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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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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캘거리를 방문한 고은 시인(왼쪽)과 자리를 함께 한 이유식 시인

 

 


 ‘한 줄의 시는 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김광규 ‘묘비명’)

 


 시인의 말대로 이 세상엔 한 줄의 시도, 한 권의 소설책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큰 재산을 모아 잘 살게 되면 주위에 추종자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굳이 문화 예술 같은 고상한 식견(識見)이 없어도 많은 예술인과 교류하며 상류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개중에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 뒤늦게나마 문화 예술에 눈을 떠 그들을 돕고 후원하는 사례가 있긴 하다.      


 예로부터 예술가와 문인은 대체로 가난하다. 애당초 돈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6년여 전 80세로 별세한 한국 문단의 큰별 박완서씨 빈소에는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고인은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0…문화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의 관심과 후원이 절대 필요하다. 자고로 부유층과 권력층이 문화예술인을 우대하고 지원한 시기엔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다. 서양에서는 이미 14세기부터 왕, 귀족, 자본가들이 예술인을 후원하는 제도(patronage)가 존재하고 있었다.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기에 궁정인들(courtiers)의 후원은 문화예술을 꽃피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는 부와 권력을 지녔어도 문화자본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지도층이라 할 수 없었다. 문화예술 후원제는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이르는데 필요한 열쇠였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The Medicis)은 지독하게 돈을 모아 우아하게 썼던 대표적인 예다. 평민 출신으로 환전상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로렌조 메디치는 축적한 부를 단테, 갈릴레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의 문인, 과학자, 조각가, 화가 등을 후원하는데 썼다. 덕분에 피렌체는 오늘날까지도 아름답고 수려한 문화예술 도시로 존재하게 됐다.  


 중세 유럽에서 성행했던 예술인 후원제도는 오늘날 ‘기업 메세나’라는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메세나스(Gaius Maecenas)가 시인, 예술가 등을 후원한 데서 유래한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일컫는다. 때론 이런 순수한 뜻이 왜곡 변질돼 한국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같은 괴물이 나타날 소지도 있다. 


0…무릇 세상사가 그러하듯, 문화예술도 자본의 지원이 있어야 발전하고, 반대로 자본도 문화예술이 뒷받침돼야 정신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경제적 여유도 좀 있으면서 문화예술 취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할 것이다. 


 캘거리의 이유식 시인(76)이 바로 그런 분이다. 경북 봉화에서 출생, 대학강사 등을 지내다 43년 전 당시 단돈 200달러를 들고 캐나다 땅으로 건너온 그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무역업과 부동산 투자에 손을 대 상당한 부를 모았다. 그는 단지 돈 버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열심히 봉사했다.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한인언론사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모국의 불우한 농어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많은 훈장과 상도 받았다. 


 분주한 일상에서도 고상한 문학취향을 지닌 그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시를 써왔으며 많은 시집도 펴냈다. 특히 9년 전인 2008년에는 사재( 私財)를 털어 자신의 아호를 딴 ‘민초(民草)해외문학상’을 제정함으로써 국내외 문인을 후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상의 상금은 처음엔 3천 달러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5천 달러로 늘었다. 해외동포사회에서 개인이 제정한 문학상은 아마 이 상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제1회 시상식 때 캘거리로 취재를 갔는데, 이 시인은 생각과 달리 무척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이면서도 그의 시 저변에 흐르는 분위기는 타국생활의 서글픔이라든가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것이 짙게 배어있다. 그는 특히 ‘변방’ ‘나그네’ ‘무상’ 같은 단어들을 즐겨 쓰는데 그것은 오랜 이민 삶의 애환을 함축한 것이라 생각된다.    


 억척스레 돈을 번 사람은 대개 돈 쓰는데 인색한데 이 시인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 같다. 춥고 배고픈 문인들을 후원하는데 개인 사재를 턴다는 게 결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손가락질 당하는 일도 많다. 이 시인이 문학상을 제정한다 하니 처음엔 냉소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돈 좀 벌었다고 어쭙잖은 일을 한다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아무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의 소신과 열정이 없다면 그럴 수가 없다. 앞으로 이 시인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동포사회의 문화예술 수준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0…한때 골수 사회주의자였던 박노해 시인은 수년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가난한 시인의 전형이었던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일해 먹고 살 궁리는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부유한 시인, 웬지 잘 맞지 않는 말 같지만 가장 이상적인 단어가 아닌가 한다.  


(*올해로 10회 째를 맞은 민초문학상 시상식이 11월 2일(목) 열렸고, 나는 다시 한번 캘거리와 밴프 로키산을 방문하는 영광을 누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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