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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家) 집안 내력-3대(代) 부자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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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3대(代) 총수.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한국이란 나라는 몰라도 삼성 스마트폰은 안다. 삼성은 그만큼 전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삼성처럼 칭송과 비난을 한꺼번에 받는 기업도 드물 것이다. 특히 한국 안에서 삼성만큼 (정치적) 수난을 많이 겪은 기업도 없다. 그것은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서기까지 그만큼 어두운 구석도 많았다는 얘기다.

    

 한국 현대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6년 간의 와병생활 끝에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저녁식사 후 체한 듯 답답한 가슴통증을 느껴 소화제를 복용했지만 1시간여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

 

 그는 곧바로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심장혈관을 넓혀주는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았고 그후 같은 병원 20층 VIP 병실에서 지금까지 치료를 받아왔다. 그동안 인공호흡기나 특수의료장비 없이 자가호흡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주로 병상에 누워 지내는 까닭에 합병증 우려가 있어 의료진이 휠체어를 태워 복도를 산책시키거나 신체를 일으켜 세워 마사지해주는 등 운동요법을 진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반 식물인간 상태에서 눈을 뜨고 감는 등 반사적 행동은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 자극이나 접촉, 소리 등에는 반응하기 때문에 병실에서 영화나 음악을 켜놓는 등 보조적 자극치료도 병행했다.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이승엽이 홈런을 쳤을 땐 눈을 번쩍 뜨기도 했다고 한다.

 

0…의료계에서는 삼성가(家)에 폐질환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사도세자’로 불리는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모두 폐암으로 세상을 떴거나 투병한 경험이 있다. 이병철 창업주는 위암과 폐암 후유증으로 1978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동생(이건희)을 상대로 유산소송을 제기했던 이맹희는 2012년 말 폐의 3분의 1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3년 후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막내아들인 이건희 역시 57세 때인 1999년 폐 부근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등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써왔다. 폐는 아니지만,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손이자 이맹희 회장의 장남으로 현재의 CJ그룹을 일군 이재현 회장 역시 건강이 좋지 않다(만성신부전증).

 

 세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재벌가이지만 건강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간 이건희 회장의 사망 루머가 주기적으로 증권가에 떠돌며 삼성 관련 주식이 들썩이기도 했다. 삼성과 그룹총수의 동향은 그만큼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0…삼성그룹 총수 3대가 걸어온 영욕(榮辱)의 내력도 비슷하다. 1대 이병철 창업주와 2대 이건희 회장에 이어 3대 이재용 부회장 역시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1966년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본인이 기소되진 않았으나 차남인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이병철 회장은 여론이 악화하자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삼성 임원진이 정치권과 법조계에 금품제공을 논의했다는 'X파일'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07년엔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변호사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특검수사를 받았고, 결국 배임과 조세포탈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특히 부친을 대신해 그룹 총수 역할을 해온 그는 삼성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구속 수감되는 기록을 남겼다. 할아버지는 검찰수사를 받았으나 기소되지는 않았고, 아버지는 재판까지 받았지만 구속은 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손자가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0…이건희의 생전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고생 모르고 자랐으며 거대한 기업을 물려받은 금수저이긴 하지만 물려받은 기업을 잘 이끌어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킨 성공한 기업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로부터 부불삼대(富不三代), 즉 부자는 3대를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애써 일군 부를 후손이 다 망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희가 이끄는 삼성은 오히려 몸집이 더 커졌다. 그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는 분명 뛰어났다. 그가 주도한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은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같은 책에서 보듯 확실히 남들보다 한발 앞서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 구조, 조세 포탈, 정경 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 이건희가 주도한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超法的)이었다.

 

 이건희의 혁신적 리더십과 불굴의 도전정신은 어느 시대, 어느 분야든 본받아야 마땅하지만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건희는 한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고 그 그림자가 아들에게 이어졌다. 그의 타계를 계기로 삼성은 재벌개혁을 바라는 국민 속의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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