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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전부다”-이건희의 인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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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을 군사(軍師)로 영입하기 위해 관우와 장비를 대동하고 공명의 초옥을 세 번 찾아간 유비

 

(이 글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쓴 것으로 타이밍 상 별로 생동감이 없다. 어쨌든 이번 미 대선은 바이든의 당선 여부가 아니라 트럼프라는 사이코패스가 또 다시 세계를 재앙으로 몰고갈 것이냐 여부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중국 삼국시대 유비에게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군사(軍師)와 관우.장비 같은 용맹스럽고 충직한 장수들이 없었다면?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없었다면? 세종에게 황희가 없었다면?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지만 훌륭한 군주(君主) 밑에 유능한 참모나 인재가 없었다면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사(世上事)는 모두 인간으로 시작해 인간으로 끝난다. 인생 성패를 죄우하는 것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고, 조직이나 단체도 어떤 사람을 쓰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뛰어난 리더는 유능한 인재를 알아보고, 발탁된 인재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상전(上典)을 위해 충성을 다할 터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더욱 그러하다.    

 

0…숱한 공과(功過) 논란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고 이건희 회장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나는 선대로부터 부(富)를 물려받은 사람이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에 대해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본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평가를 해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살다 보니 그리 됐다. 이건희의 경우가 그렇다.        

 

“경청(傾聽)목계(木鷄)잊지 말라”

 삼성그룹 영빈관(승지원) 영접실에는 한 폭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중국 삼국시대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 번씩이나 초옥(草屋)을 찾아가는 저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2000년대 초반 고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림의 의미에 대해 “최고경영자(CEO)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인재라면 삼고초려, 아니 그 이상을 해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 특유의 ‘인재 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건희 회장도 1970년대 후반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경청(傾聽)’이라는 휘호를 받았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이병철 창업주는 아들에게 “상대방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진심과 의도를 끄집어내야만(경청) 상대방을 설득해 움직일 수 있다” “어떠한 싸움닭이 덤벼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 닭(목계·木鷄)의 초연함과 의연함은 리더의 권위를 만들어낸다”는 조언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 목계 조각품을 보며 항상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0…이건희 회장은 1987년 창업주 아버지가 타계한 뒤 회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나이 45세. 재계에선 그가 한동안 창업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세기말적 변화가 온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제2의 창업을 선포했고, 그 결과는 눈부신 업적으로 증명됐다.

 

이건희식 경영은 한마디로 ‘인재 제일’로 요약된다. 고교 때 친구들이 과묵한 그에게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고 물으면 “사람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고 했다. “천재 한명이 2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바둑 1급 10명을 모아도 1단 한 명을 이길 수 없다" 이건희가 남긴 인재사랑 어록들이다.

 

 이건희 회장은 임직원을 뽑을 때 직접 면접을 6~7시간씩 했다. 이는 선대 이병철 창업주도 비슷했다. “인성(人性)이 지력(智力)을 앞선다.” 이병철 창업주가 1957년 첫 신입사원 공개채용 때 강조한 말이다. 면접시험을 직접 챙긴 그는 될성부른 인재를 꼼꼼히 선발한 뒤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을 보냈다. 부전자전이다.

 

 다만 부자(父子)가 인재를 아끼는 마음은 같았지만 인재 양성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선대 회장은 좋은 사람을 뽑아 재교육하는 데 집중한 반면, 아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선대 회장은 숫자에 밝은 재무 전문가를 선호한 반면, 아들은 기술에 통달한 엔지니어를 높이 평가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이 소프트, 하드웨어를 다 점령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원동력도 그 나라가 세계 각국의 두뇌들이 모인 용광로이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의 천재가 한곳에 모여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두뇌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이런 삼성인지라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인터넷 태동기인 1985년 이건희 회장이 설립한 삼성SDS(삼성데이타시스템)는 ‘괴짜들의 실험실’로 불렸다. 이곳에서 한국 정보기술(IT)업계의 주역들이 대거 배출됐다. 현재 한국 IT 업계를 주름잡는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모두 이 회사 출신이다. 이들은 ‘엑스구글러’(구글 출신 창업자)처럼 삼성 SDS 출신 창업자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삼성의 지원 덕분에 독립한 기업은 날로 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를 선발할 때 성별, 학벌,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는 게 철학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성(性)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학력, 학벌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단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연후에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면 그것은 본인이 책임질 문제이지만, 성별·학력·학벌에 따라 미리 차별을 둔다면 그 사람의 숨은 능력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묻어버리는 꼴이다.”

 

 ‘사람이 전부다’. 이건희 회장이 재계와 한국사회에 던진 묵직한 이 메시지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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