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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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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거니와 아버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그 이름을 불러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버지와  함께 다니거나 아버지 덕택에 잘 된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한편으로 “왜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속으로 원망도 했다. 지금도 부친의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계층에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나이토록 아버지라는 이름을 아예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빛바랜 사진첩들을 뒤적이다가 노랗게 색이 변한 옛날 사진들을 보노라니 새삼 눈에 띄는 장면들이 몇개 있었다. 바로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너댓 살 무렵까지인 것 같은데 너무도 새삼스러워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0…그러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아버지 생각을 안하고 살아왔을까? 아버지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마냥…” 그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옛 생각을 안했기 때문었을까.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멋진 신사숙녀였다. 아버지는 예전 구세대답지 않게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세련된 모습이었다. 언젠가 친구들과의 계모임에 참석할 때 나와 어머니를 함께 데리고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호탕하게 웃으시는 얼굴에서 쾌남아 인상을 짙게 풍긴다. 단아하신 어머니는 내 평생 보아온 모습과 똑같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해방 후 귀국하셔서도 그 일을 하셨다고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집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진단 결과 급성 복막염인데 시간이 너무 지나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 몇시간 후 아버지는 참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요즘같은 시대엔 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당시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내가 여섯살 때이니 40대 중.후반 정도 됐을 것이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만약 아버지가 조금만 더 사시어 내가 중.고등학교라도 마치는 것을 보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나의 자식들만큼은 아버지가 오래 함께 있어 좋은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0…빛바랜 앨범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두 형님과 두 누님 등 5남매 가족들의 사진도 들어 있다. 우리 형제 중에는 둘째형님이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나는 막내로 태어난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의 동정심 때문인지 형님 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내 천성이   마음이 여리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그런 가정환경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전 고향집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자니 마냥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진에 들어있는 분들 가운데 어머니와 큰형님, 큰매형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대신 코흘리개였던 조카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아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빛바랜 앨범 속에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추억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처녀시절 나의 아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국적인 미모에 겸손하고 다소곳한 언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내의 처녀시절 사진을 보면서 나는 가끔 농담을 한다. “키만 조금 더 컸더라면 나같은 사람 안 만나도 잘 나갔을텐데…”

 

0…우리들의 약혼과 결혼사진을 보니 참 새삼스럽다. 약혼식 날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서 부른 노래가 하필 ‘아침이슬’이었으니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그후 엉겁결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들 낳아 기르며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무척 새롭다.

 

 우리의 그간 생활은 크게 고생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발전한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만약 신혼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내에게 한층 더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첩에는 나의 풋풋했던 학창시절 추억들도 다소곤히 담겨있다. 꿈많고 위풍당당했던(?) 그 사진이 나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특히 고교 졸업 후 딱 1년간 체험한 사관학교 시절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대로 군문(軍門)에 머물렀다면 나는 무엇이 됐을까.  

 

 달콤한 추억과 함께 너무도 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이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져 온다. 죽마고우와 한여름날 물장구 치며 천렵을 즐기던 사진을 보니 온갖 회한이 밀려온다. 젊었던 친구의 아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0…빛바랜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현재의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 현실이 각박하고 피곤할 때는 가끔 아름답던 옛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다고 한다. 마냥 푸르고 천진했던 어린시절 고향의 추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꿈결같은 만남들을 회상하다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부드럽게 풀리고 여유도 생긴다. 추억은 바로 현실의 힘이라지 않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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