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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황(歌皇) 나훈아-세상을 움직이는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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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형’이라니.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고 그게 대중가요 제목이라는 것을 알고는 누군가 또 말장난을 했구나 했다. 요즘 대중가요 가사라는 것들이 대부분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를 늘어놓지 않던가. 그런데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를 유심히 듣고 보니 이게 보통 심오한 노랫말이 아니었다. 가슴이 저며오고 콧잔등이 시큰했다.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아! 테스형…’

 

 나훈아가 혼신의 열정으로 애타게 소크라테스를 찾는 모습은 진실로 ‘먼저 가본 저 세상은 어떤지, 가보니까 정말로 천국은 있던지’ 묻는 것 같았다. 이런 가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살펴보니 바로 나훈아 자신이었다. 작사, 작곡, 노래까지 혼자서 다 한 것이다.

 

 노래 말미에 나훈아는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라고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더라”며 “세월은 너나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라고 술회했다.

 

0…나훈아(본명 최홍기,73). 언론에서는 그를 가황(歌皇), 즉 가요계의 황제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제까지 가왕(歌王)이란 말은 있었지만 가황이란 극존칭은 나훈아가 처음일 것이다. 나는 나훈아 추석특집 공연을 보며 그가 그런 호칭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동안 대중가요를 다소 우습게 여기던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바꿔놓았다.       

 

 나훈아는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한다. 고교 1학년 때 이미 자기노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인 그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대히트하면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70년대는 그보다 두 살 위인 남진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양분하면서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주로 활달하고 흥겨운 남진의 노래들과 달리 나훈아는 대체로 차분하고 조용한 서정적인 노래를 불러 중장년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노래 주제는 고향, 사랑, 인생 등 다양하고 깊이가 있다. 특히 그의 자작곡 노래 중에는 슬프고 로맨틱한 곡들이 많은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 등이 그렇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눈이 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 세라…’ (‘홍시’ 중)

 

0…나훈아는 가수이면서 동시에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했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만 800여곡 이상이다. 평생 남의 노래만 부르는 가수도 수없이 많은 점에 비추어 그는 확실히 뛰어난 음악인이다.  


 이런 그이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일화에 따르면, 언젠가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나훈아가 참석해주도록 초청받았으나 그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이들한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한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나훈아이지만 굴곡도 많았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 공연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했다. 톱스타 김지미를 비롯해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여배우와의 염문설, 일본 조직폭력단 연루설, 신체 절단설, 잠적설, 암 입원설 등 끝없는 괴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때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요즘 가수들이 꺼리는 은둔활동은 일종의 희소가치로 작용해 오히려 공연장마다 관객이 몰려들게 했다. 2017년 다시 돌아온 나훈아는 올해 뜻하지 않은 코로나 난국을 맞아 비대면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을 열게 됐다.

 

0…이번 콘서트는 73세의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나훈아의 걸출한 가창력과 쇼맨십, 화려한 무대연출을 유감없이 과시한 정상급 공연이었다. 그는 장장 2시간 반 동안 29곡을 선사하며 지친 기색도 없이 압도적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공연을 끌고 갔다. 음색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지 않은 듯 매끈했다. 때로는 애절한, 때로는 간드러지는, 때로는 힘있는 절창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나훈아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위해 무보수로 이번 공연에 출연했다. 그로서는 15년 만의 안방극장 나들이었고 국민들은 전례없이 높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술술술 곡조를 뽑아내는 나훈아의 신비스런 모습에선 흐르는 세월이 무색했다.

 

 이날 무대는 한국 각지와 일본, 호주, 러시아, 덴마크, 짐바브웨 등에서 사전 신청한 전세계 팬 1천여 명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중계했으며 관객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나훈아!"를 연호했고 고향 노래가 나올 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훈아는 말미에 “이 나라를 누가 지켰나, 바로 여러분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는 발언도 했다. 이에 여야 정치권은 제각각 아전인수식 해석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새삼 대중문화의 위력을 확인한다. 권력보다 금력보다 대중과 함께 숨쉬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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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 테스형 (김연숙 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