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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리 신의 기적-악조건 모두 극복한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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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리가 정치에 나서겠다고요? 왜 그런 험한 길로 들어서려고 할까요?”


 2년여 전, 신숙희 여사를 만났을 때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었다. 큰딸인 윤주(Nelly)가 연방 총선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에 발이 넓은 신 여사와는 평소 친분이 있어 집에도 종종 놀라가곤 했는데, 내가 본 넬리는 정치를 할 타입은 아니었다. 


 음악교사 출신인 그녀는 몸가짐이  조신하고 말도 조용조용히 하는 등, 한국의 전형적인 현모양처 형(形) 여성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라니. 왜 그런 험난한 세계에 발을 들이려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러나 하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어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하며 잘해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넬리는 외형적으로는 고분고분하고 마냥 착하게만 보이지만 심지는 아주 굳건해서 한번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주변의 달콤한 말에 흔들리거나 현혹되지도 않는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넬리는 지역구(리치몬드힐) 보수당 후보 경선 출정식을 열었다. 2017년 12월 중순 주말이었는데, 그때는 넬리를 아는 한인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넬리의 어머니인 신숙희 여사 안면을 보아 참석한 것이었다. 신 여사는 한인상이사회 이사장에 평통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 한인사회에 발이 무척 넓은 분이다.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00여 명이 참석해 주차공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우리 부부도 출정식에 참석을 했는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처음에 가졌던 넬리에 대한 인상이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렇게 대중연설을 잘 하는지 처음 알았다. 


 넬리는 시종 차분한 어조로  “정직을 우선하는 보수당의 가치관에 공감해 경선에 나서기로 했다. 교육자로서, 신앙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지역주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자유당의 마리화나 허용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녀의 스피치는 결코 달뜨거나 선동적이지 않았으나 강한 신념과 진실성이 담겨 있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 정치 신인임에도 넬리는 매우 인상적인 연설로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사회를 보던 윤지영(평통위원)씨는 목에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행사에 참석한 온주보수당 고위 관계자는 “훌륭한 정치인은 정직하고, 현명하며,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 후보는 이들 가치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그후 넬리에게는 가시밭길 형국이 전개된다. 당초 계획은 지역구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는 것이었으나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리치몬드힐의 가가호호를 돌며 당원 가입을 호소한 덕에 가장 많은 당원을 확보했고 주변의 호응도 높아 경선승리가 확실해보였다. 한인사회도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넬리의 바로 옆 지역구에 있던 자유당 현역 여성의원이 갑자기 당적을 바꿔 보수당으로 넘어오면서 넬리의 지역구를 맡게 됐고, 넬리는 졸지에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은 이때 넬리에게 아무런 연고도 없는 BC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참 황당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는 격이었다. 웬만한 사람같으면 여기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넬리는 이에 군말없이 따랐다. 넬리는 토론토의 한 지역구도 제의받았지만 그 지역은 전통적으로 자유당이 강세이기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머나먼 타지를 택했다. 


 혈혈단신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그 먼길까지 떠날 때 넬리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생면부지의 객지를 과감히 택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부름이 아니었을까. 넬리는 짐을 싸들고 토론토의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수주일 후 어머니 신 여사도 딸을 위해 ‘제2의 이민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황무지나 다름없는 타관에서 두 모녀의 인생 밑바닥 체험이 시작됐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다, 가장 힘든 것은 ‘낙하산 인사’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현지 언론은 연일 넬리를 비판하고 나섰고 당에서도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모녀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우선 넬리의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발이 부르트고 손이 깨지도록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러는 동안에 신발 세 켤레가 닳았다. 


 모녀의 지극정성에 감복한 현지 한인사회 인사들과 선거구 유권자들이 점차 호응하기 시작했고 단시일에 넬리는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당에서는 차일피일 공천을 미루며 시간을 끌었다. 두 모녀는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지옥같은 시련의 시간을 보내며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 와서야 넬리의 공천이 확정됐다.  


 넬리의 오늘은 피와 땀과 눈물 그 자체로 얼룩진 결과다. 아무 연고도 없는 황야에서 이룩한 감동적인 결실이다. 특히 그동안 진보정당이 차지해온 지역에서 인지도도 낮은 신참 보수당 후보인 넬리가 승리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능력과 성실성, 정직성을 주민들이 높이 평가했다는 증거다. 


 넬리의 당선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낸 쾌거다. 돈도 빽도 없는 흙수저들도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 눈물겨운 사례다. 이는 비단 그녀만의 스토리가 아니다. 이민사 반세기를 보낸 한인사회 전체의 무용담(武勇談)이다. 넬리 신, 그녀의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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