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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가졌는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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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6년여 전에 쓴 글인데, 최근 이와 관련한 소식이 전해져 다시 올려봅니다.) 

 엊그제 한국 뉴스를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치 개입 사건으로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검찰에 엮여들어가는 상황인데, 눈에 익은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 그 친구였다. 대학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급우들 중 한 명! “아니, 저럴 수가, 저 친구가 왜?” 나는 한동안 몹시 혼란스러웠다. 저 친구는 저럴 사람이 아닌데…

 

0…그 친구는 같은 과(科)에서 만났다.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비롯해 대여섯 명이 죽이 맞아 어울려 다녔다. 운동도 함께 하고 종종 막걸리 잔도 기울이며 많은 대화들을  나누었다.

 

 친구들 중에도 그는 선(線)이 굵고 리더십이 뛰어났다. 의리도 강해서 친구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섰다.

 

 70년대 말 당시는 정국이 극도로 혼미하던 때여서 우리는 학교가 열린 날보다 닫힌 날이 더 많은 세월 속에 허구한날 데모만 하느라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데모로 땀을 뻘뻘 흘린 후 학교 앞 선술집에 모여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울분을 토하곤 했다.  

 

0…세월은 흘러 어찌어찌 졸업들을 하게 됐고 사회 진출의 방향도 각자 달라졌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고 나중에 정치학 박사 학위까지 땄다.

 

 나는 그때 뒤늦은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을 통해 그 친구가 모 기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그가 왜 그런 기관에 들어갔나 의아했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거니 하며 이해를 하려 했고, 친구들은 졸업후에도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다 나는 이민을 왔고, 몇 년 전 한국에 나갔을 때 그 친구는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과 저녁모임이 있었는데 그는 우리가 1차 자리를 끝내고 장소를 옮겨 2차를 들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밤 12시가 다 돼서야 퇴근하고 온 친구는 무척 피곤했을텐데도 내색을 않고 새벽녘까지 자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그는 이미 중견 공직자의 자세가 몸에 밴 것 같았다.

 

0…친구는 다음날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으로 나를 초청해주었고 공직자로서가 아니라 옛친구로 대할 땐 “야, 자!” 하며 장난스럽던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캐나다로 돌아와 소식이 뜸하던 차에 최근 정부가 바뀌면서 그러잖아도 그쪽 사람들이 바람 좀 타겠구나 했는데 역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친구는 그 기관에서 26년간 열과 성을 다하며 그야말로 충성을 바쳐 일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강직하고 진정으로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0…공무원은 흔히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 한다. 공직자로서 자기 주관대로 행동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를 뿐, 정말 나쁜 사람은 그런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 얘기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저 유명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출처다. 그는 여기서 “관료제는 개인감정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Spirit) 없는 전문가와 감정(Heart) 없는 쾌락주의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공직자로서 자기 철학과 소신이 없는 관료들을 지적한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말을 공무원들이 어느 정권이든 그 철학에 맞게 복종해야 한다는, 다분히 자조적인 투로 쓰고 있다.

 

0…아무튼 학창시절 그토록 정의감에 불타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던 친구였지만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때론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싫으면 떠날 수밖에 없는데, 처자식을 생각하면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세상 누가 뭐래도 그는 진정 나의 변함없는 친구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모습이 언론에 비칠 때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어떤 친구는 잘 풀려 아직도 고위직에 있는가 하면, 어느 친구는 인생이 꼬여 초라하게 움츠러든 경우도 있다.

 

 세속적 성공 여부를 떠나 친구는 친구일 뿐.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고 아름답던 우정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힘든 삶에 용기와 격려가 된다.   

 

0…자고로 사나이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며, 일생에 딱 세번만 울어야 한다 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사나이가 눈물 흘릴 때가 또 있으니, 가장 친했던 친구가 험난한 길에 빠졌을 때가 아닌가 한다. 한세상 살면서 나를 위해 진정으로 울어줄 친구는 과연 누구일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 ‘그 사람을 가졌는가´)     

 

0…위의 친구는 최근 누명을 벗고(?) 복권돼 새 일자리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나의 일처럼 기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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