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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주인’의 추억- 나의 이민일기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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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TV 인기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의 무대였던 토론토의 가게

 

 22년 전에 이민온 우리 가족은 당시 우리보다 수개월 먼저 도착한 큰동서네를 따라 해밀턴의 어느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유난히도 가게(편의점)를 하는 분들이 많아 만나는 사람 열명 중 여덟 아홉이 가게를 운영하거나 ‘헬퍼’ 등 어떤 형태로든 가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일예배를 마치고 함께 커피를 들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십중팔구 담뱃값이라든가 우윳값 등이 주된 화젯거리였다. 이러니 처음엔 나같은 이민초짜들은 대화에 끼여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가게가 대세인지라 나도 오자마자 동서네 가게 일을 도와주며 캐나다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엔 5센트, 10센트, 25센트 동전이 구별이 안돼 계산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설 땐 등이 온통 식은땀으로 후줄근해지곤 했다.
 

 숫자에 약한 나는 특히 물건값을 계산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 그 가게는 주유소를 함께 하고 있었는데 개스값을 다른 업소보다 약간 낮게 받기 때문에 항상 차량들이 밀려들었다. 그러니 개스값 계산하랴 초콜렛값 더하랴 정신이 없었다.        

0…그런 생활을 하는 동안 갓 이민 온 우리 아이들도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게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직업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루는 주일 교회가 끝나고 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점잖으신 어느 장로님이 다섯 살짜리 우리 막내딸에게 물으셨다. “너는 커서 캐나다에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에 딸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가게 주인요!”
 

 이 말에 우리 일동은 박장대소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린아이들 눈에도 가게야말로 돈을 많이 버는 곳으로 비쳤나 보다.
 

 집에 오는 길에 나와 아내는 입맛이 씁쓸했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됐다. 당시 한인들 절대 다수가 가게를 하고 있었기에 캐나다에 오면 누구나 가게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0…특히 그 때만 해도 가게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여유 있게 살고 있었으니 ‘가게주인’이야말로 신참 이민자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어린아이들 눈에도 그렇게 비쳤던가 보다.


 가게를 하는 분들은 교회 행사 때 기부금도 척척 잘 내고 월급쟁이처럼 쫀쫀하지도 않았다(물론 사람 나름이긴 하지만).


 부부가 번갈아가며 가게를 지킬 경우 개인시간이 없어 고달펐을 뿐이지 돈은 그런대로 만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게를 운영해 자녀들 대학교육도 시키고 번듯한 집도 장만한 분이 많았다. 그러니 가게야말로 한인들에게는 황금알로 통할 만했다. 개중에는 가게를 사고팔고 해서 큰 돈을 모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우리 부부도 가게를 하면 정말로 돈을 잘 버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서네 가게 일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부지런히 좋은 가게를 찾아 돌아다녔다. 나이아가라 인근 지역을 많이도 누비고 다녔다.


0…그런데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우리에게 맞는 가게는 나타나 주질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부부는 가게를 꾸려나갈 자신도 없었고 의지도 박약했다.


 결국 나는 학교선배의 소개를 받아 한국에서와 같은 직장생활(신문사)을 하게 됐다.


 내가 신문사에 나가게 됐다고 하자 이민선배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측은하다는 눈초리로 “이 사람아, 왜 그렇게 안일하게 살려고 그래. 이민생활에선 돈이 최고야. 직장은 조금만 다니고 어서 좋은 가게를 찾아” 라는 충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 같은 이민초년생들은 한국의 넥타이물이 덜 빠진 탓인지, 속으로 “저는 돈 벌려고 이민 온게 아닙니다. 난 그렇게 꾀죄죄하게 푼돈 벌어가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우리가 만약 그때 좋은 가게를 찾아 비즈니스를 시작했더라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경제적으로 한결 여유가 있게 되었을까. 아니면 그마저 들어먹고 더 쪼그라들었을까.   
      

0…지난 7월 5일자로 우리는 이민 22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두번 바뀌었을 그 기간에 우리 가족은  어떻게 변했는가.


 가장인 내가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기에 가정에도 큰 굴곡은 없었다. 언제나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같은 TV 프로를 보며 여행도 함께 다니니 가족간 우애는 더할나위 없이 돈독하다.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야말로 이민생활의 최고 성공이요 행복이라 여기며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 자체가 평탄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큰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해 어려운 이웃이나 동포단체를 후원하고 싶어도 마음만 앞설 뿐 행동은 잘 따라주질 못한다는 것이다.   
 

0…어쨌든, 어려서 캐나다에 온 두 딸이 특출나지는 않지만 예쁘고 착하게 자라주어 제갈길 잘 가고 있으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큰딸은 다음달 나에게 할아버지 지위를 부여해줄 예정이고 작은딸도 내년이면 제 배필과 짝을 맺을 예정이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다섯살 적 작은딸의 ‘가게주인’ 꿈은 어디로 갔을까.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