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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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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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방에 대해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알고 대하는 것과 전혀 모르고 대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직업상 누구와 인터뷰를 할 때 사전에 그에 관한 인적사항을 대략이나마 알고 난 후 임한다. 그러면 얘기도 잘 풀려나가고 시간도 절약된다. 상대는 내가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기에 친밀감도 높아진다.  

 

 

 


 사적(私的)인 만남도 그렇다. 처음 만난 사람과 얘기할 때 크게 실례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혹시 고향이 어디냐, 나이는, 출신 학교는? 하고 넌지시 물어본다. 나이를 알면 그에 걸맞게 예우하게 되고 혹시 나와 동갑내기이거나 동향(同鄕)일 경우엔 금방 친해진다. 출신학교도 마찬가지. 감성을 중시하는 한국인이기에 개인신상을 통해 쉽게 친해지는 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신상을 나타내려 하지 않거나, 웬지 머뭇대는 사람과는 친해지기가 어려운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사람은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아니면 어떤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개인신상을 묻는 것은 상대방의 정보(약점)를 캐내기보다 인간적으로 좀더 신뢰를 쌓기 위함인데 이를 피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친지 중에는 십수년간 교류를 하면서도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굳이 얘기를 않으려는데 캐묻기도 무엇해 그냥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농담삼아 “미안하지만 어느 학교 다녔어?” 하고  물었으나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솔직히 기분이 별로 안좋다. 나를 못 믿는 것 같아서다. 자기가 고졸, 아니면 지방대를 나왔다고 하면 무시할까봐 그럴 것이라 여기면서도 웬지 거리감 같은 것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0…자신을 숨기는 사람과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그에게 꼭 높은 수준(?)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고졸이면 어떻고 명문대면 어떤가. 상대를 알아야 친밀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새 책을 읽을 때도 첫장을 넘기면서 우선 저자의 프로필을 살피는 습관이 있다. 책을 쓴 저자의 프로필을 알고 책을 접하면 전체적인 윤곽이 훨씬 빨리 잡힌다. 책을 내게된 배경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필자의 프로필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 대략 등단(登壇) 내용 정도만 적어놓는데, 그러면 웬지 믿음이 안간다.  


 토론토의 한인동포 중에도 책을 펴내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어떤 책을 보면 필자의 소개가 매우 부실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학력 등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저자에 대한 신뢰는 반감(半減)된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심리는 십중팔구 학력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번듯한 대학을 나온 저자라면 학력을 분명히 밝히지만, 그것이 빈약한 경우는 잘 밝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0…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스펙(spec)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는 영어단어 Specification(명세서)의 준말로 한 사람의 신상내역을 의미하며, 주로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과 영어실력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른다. 이 스펙은 구직자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며,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지원자를 평가해왔다. 


 그런데 요즘들어 ‘블라인드(Blind) 면접’이란 것이 유행이다. 즉, 누군가를 채용할 때 학력이나 경력, 해외유학 등 흔히 스펙이라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면점만을 통해 그 사람의 인성과 업무 적합성 등을 판단해 채용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하고 올 7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의 입사원서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스펙 항목을 삭제했다. 즉, 오직 면접점수만으로 직원을 뽑겠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특히 지방대 출신 등 상대적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강하다. 일선 기업 등에서 스펙을 보고 뽑은 직원들이 막상 현업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검증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는 함께 조직을 발전시켜나갈 직원을 뽑는것이다. 그렇다면 지원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뽑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신상도 모르고 인터뷰만으로 뽑는가. 그럴 경우 사람의 능력이나 성장 잠재력은 무시하고 외모나 임기응변식 화술(話術) 같은 단편적인 면들로만 판단할 우려가 있다. 


 특히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좋은 스펙을 만들어온 지원자들로서는 일종의 역차별이 아닐 수 없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기울여온 그 지난(至難)한 노력이 무시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좋은 학교를 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사회적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질 우려도 있다. 


 좋은 학교를 나왔다 해서 업무능력이 출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학교를 가기까지의 노력은 인정을 해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단 몇십 분의 면접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경솔하다는 지적이 많다. 꼭 알고 싶고, 또한 어차피 알려질 신상을 굳이 숨기면서까지 위선을 부려야 하는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이런 때도 쓰이는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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