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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때리는 남자?-일상 속의 영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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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데 사위(홍콩 출신)가 날보고 “아버님, wife beater 입으셨네요. 시원하시겠어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결에 흘려 듣다가 생각하니 “뭐, 아내를 때린다고?”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아내를 어떻게 한다니. 그래서 “Excuse me?” 라고 되물었더니 사위는 내 민셔츠를 가리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딸이 “아빠, 민셔츠 입으셨다고 그러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그런 말도 있느냐고 했더니 사위는 웃으면서 영어권에서는 이 말을 흔히 쓴다는 것이다. 어라, 내 나름으로는 영어단어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는데 이 나이에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있다니.  

 

 그것도 매우 어려운 단어라면 그렇다 하겠지만 이건 아주 쉬운 단어 두개를 연결해놓은 건데 그걸 몰랐다니! 더욱이 내가 매일 집에서 걸치고 다니는 속옷을. 명색이 영문과 출신인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밥을 먹다 말고 즉각 스마트폰의 영어사전과 어원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A wife beater is a white men's tank top, like this picture(위의 사진). In North America, there exists a stereotype about men who beat their wives, and they're usually pictured wearing this type of shirt’. 즉, 예전 미국에선 아내를 때리는 백인 남성들이 꽤 있었던 모양인데 이들은 대개 소매없는 흰셔츠를 입고 그런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섬뜩한 단어가 생겼는지 어이가 없어졌다. 한국말로는 ‘남성용 흰색 민소매 티셔츠’라  하는데, 우리는 흔히 러닝셔츠 혹은 ‘난닝구’라고 부른다. ‘난닝구’는 러닝셔츠를 일본식 발음으로 만든 것인데, 그다지 우아하진 않지만 ‘난닝구’가 차라리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나는 중학교 때 처음 영어를 접한 후 갈수록 영어가 재미있고 좋아져 중.고교 시절 내내 성적도 높았고 대학도 앞뒤 볼 것 없이 영문과를 택했다. 영문과 출신 덕분에 군대에서는 장군의 부관으로 발탁돼 주로 영문서류와 미군들 의전(儀典) 업무를 보다 제대했다. 또한 기업 취직도 잘 됐고 이어 시사영어 잡지를 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영어라면 자신이 있었고 한국에서 그 정도면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고 감히 자부하기도 했다.

 

 캐나다 이민의 동기도 영어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봉급생활로는 아이들의 엄청난 영어 과외비를 댈 자신이 없었고 어줍지도 않게 외국인 불러다 몇 시간씩 회화를 배운다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았다. 평생 영어 때문에 시달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차라리 영어 쓰는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미련없이 이민봇짐을 싸들고 왔고, 캐나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나름 영어에 자신이 있던 터라 모든 정착 일을 스스로 해보겠다며 여기저기 부딪혀 가면서 호기도 부렸다.

 

0…그러나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보니 우선 일자리를 찾게 됐고, 나는 또다시 한국어 신문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영어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던 충만한 의지는 사르르 사라지고 영어실력은 갈수록 줄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직장에, 한국음식에, 한국사람에, 한인사회에, 한인성당에…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영어는 별로 쓸 필요가 없는 날이 20년째 반복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사정이 이러니 현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자면 몸이 움츠러드는게 사실이다. 일단 머리에서  단어들을 생각해 입밖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몇 단계를 거치니 자연히 말을 더듬게 된다. 오가는 차안에서는 뉴스채널을 고정시켜놓고 계속 뉴스를 들으니 시사문제에는 어느정도 통달해 있다. 그러나 가장 쉬운 일상적 대화를 나누기가 곤혹스럽다.

 

 한국에서 배운 단어들은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이어서 이곳 현지인과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색하다. 

 

 나는 그래도 영어단어만큼은 잊지 말자며 거리를 다니면서도 동네 이름과 빌딩, 가게의 간판, 차량 등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있다. 생소한 단어를 보면 꼭 의미를 찾아본다. 지금도 가족들과 거리를 지나면서 “저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고 묻곤 한다.

 

 가령, 한인들이 많이 사는 윌로우데일(Willowdale)은 버드나무가 많은 계곡이었을 것이다. 단어 뒤에 -brook, -glen, -dale, -hill, -berg  등이 붙는 동네는 개울이나 협곡, 산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어가다 보면 재미가 있다. 나름 언어감각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생소한 단어를 만나면 꼭 사전을 뒤적인다.

 

0…토론토의 어느 분은 이런 식으로 영어단어 이어가기(꼬리에 꼬리…)를 재미있게 책으로 엮어내 슈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나는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한편으로 후회도 들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언어란 일상에서 자주 써야 느는 법인데 우리네 생활에서는 굳이 영어가 필요 없는 환경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나는 생소한 단어가 나타나면 즉시 찾아 머릿속에 입력하려 노력한다. 수시로 잊어 먹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반복해서 외우려 한다. 외국어를 꾸준히 연마하면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 않는가.

 

 Wife beater 해프닝을 계기로 영어실력에 더욱 신경을 쓰자고 다짐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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