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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또 한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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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교수의 글씨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

 

 ‘처음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한국에서 같은 이름의 소주가 출시된게 2006년 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2016년 1월 작고)의 시 제목과 글씨가 소줏병의 로고로 사용됐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 중 한 분인 신 교수가 어떻게 술 이름에 자신의 글씨를 쓰도록 허용했는지 처음엔 의아했다. 당시 소주회사 관계자도 "신 교수님이 존경받는 학자이신데,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글을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제의를 들은 신 교수는 의외로 흔쾌히 '처음처럼'의 문구와 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주(大衆 酒)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허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침내 신 교수의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줏병에 찍혀 세상에 나왔다.

 

 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소주회사(당시 두산)가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치 않다"며 사양했고, 결국 회사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 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갓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의 인기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 덕에 이 소주는 시장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회사 관계자는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글씨에 담긴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0…‘처음처럼’ 소주가 내 눈에 띈 것은 수년 전 토론토의 어느 한식당에서였다. 벽에 예쁜 여자탤런트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 글귀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후로 소주를 시킬 때면 으레 ‘처음처럼’만 찾곤 했다. 지금도 이 글씨를 볼 때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때 이 글씨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경찰서장이 신 교수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書刻,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제작해 관할 파출소 등에 내걸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이 작품이 과거 시국사건에 관련된 인사의 것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당초 그 서장은 "초심을 잃지 말고 경찰의 본분을 지키자"는 의미로 신 교수의 허락을 받아 작업을 추진했다. ‘처음처럼’ 제목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으로 시작되는 시 구절이 새겨졌으며 미술에 조예 있는 한 경찰간부가 제작을 맡았다.

 

 그러나 경찰은 내부검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작품을 경찰관서에 게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 계획을 취소했다. 신 교수는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보수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신 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의 편협한 사고를 질타하는 비판여론이 이어졌다.

 

 ‘민체’ 또는 ‘유배체’로 불리는 개성 강한 서체인 ‘처음처럼’은 문장과 서예가 뛰어난 신 교수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격조높은 서예작품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0…‘처음처럼’은 곧 초심(初心)을 유지하자는 다짐이다. 매사를 처음의 자세로 대하고 겸허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엔 욕심을 내거나 서로 다투고 미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부부가 처음 만나 맺은 사랑의 맹약을 잊지 않는다면 평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

 

 첫 직장에 출근할 때의 철석같은 다짐과 각오만 끝까지 간직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도 처음 만났을 때의 굳은 결의만 유지된다면 도중에 갈라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게 생각같지 않게 뒤틀려 보이는 것은 처음의 다짐과 각오를 잊어버린 채 너무 큰 기대치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이민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가 바로 이 ‘처음처럼’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견뎌 낼 것이라며 이민봇짐을 쌀 때의 각오만 끝까지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없을 터이다.

 

 0…‘처음처럼’의 자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이민 초기의 소박했던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성에 안차고 불만투성이다. 이만하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법도 하건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마음이 늘 허기져 있다.   

 

 ‘처음처럼’ 의 참뜻만 간직하며 산다면 세상은 축복으로 가득할 것이다. 현실이 고달프다고 생각되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결심으로 돌아가 이 말을 되새기자. 세상이 훨씬 여유있게 보이지 않을까. 신영복 교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 매양 가고 오는 세월 속에 새해가 뭐 그리 대단하랴만 그래도 또 다시   다짐이란 것을 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뜻이다. 6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지만 처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자고 다짐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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