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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대위’를 아십니까-이민자녀들 결혼대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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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 전, 큰딸이 결혼할 때 일이다. 부모측 하객 초청자는 우리 아이를 잘 아는 분들만 모셨는데, 당시 참석해주신 분들 중 절반 정도는 결혼 적령기(適齡期)를 훌쩍 넘긴 자녀를 둔 부모들이셨다. 그 분들은 우리 딸의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아마 속으로 꽤 부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40이 가깝거나 이미 넘어선 자식을 둔 부모로서 속이 많이 타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께는 괜히 미안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다. 자식들이 나이가 차면 어서 빨리 제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이 효도일 터인데,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녀 나이가 서른을 넘어 마흔이 가까워도, 또는 그 이상이 돼도 도무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학력이 모자라거나 직장이 없어서, 또는 인물이 못 나서도 아니다. 번듯한 외모에, 직장에, 스펙에… 모자랄 게 별로 없는데 짝 맺는 일은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때 결혼을 해준 큰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0…1980년대 한국에서는 장가 못간 농촌총각들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농촌총각 결혼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심지어 여의도에서 ‘총각귀신 위로제’를 지낼 정도였다. 이처럼 농촌총각 결혼대책이 절박한 상황에서 1989년 이른바 ‘농촌총각 결혼대책위원회’(결대위)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위원장은 그 역시 39살의 노총각이었던 강기갑씨가 맡았다. 그는 첫 쌍의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는 수염과 머리도 깎지 않겠다는 각오로 동분서주했고, 그 덕에 전국의 120쌍이 결혼에 성공했다. 


 강기갑씨 역시 ‘결대위’에서 만난 열세 살 아래의 여성과 결혼하게 됐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들 부부는 피임과 낙태를 반대해 자녀를 4명이나 갖게 된다. 농민운동을 이끌었던 강씨는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자녀들의 결혼을 억지로 시킬 수도 없지만, 선남선녀 결혼대책운동이 예전의 에피소드만은 아닌 듯하다. 한인이민사회에서 자녀들의 결혼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과년(過年)한 자식을 둔 부모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자식이 어쩌다 혼기(婚期)를 훌쩍 넘겨 며느리나 사윗감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하소연들을 하신다. 그러면서 누구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이민 와서 갖은 고생 끝에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니 이번엔 자식 혼사가 큰 걱정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특히 딸자식을 둔 부모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그런 하소연들을 많이 듣다 보니 어느땐 아예 수첩에다 처녀총각 신상명세를 적어 갖고 다니며 혼사를 주선해보려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잘 나가는 사업가 노총각과 똑똑하고 예쁜 변호사 여성을 맺어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사 직전에 무산돼 기대했던 양복 한벌도 날아간 적이 있다.         


0…자녀의 결혼은 타국생활이라는 긴 고행에서 부모로서의 의무를 마감하는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서양 부모들은 자녀가 성인(18세)이 될 때까지만 보살펴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다르다. 자식이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잡는 것은 물론, 결혼해서 가정까지 꾸리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의무감에서 해방된다. 결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막중한 대사인데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들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실패하면 무슨 소용인가.


 한편, 좁은 이민사회에서 같은 민족끼리 짝을 맺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광역토론토라고 해봤자 인구가 7만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4인 가족으로 2만여 가구에 불과하다. 여기서 같은 민족의 배우자감을 고르는 것이 쉽겠는가. 그나마 교회에도 안 나가고 한인사회와 교류를 않고 지내는 가정의 자녀는 마땅한 배필(配匹) 찾기가 더 어렵다.


 이민자녀들의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자라온 환경과 사고방식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한국에서는 결혼이 늦어지면 이상하다는 눈총을 받기 쉽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염려가 없으니 자녀들은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혼자 살아도 불편한 것이 없으니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 피부색이 다른 타인종을 새 식구로 맞아들일 준비가 돼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요즘은 그래도 중국인 등 타인종과 결혼하는 사례가 많긴 하지만 부모 세대는 여전히 자기 민족을 선호한다. 백번 양보해 백인까지도 봐줄만 하지만 만약 흑인이라도 데려오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부모들이 적잖다. 


0…자녀 결혼문제는 이웃 미국도 마찬가지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싱글족’이 한인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들을 연결시켜주기 위한 모임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부모들이 직접 ‘미혼자녀 부모모임’을 결성하고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모모임에는 원거리에서도 불원천리 모여든다고 한다. 한인교회들도 결혼적령기 선남선녀의 짝을 찾아주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고, 각 학교 동문회도 미혼남녀를 위한 볼룸댄스교실 등을 개설하고 있다.


 이제 캐나다한인사회도 자녀결혼문제를 개인적 고민거리로 덮어둘 것이 아니라 과감히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모들이 적극적인 모임을 갖는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짝 없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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