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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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멍에
ywlee

 

 

 

 

 나는 사람이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좀 모자란 탓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 인상이 좋다고 생각되면 쉽게 믿고 푹 빠져 정(情)을 주는 타입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상대방이 등을 돌리면 가슴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누굴 만나서 좋게 비쳤던 인상이 오래토록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기 마련이고 그러기에 상처받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사람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오래 사귀어 보아야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설파하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점과 약점이 혼재돼 있으니 이를 잘 가려서 교류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 이리저리 마음속을 재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래서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가 한다.      


 흔히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는 말이 해학적으로 쓰이고 있다. 세상인심이 그렇다. ‘배고프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나니 이것이 바로 인정의 널리 퍼진 폐단이다’(채근담).


0…세상사 모든 일이 인간관계의 연속에서 그려진다. 사람과 사람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우리처럼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원만한 인간관계는 필수적 요소다. 가뜩이나 외롭고 고립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마음 터놓고 대화할 상대마저 없다면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고 원만한 가정생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제는, 대화상대도 상대 나름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타국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길지 않은 이민 삶 속에 그동안 여러 사람(한인)을 만나 친해졌다가 이내 소원(疏遠)해지는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좁은 이민사회에서는 서로간의 이해관계로 얽힌 경우가 많아 상처가 더 깊다. 내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못본척 외면하며 떠나버리는 그 마음속엔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 아마 내가 더 이상 필요없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때론 엉뚱하게 정치적인 문제로, 그것도 떠나온 고국의 문제로 서먹해지는 경우도 있다. 대관절 좌우 이념이 무어라고 동족끼리 얼굴을 외면하며 살아야 하는지. 나는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으로는 나와 정반대이지만 친분관계는 아주 오래 가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인간성이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상적으로는 나와 가깝지만 인간성은 영 아닌 경우도 있다. 특히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은 딴판인  사람에게 더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보다는 차라리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인간적으로 바르게 처신하는 사람이 훨씬 낫다. 


 이민와서부터 교류를 한 K형님. 이 분은 언제나 나를 한결같이 존중하며 대해 주신다.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속이 무척 깊으시다. 굳이 서먹한 정치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 분을 비롯해 연세드신 분들이 나와 다른 정치적 이야기를 해도 나는 굳이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말하는 분의 입장을 존중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서 한번 맺은 인연은 꽤 오래 가는 편이다. 상대방이 먼저 나를 버리고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등을 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0…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갈수록 두렵다. 그래서 다짐을 하게 됐다. 확 달아오르다 곧 식어버리는 인간관계는 그만 접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오래가는 우정을 지속하자고. 부동산 일을 하는 아내에게도 습관처럼 해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아 보인다고 너무 빠지지 말고 쿨(cool)하게 대하며, 가능한 제로(0)부터 시작하라고. 그래야 실망하는 일이 없다. 좋게만 보였던 사람이 그 이미지를 오래토록 끌고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인연이 악연으로 끝난다면 애당초 만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 필요가 없어지면 돌아서는 사람, 내가 어려울 땐 외면할 사람… 요즘 새삼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마음에 꺼리는 사람과 함께 있기보다는 외롭더라도 홀로 있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가를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으리라.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이 있어 잘 지내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의 장점보다는 미운 점만 눈에 띄기 시작해 이내 멀어진 경우를. 한때 계모임까지 만들어 가족처럼 지냈으나 지금은 모두 헤어지고 만 쓰라린 기억들. 이민생활에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끝까지 변치 않는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마음 아파하고 상처받는 일이 흔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그러나 인연도 인연 나름, 법정스님은 새털처럼 가벼운 인연 맺기를 경계하셨다.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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