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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농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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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턴 ‘이씨농장’에서. 농장주 이도훈씨 부부(왼쪽 & 오른쪽), 민석홍 장로-문인 윤경남씨 부부. 이창희씨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월파(月坡) 김상용)


 간간히 눈발이 흩날리는 속에 찾아간 겨울농장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잔설(殘雪) 덮힌 벌판엔 칼바람이 모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산 자락엔 앙상한 나무들이 바람에 떨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실개천에도 찬바람이 스산한데 집을 지키는 두 마리의 셰퍼드견이 무료한 듯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 덩치가 크고 외양은 무섭게 생겼지만 사람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애교스럽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이런 전원에 살면 모두가 다정해지는가 보다. 


 수년 전에도 농장(農場)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거니와, 밀턴(Milton)에 있는 ‘이씨농장’을 알게된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401 고속도로 서쪽방향으로 달리다 구엘프라인(Guelph Line)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드라이브를 하노라면 그림같은 자연풍경이 펼쳐진다. 하얀 설원(雪原)과 고사목(枯死木)들이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곳에서 지방도로를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자그마한 ‘이씨농장’ 간판이 보인다.

 
 이씨 농장엔 50대 초.중반의 부부가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살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젊은 부부는 닭 기르기에서부터 온갖 야채 재배는 물론, 집의 데크(Deck)도 직접 만들고 있다. 농촌생활을 전혀 모르던 농장주(이도훈씨)는 산타할아버지 같은 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에 한때 기자생활도 한 사람으로, 최근 본보에 <전원일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에도 나타나 있듯, 그는 유기농에 관심이 많아 13년여 전부터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씨의 부인은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여성으로, 최근 25년간 토론토에서 불어교사로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낭군이 하는 농장일에 본격 합류했다. 전원생활과는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인은 그러나 맛깔스런 요리는 물론, 못하는 것이 없다. 한때 주변으로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권유받을 정도로 드레스 만들기 등에도 뛰어난 재원(才媛)이다.    


 이 집의 주특기는 토종닭 요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짐한 통닭에 농장에서 재배한 깻잎, 마늘, 파 등을 함께 얹어 먹으면 온몸에 힘이 솟는 기분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연말 농장에서 시레기를 구해다 된장국과 함께 끓여 먹으니 그 구수한 맛이 예전 고향집을 떠올리게 했고, 농장에서 만든 식초를 아침저녁으로 생수에 타서 마시니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피곤함이 덜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드넓은 밭에다 풀어놓아 기른  닭에서 생산된 유정란(有精卵)은 건강에 매우 좋단다. 계란을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는 등, 이런저런 학설이 분분하지만 토종 유정란은 몸에 좋을 것이 분명하다.  

  
 200여 에이커의 널따란 밭과 임야가 지금은 하얀 눈에 묻혀 있지만 봄 여름엔 쭉쭉 뻗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텃밭엔 온갖 야채가 싱싱하게 자란다. 집 앞엔 한줄기 실개천이 흐르고 야산엔 이름 모름 야생화와 들풀들이 지천이다. 겨울인 지금은 하얀 눈이 쌓인 야산 너머로 브루스 트레일 계곡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속세(俗世)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이런 낙원이 펼져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젊은 농장주 부부는 이 농장을 단순히 야채 재배나 닭 기르는 데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봄 여름엔 주말농장도 운영하고, 방학 땐 어린이 캠프장으로도 활용하며, 한인들의 친교모임 장소로도 이용하게 해준다.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집은 단지 안에 각자 취향대로 짓되 공동부대시설 등을 갖추고 살면 이상적인 삶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한국에서는 50대 조기 은퇴자들이 전원에 함께 살면서 농사도 짓고 자녀들 등하교도 나누어서 하는 등 멋진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모여 살 경우엔 공동여가시설도 짓고, 몸이 불편할 때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는 시설도 갖추면 좋을 것이다.


 토론토 근교에 몇몇 한인들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같은 기업형 농장을 경영하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특히 밀턴 정도면 토론토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 비즈니스 가능성이 있을 법하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삶, 그러나 아무나 쉽게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 전원생활은 나름대로의 단단한 각오도 필요하다. 우선 농기구를 다루고 작물을 재배하려면 손재주가 좋고 성격도 꼼꼼해야 한다. 외진 농장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상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씨농장 부부는 이미 그런 단계는 넘어선 듯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이런 생활 한번쯤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 그대로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에서 ‘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도훈씨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님’은 이씨 부인의 영어이름(Nim)이다.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예전 시골 고향집이나 외갓집에 갔다 오는 기분이다. 지금은 비록 산간에 눈이 쌓여 있고 샛바람이 시리지만 봄은 곧 다가올 것이다. 잔설 덮힌 농장의 겨울 끝자락은 얼음장 밑에서도 생명이 졸졸 흐르듯 새봄의 설레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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