1급 살인죄로 기소함으로써 과오를 범하게 된다. 회계사 ‘Jammer’는 죄 없는 선량한 시민의 위치에서 잠복 근무중인 평상복 형사 경찰관을 의도적으로 죽게 한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는 현행범으로 즉각 구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삭이었던 부인이 출산할 때에도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보석 청구 심사 당시에도 판사 '질 코프랜드'(Jill Copeland)는 검사의 기소의 이유가 논리적이지 않으며 살인의 동기가 불분명한 케이스를 기소를 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라 하며 보석을 허용한다. 그러나 그 보석 허용은 온주정부 포드 총리 당시 토론토시장 존 토리 그리고 브램튼 시장 패트릭 브라운 등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게 된다.

 

덕 포드: “근무 중인 경찰을 살해한 1급 살인죄를 범한 살인범이 보석되어 유치장 밖에서 활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법시스템의 정의는 희생자나 그의 가족을 범인보다 먼저 생각 해야 한다.”

존 토리(전 토론토 시장): “경찰을 살해한 1급 살인범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잘못된 일이다. 나를 구역질(disgusting)나게 만든다.”

패트릭 브라운(브램튼 시장): “1급 살해범이 보석으로 풀려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2021년 9월, 피고인의 보석신청 심리가 있었고 당시 판사 '질 코프렌드'(Jill Copeland)는 범인이 비록 잠복 중이라 하나 피해자가 경찰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뚜렷한 살인범죄의 동기가 없다고 하였을 때 검사는 이 사건을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검사 측은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비록 경찰이 근무 중 사망하였다 할지라도 검찰이 기소하기에는 살인의 동기를 사건 현장의 증거에서 찾아내기 힘든 케이스였다. 따라서, 배심원들을 납득시켜 범인을 1급 살인범으로 "판정평결"(Verdict)을 얻어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검찰은 그런 모든 정황을 무시하고 공판을 진행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잠복근무하다 순직한 베테랑 백인경찰이라는 사실(fact)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선 순직한 경찰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의리 또한 있어야 하였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범행의 동기는 자연히 풀릴 것으로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석을 담당하였던 재판관 '코프랜드'와 재판을 주재하였던 고등법원 판사 '앤 모리'의 사법의 정의에 의한 베심원들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계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코끼리가 방안에 있다"(Elephant in the room)는 비유를 현명하게 판단한 배심원들이 있었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살인 사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부와 경찰의 막강한 공권력에 대한 인권에 입각한 사법정의의 승리였다. 정부는 선량한 시민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순직한 경찰의 명복을 빈다.

 

2024년 4월27일.      

 

에필로그: 검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검사는 담당 사건이 충분한 Fact에 준하는 경우 계속 추진하나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기각시키라는 지침이 있다. 이 당연한 수순을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 또한 이와 유사한 조항이 있음에도 무시하였다. 심지어 경찰청장은 사실에 입각한 Verdict(배심원 평결)이 나온 후에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였다고 실망을 드러냈다. 이러한 태도는 공직자로선 하지 않어야 할 법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에 경찰총장, '마이론 뎀키브'는 태도를 바꿔 OPP에 경찰들의 위증(Perjury) 자체조사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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